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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남자: 천하제패 도전기

왕이 된 남자: 천하제패 도전기

kiro

Last update: 2022-09-27

제1화 더는 매를 들지 않겠소

  • 화양전, 단향목 향내음이 가득한 가운데 진무열이 잠에서 깨어났다.
  • 그의 침상 앞에 당의를 입은 고전적인 미인이 있었는데 크고 아름다운 눈매는 유난히 부드러웠으며 두 볼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희고 불그레한 것이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 그녀의 굴곡이 분명한 몸매는 완벽한 S라인을 뽐내고 있었고 완벽하다는 말 이외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 진무열이 깜짝 놀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 ‘누구지? 요즘 핫한 여자 배우보다 만 배는 더 예쁜 것 같은데?’
  • “전하, 조금 전 넘어지면서 액상을 다치셨는데 지금 좀 괜찮아지셨사옵니까? 아직도 아프사옵니까?”
  • 아름다운 그녀가 나지막이 물었다.
  • 진무열의 동공이 차츰 확대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야에 의관, 상궁, 용의 장식을 한 침상들이 들어왔다.
  • 순간 기억이 물밀 듯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경자년, 고성국, 임금 진무열, 칭호 천파대군.
  • ‘내가 타임슬립했어!’
  • 두 개의 영혼 속에 담긴 기억 조각이 융합되며 그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 “으악!”
  • 진무열이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힘껏 자기 머리를 내리쳤다.
  •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에 혼비백산한 서숙의가 놀란 표정으로 얼른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 “전하, 전하! 왜 그러시옵니까? 신첩을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
  • 진무열은 기억이 흐리멍덩하게 섞인 채로 서숙의의 부드러운 품에 드러누워 버렸다.
  • 한참이 지나서 그가 진정되자 어수선해진 침전도 평정을 되찾았다.
  • “임의관, 전하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 서숙의는 마치 부드러운 아내인 양, 걱정하는 투로 물었다.
  • 그녀는 진무열이 자신의 궁전에서 다쳐 그 폐가 친정에 끼칠까 두려웠다.
  • “서숙의 마마께 아뢰옵니다. 전하께선 무사하십니다. 다만 정신이 피폐해지셨고 또 조금 전 이마를 부딪쳐 상흔이 생겼으니 휴식을 취해야 할 뿐이옵니다.”
  • 그 말을 듣자 서숙의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그녀의 눈빛은 마치 다행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녀는 왕의 “난폭한 성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고맙소, 임의관.”
  • “최나인, 나를 대신하여 임의관을 배웅하거라.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가져오는 것도 잊지 말아라.”
  • “알겠사옵니다.”
  • 얼마 후, 침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온 임의관이 최상궁을 떼어놓고 몰래 전서구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 편지엔 간결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 “성체가 나날이 허약해 지고 있소. 오늘 힘을 잃고 넘어지기까지 하였소.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고 있소.”
  • 전서구가 날아가자 그의 표정에 음침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침전 안.
  • 진무열은 옥좌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 그가 진짜로 타임슬립했다. 게다가 어엿한 정통 임금이라니,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천하를 다스리고 수많은 미인의 품에서 잠드는 임금이라니!
  • 이 왕조의 연대는 고성이었으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평행세계로 타임슬립한 것 같았다.
  • “전하, 옥체에 무리가 없으시다니 신첩은 이만 물러나 전하께서 휴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사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신첩을 바로 부르시면 되시옵니다.”
  • 서숙의의 목소리는 마치 샘물이 바위에 떨어지는 것 같이 듣기 좋아 가슴을 울렸으며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 “아니 되오! 가지 마시오!”
  • 진무열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가느다란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 “서숙의는 내 곁에 남으시오. 어디도 가면 안 되오.”
  • 팔목의 통증에 서숙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서러운 듯 답했다.
  • “전하, 신첩 어디에도 가지 않을 테니 화내지 말아 주세요.”
  • 진무열은 그녀의 아파하는 표정을 보며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 ‘손목을 가볍게 잡았을 뿐인데 왜 이토록 아파할까?’
  • 그는 무의식적으로 서숙의의 옷깃을 들춰보고 깜짝 놀랐다.
  • 그녀의 손목은 가늘고 눈처럼 흰데 그곳엔 수많은 멍과 상처로 덮여 본연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심지어 흉측할 정도였다.
  •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다 똑같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이 세계 아내가 아닌가?
  • 진무열은 화가 나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 “누가 한 짓이오? 어느 간 큰 놈이 서숙의를 건드렸소? 내가 그놈 살가죽을 벗겨내겠소!”
  • 그 말을 듣자 서숙의는 눈가가 불그레해지더니 눈물을 뚝뚝 떨구며 바닥에 꿇어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왕은 안귀인만 총애하고 안귀인의 말이라면 고분고분 들어줬으나 그녀를 마주할 땐 걸핏하면 때리고 욕했다. 어젯밤도 그 불여우가 중간에서 이간질하여 그녀가 매를 맞았었다.
  • 또한 왕은 간신배의 참언을 믿고 안씨 가문을 유난히 예뻐했는데 안씨 가문의 자식들이 조정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하여 대권이 남의 수중에 넘어가 왕권이 위태롭게 되었다.
  • 이러한 말은 충언이었으나 귀에 거슬리기 마련이었다.
  • 그녀는 대접받지 못하는 귀인에 불과했으니 어찌 도깨비에게 홀린 것 같은 왕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
  • 그녀가 대답이 없자 진무열은 안달난 듯 따져 물었다.
  • “내가 묻지 않소.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말이오. 이토록 흉포하게 내 여인에게 손을 대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가 한 짓임이 틀림없소!”
  • 서숙의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진무열을 바라봤다.
  • ‘전하께서 설마 어젯밤 일을 기억하시지 못하는 건가?’
  • 진무열이 계속하여 추궁하자 그녀는 결국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 “전하, 어젯밤 신첩이 시침하러 와서 전하께 안마를 해주고 있었으나 안귀인처럼 편안하게 모시지 못하여 용안을 불쾌하게 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전하께서 옥대로 신첩을 때렸사옵니다. 그리고 신첩더러 화양전에서 나가라고 하셨사옵니다.”
  • 말을 마치고 그녀는 굉장히 속상한 듯, 조용히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다.
  • 진무열이 경악했다.
  • ‘이 몸의 주인이 그 정도로 나쁜 놈이었어?’
  • 서숙의의 몸에 난 상처를 보면 옥대로 한번 때렸다고 보긴 어려웠다.
  • ‘이건 분명 여러 번 힘껏 때린 거야. 가정폭력 수준이야.’
  • 그는 아름다운 서숙의가 서글프게 우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자책감이 몰려왔다.
  • 진무열이 옥좌에서 내려와 그녀의 부드러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 “흠흠, 서숙의는 일어나시오. 내 그 일이 생각났소. 서숙의를 때린 것은 내 잘못이니 그대에게 사과하오.”
  • 그 말에 서숙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목숨이 아깝지 않은 이상 어찌 감히 왕의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 “전하, 신첩이 어찌 감히 그리하겠사옵니까. 신첩의 부주의로 용안을 노하게 하였으니 전하와는 상관없는 일이옵니다.”
  • 그녀의 말을 듣자 진무열이 탄식했다. 이토록 아름답고 점잖으며 아량도 넓은 여자를 이 몸의 주인이 때렸었다니. 그는 머리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보였다.
  • “서숙의, 울지 마시오. 내가 약조하리다. 앞으로 그간 못 해준 것을 보태어 서숙의를 천하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오. 그대는 만인이 부러워하는 내 여인이 될 것이오.”
  • 그 말을 들은 서숙의의 눈동자가 암울한 빛을 띠었다. 그 속엔 약간의 원망도 서려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으며 억울한 듯 호소했다.
  • “황송하옵니다, 전하. 신첩은 다만 전하께서 정무에 심혈을 기울이시고 고성국 권신(权臣)의 횡포와 외족(异族)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을 직시하여 조상님께서 이룬 업적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옵니다.”
  • “그리고... 전하께서 앞으로 저에게 매를 드실 때 너무 아프게 때리지 않으면 신첩은 더 바랄 것이 없사옵니다.”
  •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신의 처지가 비천한 듯, 다시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진심으로 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잘 보좌하고 싶었으나 간악한 인간이 앞길을 가로막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 “내가 서숙의에게 매를 여러 번 들었었소?”
  • 진무열이 안타까운 마음에 별안간 물었다.
  • 그는 몸 주인의 일부 기억 조각만 갖고 있을 뿐이라 세부적인 기억은 많이 부족했다.
  • 서숙의는 아름다운 눈매로 그를 흘긋 보더니 겁이 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젠장! 몸 주인은 완전 미친놈 아냐?’
  • 진무열이 속으로 욕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남자로서 그녀를 보호하고 싶은 욕구에 커다란 손으로 서숙의의 부드러운 몸을 품에 안았다.
  • 부드러운 촉감, 향긋한 냄새에 그는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다.
  • ‘이게 왕이 된 기본 옵션인가? 자고로 영웅일지라도 미인의 유혹을 뿌리치긴 어렵다는 말이 있지.’
  • “서숙의, 오늘부로 난 절대 그대를 때리지 않을 것이오. 전에 못 해준 것까지 더하여 더 아껴줄 것이오!”
  • 진무열은 자신의 몸이 천천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