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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마음이 맞는 사람

  • 콧구멍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서문아의 은은한 체취로 가득 찼고 그 순간 심지성도 침착함을 잃었고 온몸은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 “조금 알 뿐이죠.”
  • “하하, 겸손한 동생이네.”
  • 심지성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 서문아와 거리를 유지했다. 서문아가 분명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물인 건 맞지만 이런 팜므파탈을 멀리하는 심지성의 태도는 언제나 한결같다.
  • “겁먹기는, 설마 누나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겠니.”
  • “문아 누나, 이 도자기가 모조품이라는 게 밝혀졌으니, 그 6억은…”
  • “됐어, 네가 나 대신 배신자를 제거해 줘서 내가 더 고마운걸.”
  • “누나가 고마움의 표시로 사례를 할게.”
  • 거절이 안 먹히자 심지성은 어쩔 수 없이 서문아가 건넨 접부채를 받았다.
  • 심지성과 친구들이 떠난 뒤에야 서문아는 심지성의 뒷모습에서 의미심장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 “문아 언니, 골동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닌데 우리가 굳이 저 가난한 자식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을까요?”
  • 서문아는 차갑게 웃었고 눈동자 깊숙이 감춰져 있던 지혜로움이 드러났다.
  • “네가 뭘 알아, 저놈한테서 만만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져. 귀인이 분명해.”
  • “저 녀석에 대해서 좀 알아봐.”
  • 방금 송림가를 빠져나온 심지성은 갑자기 재채기를 세게 했다. 그는 아직 자신이 팜므파탈 서문아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지성아, 우리가 미안해…”
  • “됐어, 우빈 형. 동고동락하는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 할 필요 없어.”
  • “게다가 접부채도 공짜로 선물 받았잖아?”
  • 남자끼리의 브로맨스는 여자들의 우정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아무리 큰 갈등이라도 한바탕 싸우고 나면 또다시 호형호제할 수 있는 것이 남자들의 우정이다.
  • “지성아, 내가 봤을 땐 서문아가 너한테 관심이 있어 보여. 어떻게 노력 좀 해봐.”
  • “서문아를 여자친구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전여울 그 여우 같은 계집애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 심지성에게 서문아한테 구애를 하라고 부추기는 건 음흉한 표정을 지은 조우빈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기숙사에서 가장 성실한 셋째도 똑같이 흥분한 얼굴로 바람을 넣었다.
  • “말도 안 돼, 그 여자는 내 스타일 아니야."
  • 이 말을 할 때 심지성의 머릿속에는 인성과 재능 모두 뛰어난 윤희원의 예쁜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 팜므파탈이든 뭐든 오직 윤 선생님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 침실로 돌아오자 정문종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심지성 등에게 팀전으로 게임을 하자고 했지만 오늘 정문종을 상대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 “문종이 넌 매일 할 줄 아는 게 게임밖에 없어? 우리 기숙사 애들 좀 봐봐, 지금 다들 솔로야.”
  • 조우빈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영대의 남녀 비율은 공포의 2 대 8이다.
  • 이런 비율 속에서도 연애를 못한다면 그건 정말 쪽팔린 일이다.
  • “우빈 형, 형수님한테 얘기해서 우리한테도 여자 몇 명 소개해 달라고 하면 안 돼?”
  • 침대에 벌러덩 엎드려 라이브 앱을 다운로드하고 있는 중인 심지성은 조우빈 삼인방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 “지성이 너도 기죽을 거 없어. 넌 이젠 임페리얼의 사장이잖니.”
  • “마침 오늘 구름이랑 밥 먹으러 갈 건데 내가 한 번 얘기해 볼게. 주말에 친목회를 열어서 우리 기숙사 멤버들 솔로 탈출해야지.”
  • “띠링.”
  • 라이브 앱 설치 완료 신호음이 울렸다. 곧 폰으로 윤희원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심지성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고 하마터면 침대에서 펄쩍펄쩍 뛸 뻔했다.
  • “여신님, 내가 왔어요.”
  • 주말 남녀 기숙사 친목 다짐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떠들썩하던 침실은 심지성의 그 한마디에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 조우빈 삼인방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심지성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심지성의 입에서 나온 여신은 보나 마나 어느 섬나라 성인 영화에 출연하는 여자 연예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 심지성은 한껏 기대에 차 라이브 앱을 열었고 윤희원의 라이브 방 번호를 입력했다. 곧 이어폰으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 심지성은 윤희원의 노래에 완전히 심취했고 노래 한 곡이 완전히 끝나니 윤희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성은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 “여러분의 구독과 별 풍선 감사합니다!”
  • 인기가 별로 없는 탓에 자막과 별 풍선은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지만 윤희원은 적은 인기라도 유지하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
  •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지성은 윤희원이 라이브 방송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희원 여신님 노래 진짜 좋아요!”
  • “여신!”
  • “여신!”
  • 윤희원의 노래에 찬사를 보내는 것 외에 나머지 자막들은 윤희원에게 얼굴을 공개해 달라는 내용들이었다.
  • “전도령님이 별 풍선 만 개 쏘셨습니다.”
  • 이내 시스템 자체 자막이 순식간에 윤희원의 라이브를 가득 채웠다. ‘전도령’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시청자는 200만 원 상당의 별 풍선을 쏴 순식간에 윤희원의 라이브를 뜨겁게 달궜다.
  • 미남, 미녀 말고 아마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일 것이다.
  • 윤희원의 라이브 자막은 순식간에 전도령에 대한 환호로 바뀌었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전도령에게 자신을 스폰 해 달라고 소리쳤다.
  • “전도령의 별 풍선 감사드립니다.”
  • 윤희원은 비록 감격스러운 마음을 티 내지 않았지만 심지성은 그녀가 라이브 중 순식간에 치솟은 인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 “헐, 이 남자는 누구야?”
  • 화면에 뜬 거대한 별 풍선에 심지성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 완벽한 얼굴과 황금 비율의 몸매는 말할 것도 없고, 인성이 착하고 겉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이런 점들을 모아봤을 때 윤희원은 심지성의 마음속에서 심 씨 집안 사모님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전도령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그가 나설 기회를 빼앗아갔다. 심지성이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 그러나 그가 아직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 전도령은 또 두 번째 별 풍선 만 개를 쐈다.
  • 별 풍선 때문에 열기가 달아오른 라이브 방송은 두 번째 별 풍선 만 개가 또 등장하자 순식간에 자막 폭탄을 맞아버렸다.
  • 라이브를 시청 중인 대부분 사람들은 ‘금수저’라는 세 글자를 자막에 쳤고 연속 두 번의 별 풍선 만 개에 윤희원의 라이브는 인기가 순식간에 몇 배로 치솟았다.
  • “전도령님은 왜 말이 없으셔!”
  • 두 번의 별 풍선을 쏜 후 전도령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 “이 자식이 감히 심 씨 가문 사모님을 넘봐? 어딜 감히!”
  • 마침 심지성이 나서서 전도령을 혼내주려고 하려던 그때, 눈에 띈 자막 하나 때문에 심지성은 하마터면 바로 핸드폰을 부숴버릴 뻔했다.
  • “희원아, 네가 대답 하나면 해준다면 바로 별 풍선 십만 개 쏴줄게.”
  • 부유함이란 무엇인가? 돈을 물 쓰듯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지금 이 순간 전도령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시청자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 “못 참아!”
  • 심지성은 핸드폰을 꼭 쥔 채 으르렁거렸고 잽싸게 돈을 충전했다.
  • “심도령님이 별 풍선 오만 개 쏘셨습니다!”
  • 윤희원의 라이브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자막은 다시 폭발적으로 윤희원의 라이브를 뜨겁게 달궜다.
  • 한순간에 모든 자막은 심도령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아부하기에 급급한 골 빈 자막에 심지성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윤희원일 뿐이었다.
  • 심지성이 내민 도전장에 전도령도 곧바로 삼만 개의 별 풍선을 쏘며 이에 맞섰다.
  • “누가 돈을 더 잘 쓰는지 어디 한 번 비겨볼까? 죽도록 밟아주마.”
  • 심지성은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윤희원의 라이브에 별 풍선 십만 개를 쐈다.
  • 화면을 가득 채운 시스템 자체 자막에 전도령의 부유함은 묻혔고, 이번에는 윤희원도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 인터넷에 금수저가 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이름 없는 스트리머의 라이브에서 금수저 두 명이 별 풍선 쏘기 배틀을 붙었다는 것은 라이브 플랫폼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만한 소식이다.
  • 전도령이 자취를 감추자 심지성의 입가에는 뿌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 ‘윤 선생님은 내정된 심 씨 집안 사모님이니까 그 누구도 건드릴 생각하지 마.”
  • 그런데 바로 이때, 심지성의 라이브 앱에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클릭해 보니 뜻밖에도 전도령이 보낸 메시지였다.
  • “지금 뭐 하자는 거죠?”
  •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돈 쓸 곳이 없어서 그래요!”
  • 패기가 넘치는 대답에 전도령도 할 말을 잃은 듯싶었다.
  • “혹시 경영대 다니세요?”
  • 그러나 전도령이 보내온 두 번째 메시지를 확인한 심지성은 순식간에 몸을 똑바로 앉았다.
  • “설마 이런 우연이?”
  • 심지성은 반신반의하며 전도령의 공개된 개인 정보를 클릭했다.
  • 이내 옆에 뜬 위치 정보에 경영 대학이라는 네 글자가 심지성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