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열은 눈빛을 반짝였다. 이것이 바로 국정을 어지럽힌것이란 말인가? 유승익이 말을 이었다.
“첫째, 서문과 숙의 서씨는 친남매로서 이런 어의는 사적인 감정이 섞였다는 혐의가 있사옵니다. 둘째, 율례의 규정에 따르면 후궁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사온데 서숙의는 정치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친히 어명까지 썼사옵니다. 전하의 명이었든 아니든 이것은 엄연한 국정을 어지럽힌 것이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후궁에선 가짜 어명을 나르는 사람이 많을 테고, 그렇게 되면 음모를 꾸미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옵니다. 셋째로는 어명이 내각을 거치지 않았다는 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니 서숙의는 엄히 처벌해야 하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무릎을 꿇고 있던 열 명이 넘는 대신들이 한통속이 되었다. 서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일은 그의 불찰이었다. 어젯밤 어명이 발표되었을 때 그는 이것이 누이가 쓴 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군사를 소집하고 초비를 할 준비를 하느라 귀띔하는 것을 깜박했다.
진무열이 담담히 대답했다.
“숙의 서씨가 어명을 쓴 것은 과인이 명한 것인데 그렇게 따지면 과인이 규칙을 어긴 것이다. 유대감의 말대로라면 과인까지 처벌할 셈인가?”
“황공하옵니다!”
유승익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소신은 그저 고성국의 국강에 따라 상소를 올리는 것뿐이옵니다. 전하께서 잘못하실 수는 있겠지만 서숙의는 반드시 엄벌하셔야 하옵니다.”
진무열의 두 눈에서 예리한 빛이 반짝였다.
“과인이 싫다면 어찌할 텐가?”
진무열의 목소리는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아마 이 일은 수습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만약 전하께서 서숙의를 처벌하지 않으려 하신다면 전하에 대한 공경한 마음을 담아 여기에서 계속 무릎을 꿇고 있을 것이옵니다.”
유승익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무열은 차갑게 웃으며 오늘 하나님이 온다고 해도 온이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라 생각했다.
“알았으니 나가서 꿇고 있거라. 숙의 서씨는 과인의 뜻에 따라 어명을 내린 것인데 누가 이 일을 문제 삼는다면 과인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서문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주먹을 풀었다. 전하께서 이 일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안중원, 임종서 등 사람들의 표정이 한순간 바뀌었고 마음은 아주 복잡했다.
전하께서 이토록 서숙의를 감싼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서씨 집안은 은자가 많고 병사가 있어 조정에서 유일하게 안씨 집안과 맞설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안중원은 이 일로 인해 진무열과 문제가 생기는 것이 싫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진무열은 곽자운에게 나와서 얘기를 하도록 했다.
“전하, 소신은 관중에 있는 흉작에 관한 일로 상소를 올리려 하옵니다. 이것은 준비한 첫 번째 자금이온데 한번 봐주시옵소서.”
곽자운은 장부를 올렸고 진무열은 힐끗 보고 나서 돈이 없으면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고 생각했다.
궁전을 수선하고 용천신궁을 만들려던 은자를 전부 가져왔고 은전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바꿨음에도 은자 오십만 냥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 있던 오십만 냥까지 더하면 이재민 구제에 문제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구제가 끝나면 조정도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다.
진무열은 장부를 모든 신하에게 보여주라고 명했다. 그러고는 어제 서숙의가 내놓은 땅문서와 은자를 던졌다. 상자가 콰당 소리를 내며 마침 유승익의 앞에 떨어졌다.
“다들 잘 보거라. 이것은 어제 숙의 서씨가 과인에게 준 것이다. 양식으로 바꿔 이재민 구제에 사용하라고 했다. 백성을 위해 숙의 서씨는 아껴 쓰고 아껴 모은 것과 궁에 들어올 때 지니고 왔던 예물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그대들은 무엇을 하였느냐? 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이재민 구제에 은자를 내놓아 과인의 걱정을 덜어주지는 못할지언정 숙의 서씨를 모함하고 있으니 과인을 화나서 죽게 할 셈이냐?”
진무열은 용의를 내리치며 대노한 용안으로 호통을 쳐 많은 신하는 감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는 계속 화를 내며 유승익을 가리키며 말했다.
“과인은 그대들을 보면 볼수록 화가 난다. 여봐라, 이자들을 곤장 30대를 때리고 어명을 기다리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