진무열은 멍해졌다. 그는 용의에서 침을 꿀꺽 삼키고 안시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너무 아름다웠다. 몸주인이 이 여자에게 그토록 미쳐 조정을 황폐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다. 고대의 장희빈도 그녀만큼 매혹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리 신첩을 보시는 것이옵니까? 신첩을 몰라보시는 것이옵니까?”
안시향의 빨간 입술이 살짝 올라간 채 서서히 걸어왔다. 진무열은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만지고 싶었지만 그가 안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이 떠올랐고 온이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니 흥미가 확 가셔졌다. 그는 놀라움을 거두고 정상으로 회복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
“왜 몰라보겠소? 안귀인은 명문 출신으로서 재주가 뛰어났는데 과인이 어찌 몰라보겠소?”
안시향의 미소가 굳어졌고 마음속으로 오늘 진무열이 어쩐지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가 감히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을 하고 있으니 서숙의의 마에 든 게 아닌가 싶었다. 왕의 불만을 들은 그녀는 표정이 바뀌더니 억울한 듯 눈물 몇 방울을 떨구었다. 그녀는 털썩 꿇어앉아 불쌍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 사실 신첩이 이렇게 찾아뵌 것은 죄를 아뢰러 온 것이긴 하나 전하께서 이렇게 신첩을 비꼬지 말아 주시옵소서. 신첩은 담이 작아...”
진무열은 그녀를 내려보며 두 눈을 그녀의 하얀 쇄골에 고정한 채 말했다.
“무슨 죄를 아뢴다는 것이오?”
안시향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얼마 전 장계월의 세 동생이 신첩의 명령을 받고 서숙의에게 전날 밤 전하께서 다친 경과에 관해 물으려 했사옵니다. 하지만 그 세 동생이 서숙의를 때릴 줄은 몰랐사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첩의 잘못이니 그 벌을 달게 받겠사옵니다.”
말을 하며 그녀는 더 가까이 다가와 진무열의 오른쪽 다리를 끌어안았다.
‘젠장!’
진무열은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요염한 안귀인이 다가오니 그는 자신의 마음이 들끓는 것만 같았다.
“쿨럭, 그럼 그대가 말해보오, 과인이 어떻게 벌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그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말을 했고 안시향은 매혹적인 웃음을 띠고 입술을 깨물고 두려운 듯 말했다.
“전하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옵소서. 신첩은 다 달게 받겠사옵니다.”
진무열은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이 말에는 다른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몸으로 유혹하려는 심산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녀의 부친과 오라버니라는 자가 매일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자신에게도 원칙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안시향의 표정이 멍해지더니 매혹적인 자태를 거두고 깊은 뜻이 있는 듯 진무열을 힐끗 보았다. 아버지의 말처럼 전하는 다른 사람이라도 되는 듯싶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진무열은 그녀에게 벌을 주는 일은 없었다.
“전하, 참 나쁘시옵니다. 신첩이 매월 받는 은자는 전부 전하께서 주신 것이온데 어디 가서 은자를 찾아 관중에 지원하겠사옵니까?”
안시향은 애교를 부리며 진무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가늘 고 긴 다리는 마침 그의 손바닥에 닿았고 진무열은 그녀에게 화를 내려 했으나 무의식중 다리를 만졌다. 옥처럼 매끈한 다리는 느낌이 더없이 좋았다.
그의 이런 작은 동작과 훔쳐보는 눈빛을 느낀 안시향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전하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욕은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이것만 안 변한다면 그녀는 여전히 예전처럼 진무열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진무열이 내뱉은 말은 그녀를 실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니 안귀인, 벌금은 내야 하오. 규칙이 없으면 일이 안 되듯 비록 사람을 때린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지만 나도 온이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렇지 않으면 과인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후궁을 마주할 수 있겠소? 과인의 위신도 돌봐야 하오.”
이 말을 들은 안시향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전하의 마음이 이렇게 빨리 도망간걸 보면 서숙의의 솜씨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래요. 전하, 전하께서 명하신 것이니 이 향이가 꼭 따를 것이옵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신첩은 궁에 돌아간 뒤 곧 금은보화와 모아둔 은전들을 다 꺼내서 전하께서 재해를 돕는 일에 이바지할 것이옵니다. 어떠시옵니까?”
그녀는 진무열의 품에 안겨 인어공주처럼 몸을 비틀며 빨간 입술을 진무열에게 갖다 댔다. 진무열은 웃으며 안시향이 고분고분 벌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제멋대로 굴며 자신의 어의를 어긴다면 그녀가 아무리 예쁘고 집안의 권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엄중히 처벌하리라 생각했다. 안시향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진무열의 손길을 피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 신첩이 머리가 우둔하여 전하께서 다치셨다는 것을 깜박 잊었사옵니다. 신첩이 전하의 다리에 계속 앉아있다가 전하를 다치게 할까 두렵사옵니다.”
진무열은 오른손으로 코끝을 만졌는데 아직도 그녀의 향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안시향을 다시 안고 웃으며 말했다.
“안귀인은 몸매가 매끈하오. 마치 가는 섬버들 같으니 하나도 안 무겁소. 괜찮으니 과인에게 안기도록 하오.”
안시향은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진무열의 손을 피하더니 매혹적인 웃음을 띠고 말했다.
“전하, 신첩을 잡아보시옵소서.”
말을 마친 그녀는 신을 벗어 던지고 자그마한 발로 청문각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진무열은 심호흡을 하며 당장이라도 코피를 쏟을 것 같았다. 그녀의 깨끗하고 예쁜 발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안시향은 자신의 취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달려가 안시향을 품에 안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할 때 안시향의 몸이 미끌어내리더니 진무열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두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그림처럼 예쁜 이목구비로 웃으면서 말했다.
“전하, 오늘은 어찌하여 예전 같지 않으시옵니까? 신첩마저 붙잡지 못하시옵니다.”
진무열은 마음이 간지러워 다시 한번 그녀를 잡고 도망갈 수 없게 했지만 안시향의 몸은 또다시 미끌어 내려 번번이 진무열의 움직임을 미리 피했다. 한 발 앞두고 계속 잡지 못하고 있으니 진무열은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서숙의같은 고분고분한 여자를 좋아했다. 그는 용의에 털썩 주저앉았고 흥미를 아예 잃은 채 손을 저었다.
“가보오. 과인은 좀 있다가 서숙의를 찾아가 보겠소.”
서숙의를 찾아간다고? 안시향은 멍해졌다가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신을 주워 신은 그녀는 요염한 자태로 다가와 진무열을 안고 말했다.
“전하, 화내지 마시옵소서. 이 청문각에 보는 사람이 많아 신첩이 제대로 전하의 시중을 들 수 없어서 그런 것이옵니다. 신첩이 오늘 밤 영롱전에서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전하를 기다리겠사옵니다.”
그녀는 말을 하며 진무열을 향해 입술을 빨며 그의 웃음을 자아냈는데 아주 매력적이었다. 진무열은 기회를 엿보아 손을 내밀어 그녀를 꼬집었다. 이것은 그녀가 일부러 자신의 욕정을 불러일으킨 벌이었다.
안시향은 갑자기 닥친 아픔에 신음을 냈고 촉촉한 눈빛에 혐오감이 스쳐 갔다. 그랬다. 혐오감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그 혐오감을 감추고 청문각 문 앞에 달려가 돌아보며 매력적인 웃음을 지었다.
“전하, 참 짓궂으시옵니다. 신첩 아프옵니다. 오늘 밤 영롱전에 꼭 오셔야 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첩 질투할 것이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한들거리며 자리를 떠났고 담담한 향기만 남겼다. 진무열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쯧, 이건 사람의 혼을 빼먹는 여우나 다름없군. 안타깝게도 왜 하필 안씨 가문의 사람이지? 잘 알아서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