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전은 아주 넓었다. 날이 어둑해졌음에도 그 휘황찬란함을 감출 수 없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빛은 촛불이 아니라 야명주였다.
금잔디나무, 옥 공예, 금으로 만들어진 대문, 각종 희귀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품들...
귀인 한 명의 침전이 이토록 패기가 넘쳐 궁 절반을 누르는 것 같았다. 태극전과 비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몸 주인은 안시향에게 푹 빠져 있은 듯싶었고 아마 은자가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이 여자를 감싸고 돌았던 듯싶었다. 영롱전은 지나칠정도로 너무 화려했다.
안시향은 마중을 나왔고 미리 준비한 듯 악사나 무희들, 그리고 음식과 술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이렇게 술과 여색이 겸비한 남자의 천국이었다. 진무열은 무희의 치마 밑으로 드러난 다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안시향은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
“전하, 마음에 드시옵니까?”
그녀는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빨간 옷에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했으며 가는 허리까지, 요정이 따로 없었다. 진무열은 자리에 앉더니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에게 흠뻑 취한 듯한 표정을 짓고 예전의 그 방탕하기 그지없던 왕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풍악을 울리거라. 과인에게 풍악을 올리거라.”
곧 영롱전에 풍악 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희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전하, 신첩은 전하께서 또 오지 않으실 줄 알았사옵니다.”
안시향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과인은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오. 온다고 했으니 왔잖소.”
진무열은 웃으면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품에 끌어안았다. 안시향은 곧 허리에 힘을 줘 곧게 앉은 뒤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하, 뭐가 그리 급하시옵니까? 신첩이 춤을 올리겠사온데 어떠하시옵니까?”
진무열은 이 여자가 또 피한다고 생각했다. 이 점으로 볼 때 안시향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안시향을 더 꽉 잡고 그녀가 피하지 못하도록 했다. 힘이 아주 셌고 만약 서숙의였다면 아마 아파서 눈썹을 찌푸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시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옥같이 하얀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진무열은 갑자기 힘을 쓸 수 없었다.
“전하,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향이가 오늘 밤 제대로 시중을 들 것이옵니다. 여기엔 궁녀와 내관이 너무 많사옵니다.”
그녀는 웃으면서 가운데 있는 빈자리에 가서 신을 벗고 맨발로 땅을 밟더니 한 마리의 나비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진무열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안시향을 바라봤다. 방금 시탐해봤는데 안시향이 무공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권신의 딸이고 무공이 있으며 유혹술을 쓸 줄 알며 궁에 들어와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그 목적이 무엇일까?
안시향의 하늘하늘거리는 춤결은 순간 무희들을 무색하게 했다. 진무열을 향해 웃음을 날리며 춤사위를 펼친 그녀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그녀의 치마폭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궁이 그렇게 많은 상황에서 이 여자의 손에 평생을 바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안시향이 다가와 술잔을 손에 들고 춤을 추면서 그에게 술을 따라줬는데 그 모습이 아주 치명적이었다.
진무열은 안씨 가문을 잠시 잡아둬야 했기에 일부러 그녀에게 빠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만지며 미색에 흠뻑 취한 듯 행동했다.
음악과 춤으로 가득 찬 영롱전은 조용한 화양전과 현저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서숙의는 문에 기대어 영롱전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전하께선 이틀 동안 자신을 예뻐해 주시다가 또다시 영롱전으로 갔으니 내일은 또 돌아오실지 모르는 일이었다.
“숙의 마마, 들어가시지요. 오늘 밤 전하께선 오시지 않을 듯싶사옵니다.”
최나인이 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비록 그녀는 입궁할 때 데리고 온 나인이긴 하지만 서숙의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친자매나 다름없었다.
“그래.”
서숙의는 한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침전으로 돌아갔다. 최나인은 자신의 주인이 이렇게 우울한 것을 보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숙의 마마, 전하께선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 들었사옵니다. 마마께서... 춘화를 보지 않으시렵니까?”
서숙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마음이 조금 동요됐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겨우 한마디를 뱉어냈다.
“그러자꾸나.”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갔다. 영롱전 밖에선 들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하얀 달빛과 어울려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침전에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하, 신첩을 잡아보시옵소서.”
안시향은 맨발로 땅을 밟고 연잎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는데 마치 달나라에 있는 선녀처럼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진무열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어 보이자 세상을 매혹할 만큼 예뻤다.
진무열은 화양전에 돌아가려했으나 너무 취해 발걸음마저 휘청거렸으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여자를 정복할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는 취기가 피어올라 온몸의 힘을 다해 안시향의 가느다란 허리를 꼭 껴안고 쓰러뜨린 다음 그대로 덮쳤다. 안시향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하얀 식지를 그의 입술에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전하, 봉황포를 입은 신첩의 모습이 보고 싶지 않으시옵니까?”
“그럼 어서 가서 바꿔입고 나오오.”
진무열이 딸꾹질하며 말했다. 안시향은 손쉽게 그를 밀쳐내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전하,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옵소서, 신첩 환복하고 오겠사옵니다.”
“그렇게 하오.”
진무열은 취기가 피어올랐다. 향이 반개 정도 타들어 가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진무열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침전안의 모든 불이 다 꺼졌다. 크고 푹신한 침상 위에 아름다운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몸매가 황홀하고 행동거지가 요염했지만 얼굴을 가려볼 수 없었다. 달빛을 빌어 그녀가 빨간 봉황포를 입고 있어 더 예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마치 여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정복하고 싶은 욕망이 피어올랐다.
봉황포는 왕후의 옷이었는데 예로부터 최고급의 옷이었다. 진무열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고 머릿속엔 목소리 하나가 맴돌았다.
“덮치거라, 마음껏 즐기거라.”
진무열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취기에 어린 발걸음을 옮겨 침상에 기어올랐다. 유일한 유감이 광선이 없다는 것인데 진무열은 앞을 가려볼 수 없었다. 왜 불을 끈 거지? 안시향이 부끄럼을 타는 것일까?
침전의 주렴 밖에서 아름다운 그림자 하나가 침상 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빛이 쏟아져 그녀의 얼굴을 비췄는데 그녀는 안시향이었다! 안시향은 왕의 시중을 들었던 게 아니었고 진무열은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고 있었다.
...
하룻밤의 폭풍우가 지나가자 진무열은 온몸이 쑤셔왔다. 그는 눈을 뜬 순간 안시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이불에 아직도 어젯밤 정사를 나눈후의 특유 향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어젯밤 너무 취해서 사랑을 나눴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다. 그는 곧 나인을 불러와 옷을 갈아입고 난 뒤 자리를 떴고 안시향과는 더는 마주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