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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재벌

슈퍼재벌

G훈

Last update: 2022-11-28

제1화 변신 프로젝트

  •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나가자 북적거리던 식당도 점차 조용해졌다.
  • 삼삼오오 떼를 지어 웃음꽃을 피우며 식당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과 달리 식당 구석에는 수수한 옷차림에 스포츠머리를 한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꼬르륵거리는 배를 만지며 식탁 위에 남은 밥과 반찬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대부분의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간 후에야 그 남학생은 쏜살같이 식탁 앞으로 달려왔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이 먹다 남긴 만두를 집어 들고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었다.
  • 아직 식당 밖으로 나가지 않은 학생들은 그 광경에 멍해졌다.
  • 아마 다들 21세기에 밥을 굶는 거지가 있다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빌어먹을 영감탱이!”
  • “시대가 어느 땐데 나한테 이런 변신을 시켜!”
  • 남학생은 허겁지겁 남은 밥을 먹으며 슬픈 얼굴로 중얼거렸다.
  • “심지성?”
  • 바로 그때, 경악에 가득 찬, 심지어 경멸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른 사람이 반쯤 먹다 남긴 만두를 물고 있던 심지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앞에 풀 메이크업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 “너 뭐 하는 거야?”
  • “밥 먹잖아!”
  • 여자는 살짝 멈칫했다. 이내 그녀의 얼굴에 극도로 멸시하는 듯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 “하하, 여울이가 널 차겠다고 해서 다행이야!”
  • “안 그럼 남들이 우리 방 사람들도 빈털터리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심지성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 그는 변변치 못한 식사를 하더라도 자신과 함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여자가 자신을 떠난다는 걸 믿지 못했으니까.
  •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심지성은 바로 교문 앞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 같은 시각 교문, 최신형 BMW 세단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내렸다.
  • 남자는 훤칠하고 잘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5등신 몸매로, 수호전에 나오는 무대와 똑 닮았다. 여자는 경국지색까지는 아니었지만 청순하고 예쁜 편이었다.
  • 헐레벌떡 교문 앞으로 달려온 심지성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 지금 못생기고 돈 많은 남자의 팔을 잡고 있는 여자의 이름은 전여울이다. 심지성과 반 년 동안 연애를 했던 여자 친구.
  • BMW를 운전하는 못생기고 돈 많은 남자는 심지성의 학우 진기석이다. 게다가 그 자식은 돈 많은 집안의 힘으로 반장 자리까지 차지했다.
  • 그는 평소에 반에서 앞뒤로 적지 않은 끄나풀들을 몰고 다녔다.
  • “여울아!”
  • 수없이 많이 불렀던 이름이지만, 심지성은 지금 이 순간 그 이름을 내뱉는 느낌이 씁쓸했다.
  • 심지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전여울의 화사한 미소가 이내 굳어졌다. 하지만 눈동자에는 미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 그 재벌 2세 진기석은 진작부터 심지성에게 극도로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 “원래는 기회를 봐서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보게 됐네!”
  • “그럼 지금부터 날 찾아오지 않길 바라. 기석이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아.”
  • 심지성은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말끝마다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했던 여자가 이렇게 허영심 많고 비정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 “거지새끼야, 여울이 말 못 들었어?”
  • “당장 꺼져!”
  • 재벌 2세 진기석은 심지성과 말 한마디라도 더 섞으면 가난한 기운이 옮겨붙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정신을 차린 심지성은 환하게 웃으며 진기석의 품에 안겨 있는 전여울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세상을 꿰뚫어본 듯 태연한 미소를 지었다.
  • “보아하니 어르신 말이 맞네!”
  • “전여울, 네가 앞으로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길 바라!”
  • 전여울과 진기석에게 심지성의 그 말은 완전히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다.
  • “후회?”
  • “널 차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 매몰찬 전여울의 태도가 심지성의 마지막 희망을 끊어버렸다. 그는 덤덤히 웃으며 돌아섰다.
  • 주위를 오고 가는 학생들이 그 광경을 모두 목격했지만 아무도 심지성을 동정하지는 않았다. 전교생이 다 아는 빈털터리인 그와 함께 남은 밥을 먹으려는 여자는 아무도 없을지도 몰랐다.
  •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온 심지성은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조금 복잡했다.
  • “지성아, 좋게 생각해!”
  • “우리가 앞으로 노력하면 그 여자를 후회하게 만들 수 있어!”
  • 멀지 않은 곳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근육질 몸매의 남학생이 마우스를 내려놓고 심지성에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두드렸다.
  • 그 남학생은 심지성과 같은 기숙사 방을 쓰는 친구 조우빈이었다.
  • “진기석 그 개자식 정말 사람이 아니야. 아까 너 없었잖아!”
  • “그 개새끼가 널 찾으러 와서 네가 등록금을 안 냈다고 했어. 내일도 등록금을 안 내면 그 개새끼가 널 난처하게 만들 거야!”
  • “웅휘랑 종문 오면 우리가 방법을 생각해서 돈 좀 마련해 줄게!”
  • 심지성은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조우빈을 바라보더니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우빈아, 학비는 너희들한테 신세 지지 않을게.”
  • “내일 나랑 은행에 가줘.”
  • 심지성이 은행을 간다는 말에 조우빈은 멈칫했다. 이내 그는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 “지성아,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진기석 그 개새끼를 찾아가서 증명서를 받아야 해!”
  • “나 대출 안 받아, 돈 찾으러 가는 거야!”
  • 심지성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심플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침대에 엎드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 심지성은 꼬박 1년 동안 학교에서 유명한 빈털터리로 살았다. 파지를 주워 돈을 바꾸는 건 예삿일이고 오늘은 식당에 가서 남은 밥까지 먹었다.
  •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심지성이 심 씨 가문의 1순위 후계자라는 사실을. 심 씨 가문은 조선시대부터 전국 최고의 부자였다.
  • 오늘날에는 천 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가문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동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슈퍼 재벌인 심 씨 가문은 전 세계 대부분의 경제 명맥을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의 로스차일드 패밀리도 심 씨 집안과 비교하면 한참 후배였다.
  • 1년 넘게 이어져온 변신 프로젝트는 오늘이 마지막 밤이었다. 내일 사람들 앞에 나타날 심지성은 파지를 주워 학비를 버는 심지성이 아닐 것이다.
  • 다음날 이른 아침, 심지성은 기지개를 켜자마자 조우빈을 끌고 곧장 시티은행으로 달려갔다.
  • 휘황찬란한 기세를 뿜으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시티은행을 바라보던 조우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더니 멍한 표정으로 심지성을 돌아보며 도저히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 “지성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
  • “그냥 은행일 뿐이잖아?”
  • 정신을 차린 조우빈이 손을 들어 심지성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심지성이 열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바로 심지성을 끌고 가려고 했다.
  • “지성아, 그만해. 시티은행은 프라이빗 은행이라 몸값이 수억 원 정도 되지 않으면 카드 한 장 만들 자격도 없어!”
  • 심지성이 막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 “심도령은 에어컨 바람을 맞으러 온 건가?”
  • 다급한 브레이크 소리가 울렸다. 최신형 BMW는 심지성 그들의 몸을 거의 스치며 멈춰 섰다.
  • 이런 적나라한 수모에 심지성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조우빈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손을 댈 기세였다.
  • 이내 진기석이 전여울의 개미허리를 감싸고 차에서 내렸다.
  • 짙은 화장을 하고 예전의 청순하고 소박했던 이미지를 벗어던진 전여울을 본 심지성의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경멸의 빛이 스쳤다.
  • “진기석, 남을 너무 업신여기지 마!”
  • “두 빈털터리, 여기가 어떤 곳인지 좀 보지?”
  • 진기석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심지성 그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입구의 경비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얼른 이 빈털터리들을 쫓아내!”
  • 말끔한 옷차림에 최신형 BMW를 타고 있는 진기석에 비해 심지성이나 조우빈이나 온몸에 궁상맞은 기운이 맴도는 것 같았다.
  • 두 경비원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심지성 그들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떠나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죄송해요. 저희는 돈을 찾으러 왔어요.”
  • 심지성은 덤덤하게 웃었다. 큰 돌이 물에 떨어진 듯, 순간 거센 파도가 일었다.
  • 진기석은 허리도 펴지 못하며 웃었고 다급해진 조우빈도 힘껏 심지성의 팔을 잡아당겼다. 개망신을 당하기 전에 심지성을 데리고 떠날 생각인 것이다.
  • “심지성, 전에는 네가 성실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난한 것도 모자라 허세까지 있구나.”
  • 전여울은 극도로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심지성을 쳐다보았다. 신랄한 말투에서는 옛정을 신경 쓰는 마음이 조금도 묻어나지 않았다.
  • “됐어, 여울아. 이런 빈털터리랑 얘기하는 건 침 낭비야.”
  • “우리는 이 빈털터리가 개망신을 당하는 걸 구경만 하면 돼.”
  • 진기석은 경비원이 바로 심지성을 내쫓는 걸 보는 것보다는 그가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얼마나 처참한 비명을 지르는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