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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속 시원하게 돈 쓰기

  • 심지성이 오자 조우빈은 고개를 돌려 미안한 얼굴로 심지성을 한 번 쳐다봤다.
  • “지성아, 나…”
  • “브라더들, 이렇게 떠들썩한데 내가 빠져서야 되겠어!”
  • 심지성은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 조우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 원래부터 긴장감이 감돌던 분위기는 지금 이 순간 심지성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화약 냄새가 물씬 풍겼다.
  • 비록 시티은행에서 이미 심지성에게 심하게 체면을 구긴 적이 있었지만 진기석은 가난뱅이 심지성이 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진기석이 진짜 재벌 2세이고 심지성은 단지 여자친구를 빼앗긴 딱한 사람일 뿐이었다.
  • “지성아, 우리 다른 데로 가자.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 비록 시티은행에서 진기석이 체면을 구긴 일을 알고 있었지만 진기석 쪽에 쪽수가 많으니 조우빈은 심지성을 설득했다.
  • 심지성은 조우빈을 등 세 사람에게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내 고개를 들어 익살스러운 얼굴로 진기석을 쳐다봤다.
  • “보아하니 오늘 밤 계산은 진도령이 하나 봐?”
  • “설마 가난뱅이인 너한테 계산하라고 하기라도 할까 봐?”
  • “미안한데 진도령, 오늘 밤 계산은 네가 할 수 없을 것 같아!”
  • 심지성의 담담한 말이 끝나기 바쁘게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졌다.
  • 비록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많지 않다.
  • “하하,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렇게 허세를 부려?”
  • “나한텐 돈이 넘쳐!”
  • “임페리얼이 오늘부터 네 가게라도 되나 봐?”
  • 진기석은 웃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주머니가 두둑한 진기석은 마치 은행에서 구긴 체면을 다시 찾아오겠다고 맹세라도 한 것 같았다.
  • 심지성은 두 눈을 가늘게 떴고 주위의 웃음소리가 도로의 차 소리를 덮어버렸지만 옅은 미소를 띤 얼굴에는 조금도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 “미안하다만 오늘 밤부턴 정말 내 가게가 되게 할 수도 있어!”
  • 현장의 비웃음 소리가 부족했는지 심지성은 폭탄 발언을 멈추지 않았고 담담한 말 한마디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후끈 닳아올랐다.
  • 진기석에게 아부할 기회만 노리고 있는 끄나풀들은 너무 웃은 탓에 눈물까지 났다.
  • “하하, 지켜봐야겠는데?”
  • 조우빈 마저도 심지성의 말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고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을 것 같은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 “지성아…”
  • “괜찮아!”
  • 심지성은 자신 있게 조우빈을 향해 말했고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호주머니에서 미처 돌려주지 못한 짝퉁 전화를 꺼냈다.
  • 후계자 심사 규칙에 따라 심지성은 반드시 첫 번째 자금으로 1년 안에 열 배의 이익을 얻어야 한다.
  • 지금 이 순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심지성은 억지로 체면을 내세우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그러나 사실 심지성은 마음속으로 다른 속셈이 있었다. 임페리얼은 경영대 주변에 위치한 단연 으뜸가는 호텔이다.
  • 스케일뿐만 아니라 고객 유동량도 아주 안정적이니 발전 전략을 다시 세우기만 한다면 미래에 이 지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 되는 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다.
  • 게다가 임페리얼을 인수하는 것에 심지성은 또 다른 용도가 있었다. 임페리얼은 심지성의 돈 벌기 계획의 발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 수십 년을 계승해온 한국 최고의 재벌, 심 씨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재부에 불과하지 않는다. 심 씨 가문이 그동안 축적해온 인맥은 진작에 각 업계와 분야에 관계망을 형성했다.
  • 여전히 심 씨 가문의 관계망을 전부 컨트롤할 수는 없겠지만 임페리얼을 인수하는 것은 심 씨 가문 도련님의 신분을 이미 회복한 심지성에게는 전화 한 통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 곧 심지성은 임페리얼 육십 퍼센트의 지분을 사십억에 인수했다.
  • 그러나 진기석 패거리들이 눈에는 심지성이 잠시 짝퉁 휴대전화를 들고 잠시 만지작거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오호, 심도령, 이렇게나 빨리 임페리얼을 인수한 거야?”
  • 진기석의 쌀쌀맞은 말투는 심지성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상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
  • “그래!”
  • 심지성은 덤덤하게 웃기만 했고 주위는 또다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심지성, 네가 아직 날 못 잊었다는 걸 알아.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내 시선을 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버려. 널 차버린 건 지금껏 한 일들 중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어!”
  • 심지성의 덤덤함과 자신에 대한 무심함에 과시욕이 깊이 자극을 받았는지 전여울은 냉소를 흘리며 한마디 내뱉었다.
  • 여전히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는 전여울의 모습에 심지성은 그녀를 멍청하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목에 혀를 찼다.
  • “자, 그럼 이제 다 같이 들어가서 확인해 볼까, 임페리얼이 과연 내 것이 되었는지!”
  • 진기석은 손을 휘둘렀고 그 의미는 오늘 심지성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난처해하고 망신을 당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 “브라더들 가자, 오늘 임페리얼은 우리 꺼야!:
  • 심지성 역시 손짓을 했고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맨 앞에 앞장섰다. 조우빈 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이를 악물고 따라갔다.
  • 불과 몇 십 미터의 거리였지만 가는 내내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 막 임페리얼 문 앞에 도착하고 진기석 패거리들이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임페리얼의 총 지배인이 땀투성이가 된 채 뛰쳐나왔다.
  • 임페리얼 총 지배인의 초조한 얼굴과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두 눈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 것으로 보아 VIP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 주위의 다반수 사람들은 임페리얼의 총 지배인이 진기석을 마중 나온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 방금 전 진기석이 임페리얼을 통째로 빌리겠다고 큰소리쳤으니 임페리얼의 VIP 손님이라 할 수 있었다.
  • 진기석 스스로도 오늘 밤 가장 존경받고 체면이 서는 고객은 바로 자신일 거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 그러나 진기석이 옷깃을 여미고 주위의 대부분 사람들의 아부와 숭배의 눈빛 속에서 임페리얼 총 지배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려던 그때.
  • 임페리얼 총 지배인의 시선은 순식간에 수수한 옷차림의 심지성의 몸에 고정되었다.
  • “심 도령!”
  • “멀리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 총 지배인은 곧 아첨을 하면서 심지성 앞으로 달려갔고 그 모습은 마치 옛날 황실의 총괄 내관 같았다.
  • 임페리얼 총 지배인은 불과 몇 분 전 임페리얼 대부분의 지분은 심지성의 명의로 넘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 바꿔 말하면 지금은 심지성이 바로 임페리얼의 사장이다.
  • 1초!
  • 2초!
  • 꼬박 삼십 초의 시간 동안 임페리얼 입구 앞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적막했고 정신을 차린 후, 불안한 얼굴로 초조해하던 조우빈 삼인방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웃음을 터뜨렸다.
  • 반면 진기석 패거리들은 세계관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고 하나같이 얼굴색이 갈색으로 닳아올랐다.
  • 특히 방금 전 자신이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심지성을 쥐뿔도 없는 가난한 자식이 뻔뻔스럽게 허세를 부린다고 비아냥거렸던 자신을 생각하니 진기석 등 사람들은 얼굴에 귀싸대기를 수백 번 후려맞은 것 같았다.
  • 그중에서도 안색이 안 좋은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바로 전여울이었다.
  • 엄지발가락으로 생각해 보아도 전여울은 알 수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그녀는 웃음거리가 되어 안목이 없기로 경영대에서 소문이 파다해질 것이다.
  • 전여울은 오늘 밤 이후로 혼자 경영대를 거닐면 시시때때로 뒤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할 자신의 미래가 그려졌다. 전여울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마치 인생이 암흑 속에 빠진 것 같았다.
  • “진도령, 미안하게 됐어. 임페리얼은 오늘 밤 우리 네 명만 받는다고 하니 너희들이 장소를 옮겨야겠네!”
  • 심지성은 음침해진 진기석의 안색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가볍게 말했고 진기석의 자존심을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 임페리얼 최고급 룸에서 이미 술에 취해 눈이 몽롱해진 조우빈 삼인방은 술잔을 들었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미소는 조금도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 “지성아, 너 정말 대단해. 방금 전에 진기석이랑 전여울 두 연놈들의 얼굴이 어땠는지 넌 못 봤지!”
  • “너무 속 시원해!”
  • 다음날 이른 아침, 숙취에서 깬 심지성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이불 속에서 빠져나왔다.
  • 그러나 심지성은 곧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몸에 덮고 있던 것은 핑크색 이불이었고 그 이불에는 여자의 체취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