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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다 방법이 있다

  • 비록 목욕이라고는 하지만 씻으면서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마련이었다. 어양정기 한번 수련했을 뿐인데 진무열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강해진 것 같이 느껴졌고 혈기가 왕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끝내는 서숙의의 울먹임 속에서 일을 마쳤다.
  • 밤하늘이 어두워지자 화양전으로부터 두 가지 어명이 나갔다. 하나는 곽자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문에 관한 것이다. 어명이 나가자 큰 파문이 일었고 대다수 신하가 가장 관심하는 것은 무슨 관리로 봉했는지가 아니라 진무열의 숨은 뜻이었다.
  • 낙정에선 많은 신하가 사적으로 내통하고 있었는데 오늘 있은 일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안시향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화양전으로 사람을 보냈다.
  • “전하, 안귀인이 사람을 보내 말을 전달했사옵니다. 영롱전에서 가장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들러주시길 바란다고 하옵니다. 오늘 한 약속을 잊지 마시옵소서. 안귀인께서 오늘 몸이 불편하시니 전하께서 친히 가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사옵니다.”
  • 시내관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진무열은 안시향이라는 이름을 듣자 머릿속에 그녀의 요염한 자태가 떠올랐다. 그녀는 서숙의와 달랐다. 한 명은 화려하고 요염했고 다른 한 명은 부드럽고 조용했다.
  • 안시향을 쓰러뜨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이것은 남자로서의 본성이었다. 하지만 안시향은 신분이 특수하여 좀 더 관찰하고 난 뒤 싹을 잘라버려야 했다. 그 시각 그는 한줄기 눈빛이 자신의 몸에 멈춰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서숙의의 눈빛이었는데 무성의 호소였다. 그녀는 그가 잠들 옷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 진무열은 지금 이 순간 떠나간다면 그녀가 상심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종일 괴롭히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소문을 보며 말했다.
  • “안귀인께서 몸이 불편하시면 일찍 쉬라고 하거라. 심각하면 어의를 부르고. 그리고 어명을 전달하거라. 오늘 과인이 얘기했던 벌금에 대해 한 푼도 양보할 수 없으니 내일 영롱전에서 올린 재해 구조 금액을 봐야겠다.”
  • 시내관은 이 말을 듣고 비록 아주 놀라기는 했지만 감히 더 물을 수 없어 대답하고 나서 물러나갔다. 서숙의는 곧 환한 기색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전하, 신첩이 준비를 다 해놓았사옵니다. 날이 늦었으니 일찍 쉬시지요.”
  • 서숙의는 발걸음을 조금씩 움직였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이틀 동안 진무열의 시중을 드느라 그녀는 이미 지쳐있었다. 진무열은 상소문을 내려놓고 손으로 콧등을 만지며 말했다.
  • “잠시만 기다리오. 상소문을 전부 봐야겠소. 곽자운이 일을 아주 완벽히 잘하오. 이미 나에게 상소문 하나를 올렸소. 국고가 공허하니 일부 지출을 줄인다고 해도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 도움이 되긴 어렵소.”
  • 서숙의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진무열이 너무 낭비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안에 들어가 네모난 상자를 꺼내왔다.
  • “전하, 신첩,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고 싶사옵니다.”
  • 진무열은 배나무로 만든 상자를 보고 나서 물었다.
  • “무엇이오?”
  • “신첩이 입궁할 때 가지고 온 것들이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내려주신 금은보화들과 땅문서와 장신구들이온데 전부 내놓으려 하옵니다.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 보탬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 서숙의는 미소를 지은 채 말하면서 진무열에게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진무열은 어색했다. 당당한 왕이 돼서 여자의 돈을 받다니. 그는 쓴웃음을 띠고 말했다.
  • “서숙의, 장난치지 마오. 이것들을 다 팔아도 얼마되지 않을 것이오. 제해방지용으로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오. 과인이 안귀인을 벌한 것은 그녀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니 서숙의가 이럴 필요 없소.”
  • 서숙의는 살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 “전하, 이 상자를 얕보면 안 되옵니다. 열어보시지요.”
  • 진무열은 멍하니 있다가 반신반의하며 열어보았다. 보석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많은 희귀한 보석 품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은자와 집문서도 조금 있었다. 진무열은 놀라면서 이 은자가 십만 냥이나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낙정의 땅문서 몇 장도 있었는데 그 가치가 20만 냥은 넘을 것 같았다.
  • “헉!”
  • 그는 차가운 기운을 들이쉬고 서숙의를 바라보며 물었다.
  • “서숙의,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은자가 난 것이오?”
  • 서숙의는 신비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 “신첩의 조상님들이 뭘 하는 사람이었는지 잊으셨사옵니까?”
  • 진무열은 눈썹을 찌푸리고 기억을 되돌려보았다. 서씨 집안의 조상들은 문관이나 무가가 아닌, 그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 가문이었다. 고성국이 개국할 때 천하에 전쟁을 알렸었는데 서씨 가문의 조상들은 돈이나 양식을 지원했다. 그래서 오늘의 이런 국면이 있었던 것이었다.
  • 처음부터 몸 주인이 서숙의를 들인 것이 바로 서씨 집안의 부유함이 한 나라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조정에 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기에 이것은 통혼이라 볼 수 있었다.
  • “허허, 과인의 기억력을 좀 보오, 서숙의가 부자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구려.”
  • 진무열은 말을 하며 그녀를 품에 안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부자라? 서숙의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진무열의 표정으로 자신을 조롱하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숙의의 아름다운 얼굴에 부끄러움이 떠오르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전하께선 신첩을 조롱하시는 것이옵니까?”
  • “하하!”
  • 진무열은 크게 웃었다. 그는 서숙의와 특별한 감정이 있었고 그녀를 아내로 간주하고 있었다. 안시향 안귀인은 비록 놀라울 정도로 예뻤지만 그의 하반신 정도만 붙잡을 정도였지 그의 마음을 잡을 순 없었다. 서숙의는 까만 눈초리를 깜박이다가 갑자기 말했다.
  • “전하, 은자가 더 필요하시면 제가 본가에 다녀오도록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 돈을 구해와 조정의 이번 난관을 도울 것이옵니다.”
  • 이 말을 들은 진무열은 고개를 저었다.
  • “온이, 장인어른 장모님의 은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소.”
  • 서숙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신첩도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을 그르칠 순 없지 않사옵니까. 저의 아버지도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이라면 선뜻 은자를 내주실 것이옵니다.”
  • 진무열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멀리 있는 침전밖 밤 경치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 “이 은자는 서씨 가문에서 내면 안 되오. 누가 과인의 은자를 먹었으면 그자가 도로 토해내야 하오. 백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지방 관원들이 은자를 내 이재민을 구제해야 하오.”
  • 이 말을 들은 서숙의는 아름다운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전하는 점점 더 임금다워지고 있었다.
  • “온이, 이 은자들과 땅문서는 과인이 가져갈 것이오, 이재민을 구제하는 데엔 서숙의의 공로도 있소. 하지만 이 장신구들은 간직하고 있소. 장인어른한테는 은자를 따로 요구하진 마시오. 과인이 대처할 방법이 있소. 내일 아침 조정에서 과인은 문무백관들이 고분고분 은자를 내놓을 수 있게 할 것이오.”
  • 서숙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고민에 잠긴 듯했다. 어떻게 돈을 빌리지 않고 진무열을 도울까 생각하는 중이었다. 조정은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후궁 정도는 거닐 수 있었다.
  • 다음날. 날씨가 아주 좋았다. 궁은 삼엄했고 황금빛 햇살이 침전의 지붕을 비췄으니 그 모습은 장엄한 풍경을 방불케 했다. 주렴이 바람에 흔들렸고 옷가지들이 침상 아래에 던져진 채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용상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고 서숙의는 어깨를 반쯤 드러내고 있었는데 보일 듯 말 듯한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어색하게 두 손으로 진무열을 껴안고 다급히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최나인에게 말했다.
  • “최나인, 빨리 따뜻한 물을 준비하거라. 전하께서 곧 조회에 나갈 것이다.”
  • “조금 늦게 갈 것이오.”
  • 진무열이 말을 얼버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