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성의 얼굴에는 바로 행복이 들어찼다. 그는 침대에서 이어폰을 찾아 연결한 뒤 그대로 이불 위에 엎드려 지체 없이 라이브 방송을 클릭했다. 조우빈을 비롯한 친구들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다.
“…”
그 광경에 조우빈, 정종문, 유웅휘는 할 말을 잃었다.
수명이 거의 다하기 직전인 핸드폰은 앱을 실행하기까지의 속도가 눈물 겨울 정도였다. 심지성은 핸드폰 화면에 띄워진 앱의 실행 페이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10여 초나 지나서야 페이지가 넘겨지고 한참의 로딩을 거친 후 겨우 동영상 하나가 그의 앞에 재생될 수 있었다.
심지성은 얼굴이 다 굳어졌다. 얼른 윤여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이리도 오래 기다리게 하다니.
심지성은 손에 들린 이 고물이나 다름없는 벽돌 같은 기계를 당장이라도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 일렁였다.
다행히도 바로 다음 부드럽고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심지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조급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진정이 되었다.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은은한 웃음이 지어졌다.
“아!”
바로 이때, 노랫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이윽고 윤희원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도령 왔네. 어서 와!”
말이 끝나자마자 채팅 창도 함께 들끓기 시작했다.
“심도령 떴어!!”
“어서 와, 우리의 큰손 심도령!”
“환영! 환영!”
채팅 창 가득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보며 심지성은 콧등을 매만졌다. 오늘 점심 임소한과 한바탕 다툼을 한 것이 자신을 윤희원의 라이브 방송의 유명인으로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성은 몰랐다. 오늘 점심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특별히 그를 보러 온 사람이 윤희원을 보러 온 사람들보다 이 라이브 방송에 더 많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심지성은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가 바쁘게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두드리자 이내 채팅 창 상단에 후원 메시지 창 하나가 떴다.
“희원 크리에이터 님께: 심도령 별풍선 30000개 선물!”
“별풍선 고마워, 심도령!”
임희원의 달달한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심지성은 미소를 띤 채 메시지를 작성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응원해요, 여신 파이팅!”
“응응.”
윤희원이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배경 음악이 흐르고 청아한 목소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나자 채팅 창은 다시 달아올랐다.
“다들 응원 고마워. 마음에 들었다면 잊지 말고 희원이한테 후원 부탁해!”
윤희원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또 듣고 싶어. 한 곡 더 불러줘!”
“여신 한 곡 더.”
이때 아직 흥이 다하지 않은 많은 시청자들이 채팅 창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알겠어, 알겠어!”
윤희원은 그런 반응에 당연히 그들의 요구를 져버리지 않고 기꺼이 응했다.
“근데 나 갑자기 뭘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다들 듣고 싶은 곡 있어?”
“인연!”
“너를 만나.”
“10cm의 그라데이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들을 채팅 창에 전송하기 시작했다.
“음…”
저마다 듣고 싶은 노래가 다른 듯한 채팅 창에 윤희원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맞다, 아니면 이렇게 하자!”
윤희원은 갑자기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입을 열었다.
“심도령한테 한 곡 고르라고 하는 거야.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때?”
“그래도 되지.”
“좋아, 심도령한테 고르라고 하자.”
“상관없어.”
“난 찬성.”
……
“오케이, 다들 의견 없으면… 그럼 심도령은 뭐가 듣고 싶어?”
“저요?”
윤여신의 질문에 심지성은 관심을 받아 좋으면서도 조금 얼떨떨하여 얼른 곡을 생각해냈다.
“그럼 윤하의 불러주세요.”
금방, 심지성은 메시지 하나를 작성하여 전송했다.
“알겠어!”
윤희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브 방송에는 부드러운 기타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서 윤희원의 청아하면서도 조금은 슬픔이 묻어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심지성은 천천히 눈을 감고 윤희원이 자신을 위해 부르는 곡을 조용히 감상했다.
윤희원은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음악적 재능마저 뛰어났다. 그저 단순히 커버 곡을 잘 부르는 게 아니라 부르는 동시에 그 곡의 감정, 분위기까지 전부 전달해 주었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완전히 그 곡에 몰입하여 그 곡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가사가 흘러나오고 배경 음악도 서서히 멈췄다. 곡이 끝났다.
“여신 목소리에 고막 녹을 뻔.”
“윤여신 최고야!”
“심도령, 우리 희원 여신이 신청 곡을 불러 줬는데 무슨 표시 같은 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맞아. 심도령 얼른 성의를 보여.”
“별풍선 한번 쏘자.”
사람들의 아우성에 심지성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별풍선을 보냈다.
“심도령 별풍선 14000개 선물!”
“심도령 별풍선 9000개 선물!”
“대박, 역시 큰손.”
“완전 쩔어.”
“고작 노래 한 곡에 별풍선 2만 몇 개라니, 저 사람 부자야?”
금방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사람이 채팅으로 물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님. 오늘 점심을 못 봐서 그래. 몇 천만을 그냥 장난인 것처럼 선물함.”
“뭐? 미쳤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
연달아 두 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띄운 덕에 라이브 방송 분위기도 점차 좋아졌다. 윤희원은 바로 이어 노래를 계속하는 대신 시청자들과 있는 말,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윤희원은 갑자기 낯선 알림 하나를 받았다.
합방 요청?
합방은 크리에이터 사이에서 자주 쓰는 인기를 끄는 수단으로 각종 라이브 방송 플랫폼에서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희원의 방송의 인기는 줄곧 너무 핫하지도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은 상태에 처해있었다. 필경 이런 플랫폼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방송을 하는 크리에이터는 아주 드물었고 잘 먹히지도 않았기에 그녀를 주목하는 크리에이터들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합방 요청은 더욱 말할 바 없었다.
그러나 오늘 심지성은 이 방송에 몇 천만 원을 후원했고 덕분에 윤희원의 방송은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막 물이 차오르는 시기였기에 이 신비로운 신인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건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 윤희원을 놀라게 한 건 이 합방을 요청한 크리에이터가 천우연이란 사실이었다.
그녀는 플랫폼 인기 방송 톱10권 안에 항상 상주해 있는 톱 크리에이터였다!
무의식 적으로 수락 버튼을 누르자 방송 화면이 둘로 나누어졌다. 왼쪽엔 윤희원, 오른쪽에는 완전히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천우연이다!!”
“와 씨, 천우연이 오다니!”
“천우연!”
“천우연!!”
“우연이 왜 이 방송에 나타나?”
분주해진 채팅 창 뒤로 화면에는 화면 로딩이 완료되었다는 안내 문구가 나타났다. 이윽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오프숄더 니트를 입은 인스타 여신 같은 얼굴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향한 그녀의 인사 한 번에 채팅 창은 또 한 번 “천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도배됐다. 마치 톱 연예인이라도 등장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천우연?”
심지성이 중얼거렸다. 이 크리에이터가 몰고 온 인기에 놀라 살짝 멈칫했다.
이 여자는 누구지? 인기가 이렇게나 많다고?”
“천우연? 지성아, 너 방금 이 이름 말한 거 맞아?”
이때 옆 침대에서 게임을 하던 정종문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응. 종문아, 너 이 사람 알아?”
심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지! 톱 크리에이터잖아. 인기 정말 많아. 왜? 지성이 너도 그 방송 보는 거야? 어때, 엄청 이쁘지?”
정종문이 눈을 접어 보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
뭐 그저 그렇네.
심지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화면에 비친 SNS에 널린 듯한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비방했다.
희원이보다 한참 아래네.
윤희원이 얼굴을 내놓고 방송하기를 꺼려 하지만 않았다면 이 천우연은 아마 지금 이 인기를 누릴 수 없을 것이었다.
“아! 오늘 별풍선 랭킹 1위의 희원 크리에이터 맞으시죠? 정말 연결됐네요. 안녕하세요!”
바로 이때 이어폰을 통해 천우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우연 님 안녕하세요!”
윤희원도 사랑스럽게 대꾸했다.
“음… 갑자기 별풍선 랭킹 1위로 오르신 희원 크리에이터 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안 보여주시는 거예요? 여러분도 희원 크리에이터 님 어떻게 생겼는지 다들 궁금하시죠?”
천우연의 궁금하다는 듯 웃음을 띤 채 한마디 물었다.
순식간에 채팅 창에는 그에 응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부분은 얼굴 공개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핸드폰 앞의 심지성은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는 천우연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이 여자 겉으로는 웃으면서 사람 좋은 척해도 방금 그 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윤희원을 난처하게 하기 위해 한 말이 분명했다.
고의적인 것인지 의도치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네? 저는 줄곧 이렇게 방송을 해왔는걸요. 시청자분들도 제 목소리가 좋아서 제 방송에 들어오신 거니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윤희원이 답했다.
“뭐예요! 희원 크리에이터 님도 참 너무하시다. 시청자분들에게 얼굴 한 번 비추기 그리 어려워요?”
천우연이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뾰로통한 척 굴었다.
“…”
할 말이 없어진 윤희원은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찌푸려진 심지성의 미간은 더욱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냈다. 처음에 한 말은 그저 의도치 않고 한 말이라 넘길 수 있었지만 방금 그 말은 일부러 윤희원을 난처하게 하려 하는 게 분명했다.
보아하니 오늘 자신이 윤희원을 일간 랭킹 1등으로 만든 게 누군가의 질투를 부른 모양이다.
“됐어요, 됐어요. 그럼 이렇게 하죠? 희원 크리에이터 님께 PK를 요청합니다. 만약 제가 이기면 희원 크리에이터 님이 얼굴을 공개하시고 만약 제가 지면 크리에이터 님이 하라는 대로 따를게요. 어때요? 전 그저 희원 크리에이터 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 청하는 건데 이런 기회마저 안 주실 건 아니죠?”
천우연이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 여전히 웃음을 생글생글 띠고 있었지만 뱉는 말에는 이미 강요 아닌 강요가 담겨있어 윤희원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게…”
윤희원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응하기도 거절하기도 애매한 진퇴양난의 기로에 놓였다.
크리에이터 PK란 일정한 시간 내에 양측이 각종 방식으로 경쟁을 진행하여 그 시간 안에 누가 팬들로부터 더 많은 별풍선을 받으면 누가 이기는 콘텐츠를 가리켰다. 진 쪽은 이긴 쪽의 벌칙 하나를 수행해야 했다.
보통 이런 PK를 진행하는 건 플랫폼 내에서 인기가 비슷한 크리에이터끼리였다. 그러나 천우연은 일 년 내내 인기 톱 10을 지키는 잘나가는 크리에이터였고 윤희원은 이렇다 할 뭐가 없는 어디 가서 말하기도 뭣한 그런 수준이었기에 양측의 역량은 전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만약 그저 선의의 배틀이라면 윤희원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필경 이렇게 유명하고 인기 많은 크리에이터와 PK를 진행하는 건 자심 채널의 인기를 올리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하필 상대가 제시한 조건이 윤희원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받아들여!”
“희원아, 배틀해!”
“희원아, 겁내지 마. 우리에겐 심도령이 있어.”
“받아들여, 받아들여!”
채팅 창에게는 미친 듯이 채팅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윤희원으로 하여금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만약 자신이 거절하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팬들의 불만을 살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팬들이 대거 떨어져 나갈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