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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미녀를 구하다

  • 여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남자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건장한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 두 사람은 애초에 힘을 겨룰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담연희,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
  • 남자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 “왜 아직도 날 받아주지 않는 거야? 아직도 부족해?”
  • “호현용, 이거 놔!”
  • 담연희는 애타게 외치며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담연희와 눈을 마주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피하며 아무도 나서주지 않았다.
  • 왜냐하면 그 건장한 사내는 바로 학교에 포악하기로 소문난 악질이었기 때문이었다!
  • 태권도 동아리 부회장인 그는 감히 누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가차 없이 주먹을 날리는 사람이었으며 소문에 의하면 두목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니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 “담연희,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를 쫓아다니는데, 연락을 받지 않는 것도 모자라 나를 피해 다니기까지 해?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으면 여기에서 나갈 생각, 하지도 마!”
  • 싸늘한 시선으로 담연희를 노려보는 호현용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었다. 담연희는 몸을 덜덜 떨며 겨우 용기를 내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 “대답? 알았어, 대답할게!”
  •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이제 다시는 날 귀찮게 하지 마!”
  • 담연희는 겨우 숨을 쉬며 드디어 속마음을 얘기했다.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호현용 앞에 서있는 작은 체구는 그에게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호현용은 어안이 벙벙했다.
  • “놔!”
  •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호현용은 더욱 힘을 가하며 담연희를 벽으로 밀쳤다.
  •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 “왜! 왜 안 좋아하는데!”
  • 호현용의 얼굴이 더욱 흉악하게 변했다.
  •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 “무슨 말이야?”
  • 호현용의 표정을 본 담연희는 어렵게 짜낸 용기를 순식간에 잃고 몸을 움츠렸다.
  • “무슨 말?”
  • “병신 같은 네 오빠가 나에게 진 빚 벌써 잊었어? 그거 하나로도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 체면 지켜주니까 무서운 줄 모르겠지?!”
  • 호현용이 담연희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담연희은 몸을 떨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눈에 가득 찬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 호현용은 담연희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고 헬스장 밖으로 향했다.
  • “뭐 하는 거야!”
  •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조우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몇 걸음 걸어가 호현용의 앞을 막았다.
  • “뭐야 이 새끼는, 꺼져!”
  • 자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자 호현용은 망설임 없이 거친 말을 뱉었다.
  • “싫다고 하잖아.”
  •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조우빈은 그의 기세에 조금도 눌리지 않았다.
  • “신경 끄고 꺼져!”
  • 워낙 난폭한 호현용이었는데 하물며 지금은 화까지 난 상태이니 그의 태클을 참을 수 없었다.
  • “하하하하!”
  • 말이 끝나자 그의 패거리들이 희롱하듯 웃으며 조우빈을 쳐다보았다.
  • “이 새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 몸에는 온통 문신을 하고 귀걸이를 잔뜩 건 사람 한 명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조우빈을 비웃었다. 그들 눈에 조우빈은 그저 햇병아리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 나머지 사람들도 조롱하듯이 그를 툭툭 건드렸다.
  • “가봐야 할 것 같은데.”
  • 지켜보던 유웅휘가 몸을 일으키며 정종문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조우빈 곁으로 갔다.
  • 머릿수가 맞지는 않았지만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 자신의 친구가 당하는 꼴은 절대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 호현용은 그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자신의 패거리들에게 맡기고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담연희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 가까스로 나타난 일말의 희망도 깨지자 담연희의 얼굴에 절망감이 비쳤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 “잠깐.”
  • 바로 다음 순간,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연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심지성이 호현용의 등 뒤에서 그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 심지성을 돌아보는 호현용은 드디어 뚜껑이 열린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패거리를 향해 포효했다.
  • “안 막고 뭐해!”
  • “그게… 형.”
  •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흔들리는 시선으로 심지성을 바라보았다.
  • 일곱 여덟 명이나 있었지만 심지성이 언제 호현용의 뒤에 다다랐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젠장, 쓸모없는 놈들! 얘 좀 지키고 있어!”
  • 그는 말을 하며 담연희를 패거리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담연희가 겨우 몸을 세우고 도망칠 기회를 엿보는 순간 패거리들이 야비한 미소를 띠고 그녀를 낚아챘다.
  • 호현용이 두 주먹을 움켜쥐자 그의 손가락 마디 마다에서 콩을 볶는 듯한 뼈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거대한 몸은 심지성과 반 미터도 안 되는 거리로 성큼 다가왔다. 그의 입가에 험상궂은 미소가 피었다.
  •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미녀를 구하시겠다?”
  • “감히 내 일에 참견해? 뒤에 누가 있어?”
  • 호현용은 가슴을 벌렁거리며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호현용은 분명히 폭발 직전에 이른 사람으로 보였다.
  •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 알아? 여긴 학교야. 오늘 있었던 일이 알려지면 시끄럽게 될 건데?”
  • 심지성은 여유롭게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호현용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서 이름 모를 섬뜩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 “범죄? 하하하!”
  • “저 X이 빚을 진 걸 갚으라고 하는데, 잘못된 거 있어?”
  • 호현용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 “빚?”
  • 그 말을 들은 심지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담연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 “돈 빌렸어요?”
  • “제가 아니라… 저희 오빠가…”
  • 심지성의 날카로운 시선에 담연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것봐, 내 말이 맞지! 그 도박꾼이 우리 형에게 크게 빚을 졌는데 갚지 못하겠으니까 자기 동생을 나에게 팔아먹었다고!”
  • 호현용은 냉소하며 담연희의 말을 끊었다. 말을 마친 그는 우쭐거리며 심지성을 쳐다보았다.
  • “그래도 끼어들고 싶어?”
  • 암울한 얼굴의 담연희는 입술을 꼭 다물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단순한 괴롭힘이었다면 심지성은 당연히 그녀를 도와줬을 것이지만 돈과 빚이 관련된 일이라면 개념이 완전히 달랐다.
  • 아마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큰 문제에 연루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하지만 행여나 담연희가 오늘 정말로 이렇게 혐오하고 경멸하는 남자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 “응.”
  • 그런데 심지성은 뜻밖에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담연희는 깜짝 놀랐다. 절망으로 가득 찼던 두 눈동자에 영혼이 깃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심지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 “하하하! 어떻게?”
  • 호현용도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에 심지성은 그저 나사가 몇 개 빠진 모지리로 보였다.
  • “네가 대신 갚아 주기라도 할 거야? 하하하하!”
  • 말이 떨어지자 그의 패거리들도 덩달아 폭소를 터뜨렸다. 그들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보 같은 심지성을 쳐다보며 그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생각해낸 건지 기다렸다.
  • “맞았어.”
  • 사람들의 희롱하는 눈빛에도 심지성은 일말의 동요도 없이 대답했다.
  • 담연희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심지성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 “푸하하하하! 이 새끼 말하는 거 들었어?”
  • “하하하, 내가 보기에는 머리에 물이라도 들어갔어.”
  • “허세도 장소를 가려가며 부려야지, 빚이 얼마인지 알고 허세를 부려?”
  • “내가 다 감동받았어.”
  • 호현용은 심지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 “빚이 얼마여도 대신 갚아 주시겠다?”
  • “그래!”
  • “확실해?”
  • “확실해!”
  • “너, 이 자식, 진심이구나? 하하하하.”
  • 심지성의 또라이 같은 발상에 사로잡힌 호현용은 담연희를 아예 잊어버린 듯했다.
  • “하하하하, 좋아, 그렇다면, 하하하하, 갚아, 그럼, 하하하하…”
  • 호현용은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웃음을 멈춘 그는 패거리들에게 손짓했다.
  • “이리 와, 갖고 있으라던 계약서 지금 있지?”
  • “네, 여기 있습니다!”
  • 패거리 중 한 명이 얼른 종이를 꺼내 호현용의 손에 펴 놓았다.
  • 종이를 받은 호현용의 시선이 다시 심지성에게 향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글은 읽을 줄 알지? 여기 똑똑히 적혀 있으니까 직접 봐!”
  • 그는 말을 하며 그 종이를 심지성 앞에 내놓았다. 거대한 몸집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는 이미 심지성의 차림새를 분석을 마쳤다. 명품 하나 없이 전부 보세였다. 보세라는 단어를 쓰기도 아까울 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몸에 걸친 물건 모두 합쳐도 몇만 원을 초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 “이런 찌질한 꼴로 허세를 흉내 내고 싶었어?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 루저인지 직접 보라고, 하하하하!”
  • 심지성이 말을 하기도 전에 호현용은 이미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