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목욕이라고는 하지만 씻으면서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마련이었다. 어양정기 한번 수련했을 뿐인데 진무열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강해진 것 같이 느껴졌고 혈기가 왕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끝내는 서숙의의 울먹임 속에서 일을 마쳤다.
밤하늘이 어두워지자 화양전으로부터 두 가지 어명이 나갔다. 하나는 곽자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문에 관한 것이다. 어명이 나가자 큰 파문이 일었고 대다수 신하가 가장 관심하는 것은 무슨 관리로 봉했는지가 아니라 진무열의 숨은 뜻이었다.
낙정에선 많은 신하가 사적으로 내통하고 있었는데 오늘 있은 일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안시향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화양전으로 사람을 보냈다.
“전하, 안귀인이 사람을 보내 말을 전달했사옵니다. 영롱전에서 가장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들러주시길 바란다고 하옵니다. 오늘 한 약속을 잊지 마시옵소서. 안귀인께서 오늘 몸이 불편하시니 전하께서 친히 가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사옵니다.”
시내관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진무열은 안시향이라는 이름을 듣자 머릿속에 그녀의 요염한 자태가 떠올랐다. 그녀는 서숙의와 달랐다. 한 명은 화려하고 요염했고 다른 한 명은 부드럽고 조용했다.
안시향을 쓰러뜨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이것은 남자로서의 본성이었다. 하지만 안시향은 신분이 특수하여 좀 더 관찰하고 난 뒤 싹을 잘라버려야 했다. 그 시각 그는 한줄기 눈빛이 자신의 몸에 멈춰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서숙의의 눈빛이었는데 무성의 호소였다. 그녀는 그가 잠들 옷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진무열은 지금 이 순간 떠나간다면 그녀가 상심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종일 괴롭히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소문을 보며 말했다.
“안귀인께서 몸이 불편하시면 일찍 쉬라고 하거라. 심각하면 어의를 부르고. 그리고 어명을 전달하거라. 오늘 과인이 얘기했던 벌금에 대해 한 푼도 양보할 수 없으니 내일 영롱전에서 올린 재해 구조 금액을 봐야겠다.”
시내관은 이 말을 듣고 비록 아주 놀라기는 했지만 감히 더 물을 수 없어 대답하고 나서 물러나갔다. 서숙의는 곧 환한 기색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전하, 신첩이 준비를 다 해놓았사옵니다. 날이 늦었으니 일찍 쉬시지요.”
서숙의는 발걸음을 조금씩 움직였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이틀 동안 진무열의 시중을 드느라 그녀는 이미 지쳐있었다. 진무열은 상소문을 내려놓고 손으로 콧등을 만지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오. 상소문을 전부 봐야겠소. 곽자운이 일을 아주 완벽히 잘하오. 이미 나에게 상소문 하나를 올렸소. 국고가 공허하니 일부 지출을 줄인다고 해도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 도움이 되긴 어렵소.”
서숙의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진무열이 너무 낭비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안에 들어가 네모난 상자를 꺼내왔다.
“전하, 신첩,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 싶사옵니다.”
진무열은 배나무로 만든 상자를 보고 나서 물었다.
“무엇이오?”
“신첩이 입궁할 때 가지고 온 것들이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내려주신 금은보화들과 땅문서와 장신구들이온데 전부 내놓으려 하옵니다.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 보탬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서숙의는 미소를 지은 채 말하면서 진무열에게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진무열은 어색했다. 당당한 왕이 돼서 여자의 돈을 받다니. 그는 쓴웃음을 띠고 말했다.
“서숙의, 장난치지 마오. 이것들을 다 팔아도 얼마되지 않을 것이오. 제해방지용으로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오. 과인이 안귀인을 벌한 것은 그녀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니 서숙의가 이럴 필요 없소.”
서숙의는 살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전하, 이 상자를 얕보면 안 되옵니다. 열어보시지요.”
진무열은 멍하니 있다가 반신반의하며 열어보았다. 보석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많은 희귀한 보석 품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은자와 집문서도 조금 있었다. 진무열은 놀라면서 이 은자가 십만 냥이나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낙정의 땅문서 몇 장도 있었는데 그 가치가 20만 냥은 넘을 것 같았다.
“헉!”
그는 차가운 기운을 들이쉬고 서숙의를 바라보며 물었다.
“서숙의,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은자가 난 것이오?”
서숙의는 신비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신첩의 조상님들이 뭘 하는 사람이었는지 잊으셨사옵니까?”
진무열은 눈썹을 찌푸리고 기억을 되돌려보았다. 서씨 집안의 조상들은 문관이나 무가가 아닌, 그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 가문이었다. 고성국이 개국할 때 천하에 전쟁을 알렸었는데 서씨 가문의 조상들은 돈이나 양식을 지원했다. 그래서 오늘의 이런 국면이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몸 주인이 서숙의를 들인 것이 바로 서씨 집안의 부유함이 한 나라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조정에 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기에 이것은 통혼이라 볼 수 있었다.
“허허, 과인의 기억력을 좀 보오, 서숙의가 부자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구려.”
진무열은 말을 하며 그녀를 품에 안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부자라? 서숙의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진무열의 표정으로 자신을 조롱하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숙의의 아름다운 얼굴에 부끄러움이 떠오르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께선 신첩을 조롱하시는 것이옵니까?”
“하하!”
진무열은 크게 웃었다. 그는 서숙의와 특별한 감정이 있었고 그녀를 아내로 간주하고 있었다. 안시향 안귀인은 비록 놀라울 정도로 예뻤지만 그의 하반신 정도만 붙잡을 정도였지 그의 마음을 잡을 순 없었다. 서숙의는 까만 눈초리를 깜박이다가 갑자기 말했다.
“전하, 은자가 더 필요하시면 제가 본가에 다녀오도록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 돈을 구해와 조정의 이번 난관을 도울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진무열은 고개를 저었다.
“온이, 장인어른 장모님의 은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소.”
서숙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첩도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을 그르칠 순 없지 않사옵니까. 저의 아버지도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이라면 선뜻 은자를 내주실 것이옵니다.”
진무열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멀리 있는 침전밖 밤 경치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은자는 서씨 가문에서 내면 안 되오. 누가 과인의 은자를 먹었으면 그자가 도로 토해내야 하오. 백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지방 관원들이 은자를 내 이재민을 구제해야 하오.”
이 말을 들은 서숙의는 아름다운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전하는 점점 더 임금다워지고 있었다.
“온이, 이 은자들과 땅문서는 과인이 가져갈 것이오,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엔 서숙의의 공로도 있소. 하지만 이 장신구들은 간직하고 있소. 장인어른한테는 은자를 따로 요구하진 마시오. 과인이 대처할 방법이 있소. 내일 아침 조정에서 과인은 문무백관들이 고분고분 은자를 내놓을 수 있게 할 것이오.”
서숙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고민에 잠긴 듯했다. 어떻게 돈을 빌리지 않고 진무열을 도울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조정은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후궁 정도는 거닐 수 있었다.
다음날. 날씨가 아주 좋았다. 궁은 삼엄했고 황금빛 햇살이 침전의 지붕을 비췄으니 그 모습은 장엄한 풍경을 방불케 했다. 주렴이 바람에 흔들렸고 옷가지들이 침상 아래에 던져진 채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용상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고 서숙의는 어깨를 반쯤 드러내고 있었는데 보일 듯 말 듯한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어색하게 두 손으로 진무열을 껴안고 다급히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최나인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