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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과인이 싫다면?

  • 태극전.
  • 웅성거리는 의논 소리는 문무백관들 속에서 나온 것이었고 현장이 살짝 복잡해졌다.
  • “주상전하 납시오!”
  • 시내관은 목청을 높여 소리쳤고 대전은 빠른 속도로 조용해졌다. 백관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진무열은 금황색의 용포를 입고 있어 아주 위엄있어 보였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아 중생을 굽어보듯 바라보았다.
  • “여러 경들,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으면 해보시오.”
  • 그는 관례대로 한마디를 했다. 하지만 곧 십여 명의 대신들이 나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진무열은 별로 의외라 생각지 않았다. 아마 이들이 미리 말을 맞추고 어제 서문을 대장군으로 봉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거로 생각했다.
  •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다. 서문이 마적 토벌 총사령관이 된 것 때문은 아니었다. 종정 소경인 유승익이 앞장서 땅에 엎드려 소리쳤다.
  • “전하, 전하께서 서숙의의 국정을 어지럽힌 죄에 대해 엄히 벌해주시옵소서.”
  • 진무열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서숙의는 성실히 고성국의 휘황한 성세를 바라고 있는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 “헛소리!”
  • 서문은 곧 화를 버럭 냈다. 국정을 어지럽힌 죄라는 건 아주 큰 죄명으로서 확정되기만 하면 누이의 인생은 끝장나는 것이었다. 그는 한발 나서서 온몸으로 화를 내며 유승익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 “망나니 같은 자식, 감히 내 누이를 모욕하다니! 내 손에 죽을 각오를 한 것이오?”
  • 유승익은 태도가 강경했고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말을 받았다.
  • “서문, 담이 너무 큰 게 아니오? 태극전에서 감히 왕위를 무시하고 조정에서 욕을 뱉어도 되오?”
  • “전하, 서문을 내쫓아주시옵고 그 위엄을 보여주시옵소서!”
  • “맞사옵니다. 이런 망부는 몽둥이맛을 보여주고 내쫓아야 하옵니다.”
  • 사람들이 날린 침은 서문을 죽일 예정이었고 그와 같은 무관은 십여 명이 되는 문신들의 말발을 따라올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곧 그는 서숙의를 위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전하에게 불경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 서문은 화가 나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먹으로 소리를 내며 당장이라도 때릴 기세였다. 그 모습에 진무열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호통쳤다.
  • “그 입들 다물라!”
  • 사람들은 소리를 죽였고 서문은 그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며 이 사람들을 믿으면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진무열은 당연히 서숙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한 뒤 눈빛이 천천히 종정 소경 유승익의 몸에 멈췄다.
  • “말해보거라. 숙의 서씨의 국정을 어지럽힌 죄라고 했느냐?”
  • 유승익은 고개를 들고 진무열의 눈빛을 바라보며 마음이 두근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
  • “맞사옵니다.”
  • “좋다, 그렇다면 유승익이 과인에게 숙의 서씨가 어떻게 국정을 어지럽혔는지 말해보아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제보자로서 공이 있을 것이니 과인이 일품 대신으로 봉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함이라고 한다면 구족을 멸할 것이다!”
  • 진무열의 차가운 말투에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다.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전하가 화가 났다. 이 일을 계속 진행한다면 죽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도 전하의 위엄을 의심하면 안 됐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데 한마디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 유승익은 식은땀을 흘렸다. 전하가 서숙의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예상을 넘어섰다. 한순간 그들은 감히 이 일을 진행할 수 없었고 우측에 있는 안중원을 몰래 바라보았다. 안중원은 노련하게 표정 변화가 없이 나서서 인사를 올린 뒤 말했다.
  • “전하, 유대감은 종정 소신으로서 왕실 종친에 관한 일을 관리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직무 범위 내의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이리 위협을 주신다면 백관들의 마음이 식어 앞으로 어찌 상소할 수 있겠사옵니까?”
  • 진무열이 웃었다. 상소하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이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왕에 대한 위협이 아니란 말인가?
  • “진실이라면 상을 내릴 것이고 거짓이라면 벌을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상과 벌이 분명하거늘 어찌하여 이러는 것들이냐?”
  •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 영의정 임종서가 나서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 “전하, 유대감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 하는 말일 테니 말을 다 들어보는 건 어떠하옵니까?”
  • 진무열의 차가운 눈빛에 유승익은 연신 땀을 닦으며 말했다.
  • “전하, 어제 곽자운과 서문을 봉한다는 어명을 내리셨는데 서숙의가 집필한 것이 아니옵니까?”
  • 진무열은 눈빛을 반짝였다. 이것이 바로 국정을 어지럽힌것이란 말인가? 유승익이 말을 이었다.
  • “첫째, 서문과 숙의 서씨는 친남매로서 이런 어의는 사적인 감정이 섞였다는 혐의가 있사옵니다. 둘째, 율례의 규정에 따르면 후궁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사온데 서숙의는 정치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친히 어명까지 썼사옵니다. 전하의 명이었든 아니든 이것은 엄연한 국정을 어지럽힌 것이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후궁에선 가짜 어명을 나르는 사람이 많을 테고, 그렇게 되면 음모를 꾸미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옵니다. 셋째로는 어명이 내각을 거치지 않았다는 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니 서숙의는 엄히 처벌해야 하옵니다.”
  • 그가 말을 마치자 무릎을 꿇고 있던 열 명이 넘는 대신들이 한통속이 되었다. 서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일은 그의 불찰이었다. 어젯밤 어명이 발표되었을 때 그는 이것이 누이가 쓴 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군사를 소집하고 초비를 할 준비를 하느라 귀띔하는 것을 깜박했다.
  • 진무열이 담담히 대답했다.
  • “숙의 서씨가 어명을 쓴 것은 과인이 명한 것인데 그렇게 따지면 과인이 규칙을 어긴 것이다. 유대감의 말대로라면 과인까지 처벌할 셈인가?”
  • “황공하옵니다!”
  • 유승익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소신은 그저 고성국의 국강에 따라 상소를 올리는 것뿐이옵니다. 전하께서 잘못하실 수는 있겠지만 서숙의는 반드시 엄벌하셔야 하옵니다.”
  • 진무열의 두 눈에서 예리한 빛이 반짝였다.
  • “과인이 싫다면 어찌할 텐가?”
  • 진무열의 목소리는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마 이 일은 수습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 “만약 전하께서 서숙의를 처벌하지 않으려 하신다면 전하에 대한 공경한 마음을 담아 여기에서 계속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옵니다.”
  • 유승익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무열은 차갑게 웃으며 오늘 하나님이 온다고 해도 온이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라 생각했다.
  • “알았으니 나가서 꿇고 있거라. 숙의 서씨는 과인의 뜻에 따라 어명을 내린 것인데 누가 이 일을 문제 삼는다면 과인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이 말을 들은 서문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주먹을 풀었다. 전하께서 이 일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안중원, 임종서 등 사람들의 표정이 한순간 바뀌었고 마음은 아주 복잡했다.
  • 전하께서 이토록 서숙의를 감싼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서씨 집안은 은자가 많고 병사가 있어 조정에서 유일하게 안씨 집안과 맞설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안중원은 이 일로 인해 진무열과 문제가 생기는 것이 싫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진무열은 곽자운에게 나와서 얘기를 하도록 했다.
  • “전하, 소신은 관중에 있는 흉작에 관한 일로 상소를 올리려 하옵니다. 이것은 준비한 첫 번째 자금이온데 한번 봐주시옵소서.”
  • 곽자운은 장부를 올렸고 진무열은 힐끗 보고 나서 돈이 없으면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고 생각했다.
  • 궁전을 수선하고 용천신궁을 만들려던 은자를 전부 가져왔고 은전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바꿨음에도 은자 오십만 냥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 있던 오십만 냥까지 더하면 이재민 구제에 문제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구제가 끝나면 조정도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다.
  • 진무열은 장부를 모든 신하에게 보여주라고 명했다. 그러고는 어제 서숙의가 내놓은 땅문서와 은자를 던졌다. 상자가 콰당 소리를 내며 마침 유승익의 앞에 떨어졌다.
  • “다들 잘 보거라. 이것은 어제 숙의 서씨가 과인에게 준 것이다. 양식으로 바꿔 이재민 구제에 사용하라고 했다. 백성을 위해 숙의 서씨는 아껴 쓰고 아껴 모은 것과 궁에 들어올 때 지니고 왔던 예물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그대들은 무엇을 하였느냐? 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이재민 구제에 은자를 내놓아 과인의 걱정을 덜어주지는 못할지언정 숙의 서씨를 모함하고 있으니 과인을 화나서 죽게 할 셈이냐?”
  • 진무열은 용의를 내리치며 대노한 용안으로 호통을 쳐 많은 신하는 감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는 계속 화를 내며 유승익을 가리키며 말했다.
  • “과인은 그대들을 보면 볼수록 화가 난다. 여봐라, 이자들을 곤장 30대를 때리고 어명을 기다리도록 하라!”
  • 태극전 밖에서 금위군 두 부대가 들어와 사람을 데려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