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송윤아는 그의 신분을 몰라
- “그게… 제가…”
- 송윤아는 민망하다는 듯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 “전 처음 본 남자랑 잠자리를 가질 수 없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 저희는…”
- 그 말에 유보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 점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송윤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굳이 널 강요하지 않을 거야.”
- 이 말에 송윤아는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했다. 유보겸이 직접 이런 말을 했으니, 그녀도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었다. 어쨌든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인 군자 같았기 때문에 자신이 한 말은 꼭 지킬 거라고 믿었다.
- 유보겸은 어두운 표정으로 송윤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 ‘꽤 보수적이네.’
- 하지만 유보겸도 그녀와 꼭 잠자리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건 그녀를 자기 와이프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 잠시 후, 유보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신사답게 한마디했다.
- “오늘 밤은 네가 여기에서 자.”
- 말을 마치고, 그는 문을 열고 유설희의 방으로 갔다. 그는 유설희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송윤아에게 뭐라고 했는지 물어볼 예정이었다.
- 유보겸이 밖으로 나가자, 송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서재.
- 유보겸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설희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 “내 신분증을 훔치고, 대신 혼인 신고까지 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하기까지 하다니… 유설희, 또 무슨 짓을 저지를 셈이야?”
- “오빠, 잘못했어.”
- 유설희는 바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 “이건 다 오빠를 도와주려고 그런 거야.”
- “나를 도와주려고 그런 거라고?”
- 유보겸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그 말에 유설희는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정의로운 말투로 말했다.
- “할아버지는 계속 오빠한테 여자를 소개해 주면서 오빠의 인생을 좌우하려고 하잖아. 지금 오빠는 이미 결혼했으니 할아버지는 다신 그러지 못할 거야. 어때? 나 좀 총명하지?”
- 유보겸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 역시 그의 생각과 같았다.
- “네 친구한테는 어떻게 말한 거야?”
- 유보겸이 물었다.
- 유설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송윤아를 어떻게 속인건지 그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 하지만 한가지, 송윤아가 진짜 자기 오빠의 와이프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욕망은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이 친해지면 언제든지 함께할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 이어서, 유설희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 “오빠는 윤아를 도와 쓰레기 같은 남자를 처리하고, 윤아는 오빠 대신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둘이 서로 이익만 챙기면 되는 거 아니야? 나중에 오빠가 회사를 물려받은 다음 이혼해도 되잖아. 절대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거야.”
- 유보겸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 “운전 기사?”
- “윤아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야. 만약 오빠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다면 오빠랑 가짜 결혼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걸?”
- 애초에 송윤아는 유설희가 가짜 혼인관계증명서를 만들거라는 소리에 그녀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한 것이다.
-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유설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송윤아를 속여야만 했을 것이다.
- 유보겸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 ‘어째 송윤아가 말끝마다 운전 기사, 운전 기사하더라니… 알고보니 유설희가 내 진짜 신분을 알려주지 않은 거였어.’
- ……
- 다음날 아침, 송윤아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 중년 여성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 “나를 대신해 벽화를 그려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거야?”
- 송윤아의 고객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 그 소리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신 사과를 했다.
-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조급해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송윤아는 고객을 달랜 후,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다.
-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송윤아는 졸업을 하고 나서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유 벽화 아티스트가 되었다. 주문이 들어오기만 하면, 그녀는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녔다.
- 하지만 이번에는 송서민이 일부러 낯선이의 신분으로 송윤아에게 벽화를 의뢰했었다. 그건 바로 일부러 자신과 유민호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 거실로 내려오자, 송윤아의 눈에는 유보겸의 모습이 보였다.
- 그는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 셔츠는 그의 드넓은 어깨를 잘 드러내주었다. 일자로 딱 떨어지는 바지는 카리스마와 우아함이 동시에 풍겨져왔다.
- 유보겸의 시선은 송윤아의 가방에 떨어졌다.
- “일이 있어서 지금 나가봐야 해요.”
- 송윤아가 먼저 한마디했다.
- 유보겸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송윤아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유보겸과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고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 그때, 유보겸의 휴대폰이 울렸다.
- 전화를 받자, 방민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 “대표님, 정여진 씨가 회사 외벽에 한폭의 커다란 캐릭터를 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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