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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피해자

  • 유보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송윤아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송윤아가 가느다란 손으로 큰 캐리어를 끙끙거리며 끌면서 어디로 가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좀 꺼림칙해졌다.
  • 오늘 송윤아가 자신의 조카의 전 여자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송윤아의 전화를 차단하고 그녀와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 하지만 퇴근길에 송윤아와 마주치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
  • 엄연히 따지면, 유민호가 송윤아에게 미안해해야 했다. 송윤아는 그저 불쌍한 여자에 그치지 않았다. 그러니 송윤아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 설령 그들이 뜻하지 않게 결혼을 하게 됐고, 지금 파혼을 하려고 한다고 해도 좋은 인상을 남겨야했다.
  • 그렇게 송윤아가 젖 먹던 힘을 다해 캐리어를 들어올리고 있을 때, 단단하고 큰 손이 불쑥 나타나서 그녀의 손에 있는 캐리어를 들어올렸다.
  • 고개를 들어보니 무뚝뚝한 표정의 유보겸이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 “유보겸 씨?”
  • 송윤아는 의아해했다.
  • “어디로 가는 거야?”
  • 유보겸이 물었다.
  • 그러자 송윤아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 “저기요. 제가 오늘 막 세든 집이에요.”
  • 유보겸은 캐리어를 들어올렸다.
  • 그때, 갑자기 트렁크 자물쇠가 찰칵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옷가지 등이 바닥에 전부 떨어지고 말았다.
  • 쨍그랑 쨍그랑 소리가 나더니 여기저기에서 금빛 방울 같은 것이 계단을 타고 한 층 한 층 아래로 굴러갔다.
  •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을 보고 송윤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얇고 섹시한 잠옷, 레이스 팬티에 손가락 세 개 크기의 티팬티, 망사 양말과 눈꼴사나운 작은 성인용품들이 뒤섞여 있는 그녀의 속옷…
  • ‘이게 다 뭐야?’
  • 정상적인 속옷 외에는 전부 송윤아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의 캐리어에 들어있단 말인가?
  • 그러자 문득, 송윤아는 조금 전 한껏 흥분된 상태로 웃음을 터뜨리던 유설희의 모습을 떠올렸다.
  • ‘유설희… 나를 망신시키려고 작정한 거야?’
  • 순간, 유보겸의 시선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 이런 꼴사나운 물건을 이렇게 많이 준비한 것은, 그를 꼬셔서 강제적으로 그를 아이 아빠로 만들게 하려는 것인가?
  • 순간, 그의 눈밑에는 차가운 냉기가 감돌았다.
  • 주위의 공기는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 그런 모습에 송윤아는 얼굴이 빠르게 붉어졌고, 목에서부터 귀끝까지 온통 빨개져 곧 얼굴이 터질것만 같았다.
  • 그때, 옆을 지나던 사람들은 땅에 널브러진 물건을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씩 했다.
  • “요즘 젊은 애들은 정말 잘 노는 것 같아.”
  • 그 말에 송윤아는 허둥지둥 달려가 물건을 주워 캐리어 속에 통째로 쑤셔 넣었다.
  • 그때, 유보겸이 그녀에게 목줄을 건네주며 말했다.
  • “네 물건이야.”
  • 순간, 송윤아는 부끄러움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 ‘설마 내가 우리의 첫날밤을 위해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송윤아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건 유설희가 그녀의 캐리어에 넣은 것이었다. 그녀는 억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물건을 캐리어에 집어 넣었다.
  • “아, 아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 “가자.”
  • 유보겸은 벌써 캐리어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 그렇다, 송윤아는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 유보겸의 꼿꼿한 뒷모습을 보며 송윤아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녀는 행여 캐리어가 다시 터질 것을 대비해 캐리어를 빤히 지켜봐야만 했다.
  • 송윤아는 얼굴을 한껏 붉히며 휴대폰을 꺼내 유설희에게 메시지를 보내 그녀의 악행에 대해 추궁했다.
  • [유설희, 너 내 캐리어에 도대체 뭘 넣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