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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고객은 정여진이었어

  • 유보겸은 미간을 찌푸렸다.
  • 정여진은 그의 사촌 형의 아내였다.
  • 유씨 가문은 영성에 있었는데 그의 할아버지가 영성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 서울에는 보운그룹의 지사가 있어 3개월 전 정여진은 그의 아들인 유민호를 데리고 갑자기 보운그룹의 자회사의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었다.
  • 아주 오랫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찾아와서 회사 일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유보겸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 아마도 할아버지 쪽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최근 할아버지의 큰 신망을 받고 있는 자기 곁에서 그의 도움을 받아 더 높은 곳에 서고싶어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유보겸은 그들을 회사에 들여보낸 후 바로 출장을 갔기 때문에 아직 정식으로 그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 “응, 그러라고 해.”
  • 유보겸이 말했다.
  • 전화를 끊은 후, 유보겸은 머릿속으로 송윤아를 떠올렸다.
  • 조금 전, 그는 송윤아에게 어느 가문 아가씨인지 물어보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서울에는 송씨 가문이 없는 것 같은데… 서울이 아닌, 영성의 송씨 가문에 대해서는 얼핏 들은적이 있었다.
  • ……
  • 송윤아는 택시를 타고 그의 고객이 보내준 주소로 갔다.
  • 한편, 그녀가 탄 택시의 기사는 아주 수다쟁이였다. 그는 송윤아가 말한 주소를 보고 적극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 “아가씨, 시아그룹으로 가는 거예요?”
  • “네, 왜요?”
  • 송윤아가 물었다.
  • “시아그룹은 서울의 보운그룹의 계열사라 서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듣자하니 그 회사에 들어가는 건 정말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 그 말에 송윤아의 눈에서는 의아함이 묻어났다.
  • ‘시아그룹이 보운그룹의 계열사였어?’
  • 송윤아는 시사 뉴스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 ‘그럼 유민호와 마주칠 수도 있다는 얘기야?’
  • 곧, 송윤아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 ‘아니야, 나랑 얘기를 나눌 사람은 아마도 시아그룹의 총책임자일 거야. 그러니까 유민호랑 만날 일은 없어. 아니지, 양다리를 걸치고 먼저 배신한 사람은 유민호인데 내가 왜 그 쓰레기 같은 남자를 두려워해야 해?’
  • 이런 생각에 송윤아는 콧방귀를 뀌며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 그때,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영성 송씨 가문의 송형원 씨와 송형원 씨의 아내인 이윤희 씨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 순간, 그 소리에 송윤아는 멈칫했다.
  • “영성에는 하여튼 부자들이 많다니까요? 이 송형원도 엄청난 부자라고 하던데… 게다가 아내와 금슬도 좋대요. 어딜 가나 아내를 데리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여자는 아무쪼록 좋은 남편을 얻어야 해요.”
  • 운전 기사는 피식 웃었다.
  • 그 말에 송윤아는 빈정거리며 웃었다.
  • 두 사람은 당연히 금슬이 좋았다.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이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예상치 못한 사고에 불과할 뿐이다.
  • 그렇게 운전 기사의 수다와 혼잣말과 라디오의 소리는 점점 그녀의 귀에서 멀어져만 갔다.
  • 송윤아는 더 이상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창밖을 내다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 이윽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빌딩 앞에 택시가 멈춰섰다.
  • 모든 생각을 정리한 송윤아는 운전기사에게 계좌이체를 한 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 오늘, 송윤아는 그저 먼저 답사를 하러 온 것이다. 답사를 끝마친 후에야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직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도구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 송윤아는 조금 전 자칫하면 유민호와 마주칠 거라고만 상상했지 그의 어머니인 정여진과 마주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만남으로 송윤아는 정신이 멍해졌다.
  • 정여진 옆에는 송서민이 서 있었다. 그녀는 오늘 순백의 원피스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화장을 예쁘게 해 한껏 청초해 보였다.
  • 그 모습에 송윤아의 마음속에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 송윤아는 휴대폰을 꺼내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정여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 송윤아에게 벽화를 의뢰한 고객은 예상밖에도 바로 정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