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은 마적과 산림 강도를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드디어 그들을 잡으러 병사들이 나섰으니 경사가 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진무열은 서문을 위한 출정식을 마치고 미리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좌태파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빌었다.
문무 백관들도 서문을 배웅하러 왔다.
맨 앞에 군장 차림으로 서 있는 진무열을 향해 서문은 위엄 있게 말했다.
“전하, 소신은 이만 떠나겠사옵니다, 하나밖에 없는 제 누이를 잘 돌봐주시길 간청드리옵니다. 혹시라도...”
서문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무과 시험의 일로 자기와 누이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자기가 없을 때 누가 누이를 괴롭힐까 봐 두려웠다.
진무열은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진지하게 말했다.
“서숙의는 과인의 아내다. 누가 감히 그녀를 건드리겠는가. 걱정하지 말고 갔다 오거라. 서 장군의 승리를 기다리고 있겠느니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진무열의 말을 듣고 서문은 좀 마음이 놓였다. 그는 다시 인사를 올리고 말에 올라탔다. 그의 출발 명령에 따라 병사들도 출동하기 시작했다.
말이 달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장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서문은 용맹하기로 소문이 났다. 좌태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는데 그가 좌태파의 장군으로 될 수 있다는 건 절대적인 실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병사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리 가자 진무열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궁으로 돌아갔다. 조정의 신하들도 돌아갔다.
화양전.
서숙의는 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다. 직접 서문을 배웅해주려고 했는데 괜히 신하들의 미움을 더 살까 봐 화양전에 남아있기로 했다.
아무래도 남매인지라 그녀는 서문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오라버니가 전쟁터를 나서는데 아무리 상대가 마적이라도 그녀는 근심되었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진무열도 썩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여 어디도 가지 않고 그녀를 품 안에 꼭 끌어안고는 다독여줬다.
요 며칠, 안시향과 다른 첩들도 진무열을 찾아왔었다. 하지만 진무열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으니 서숙의를 향한 애정이 남달랐다.
후궁에는 왕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서숙의의 소문이 자자했다.
무과 시험의 일도 도창산에 출정한 일로 덮어져 잠잠해졌다.
하지만 고요해 보이는 낙정에는 곧 폭풍우가 닥칠 예정이었다.
이날 밤, 낙정에는 비가 쏟아지는 듯이 내렸다.
7월의 무더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큰 비가 내렸다.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가며 쳤다.
낙정 중앙 거리에 있는 한 자택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우르르...”
천둥이 울렸다.
검은 복면을 쓴 몇십 명의 사람들이 질서 있게 줄을 맞춰 섰다. 치가 떨릴 정도로 분위기가 스산했다.
7척이 되는 한 남자가 손에 긴 검을 쥐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마치 나무토막처럼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복면을 쓴 사람들은 비가 쏟아지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이 적막이 흘렀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자 맨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축시, 화양전, 서숙의를 죽인다!”
“네!”
그들의 눈에는 차가움이 섞여져 있었다.
궁에 있는 후궁을 죽이는 게 아주 쉬운 일인 마냥 그들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
천둥이 울리는 소리는 여기의 소리를 덮어주었다. 분위기는 점점 으슥해졌다.
이때, 안 씨 저택에는 안 씨 일가의 사람들이 모여져 있었다. 이미 깊은 밤이었지만 안중원은 전혀 잠 들 수가 없었다.
“아버지, 정말 수를 잘 둔 것 같아요. 그 계집을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총관 장홍 그 자도 이참에 괴롭히면 좋겠네요. 여기저기 눈치만 보면서 저희 편에 서지 않았었잖아요. 서숙의가 암살을 당한다면 전하께서도 많이 놀라시겠죠? 궁의 안전을 책임지는 도총관이 무사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아무리 가벼운 형벌이라도 유배는 되겠죠?”
안명은 간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중원은 차를 한 잔 마시고 신중하고도 또 여유롭게 말했다.
“명이야, 명심하거라. 오늘 밤은 아주 중요하단다. 나중에 전하께서 아주 샅샅이 밝히려고 할 거다. 그때 절대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원래 계획대로 파로 돌아가거라. 천수대군 쪽에서 움직이면 넌 바로 금오위의 병사들을 데리고 전하를 호위하러 가거라.”
안명은 씨익 웃고는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저택을 나섰다. 말에 올라탄 그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안중원은 번개가 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하, 소신을 탓하지 마소서, 전하가 이렇게 만든 것이옵니다. 서숙의와 서문, 그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말았어야지요.”
그러고는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
‘겨우 왕 따위가 실권을 잡으려 해? 그러면서도 한문 출신인 서 씨 남매에게 희망을 둔 거야? 결국 모두 부질없는 짓이지.’
“신하, 사대부는 물론이고 사의대부까지 모두 전하의 무과 제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더군요. 이제 암살 사건이 일어나면 또 당황해하겠지요? 결국 전하에게 제일 필요한 건 소신이옵니다, 하하하.”
안중원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
비는 그치지 않았다. 천둥과 번개에 바람까지 더해져 궁 안의 분위기는 더 으스스했다.
축시가 되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거의 30명이 되는 복면을 쓴 자객들은 손에 검을 들고 물구덩이를 밟으면서 화양전 주위에 도착했다.
금위군의 시체는 점점 늘어져만 갔다. 빨간 피는 내리는 비와 함께 어우러져 더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들이 어떻게 궁으로 들어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철통 수비를 한 금위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들이 거의 진무열이 자는 곳까지 다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자객이다!”
“전하를 보호하거라!”
제일 먼저 자객을 알아차린 건 은위대였다. 그들은 귀신처럼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초월의 고함소리에 그들은 미친 듯이 침전으로 달려들어 갔다.
하지만 자객은 그들의 길을 막았다.
칼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도 들렸다. 그 소리는 조용하고 잠잠했던 후궁을 깨워버렸다. 금위군은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을 알아채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자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화양전은 아비규환으로 되었다.
이때, 복면을 쓴 7명의 자객은 진작 뒷길로 화양전의 안쪽으로 빠져나왔다.
진무열은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
서숙의도 그 소리에 바로 깼다. 그녀는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전하, 빨리 도망가시옵소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진무열을 먼저 챙겼다.
“슉!”
7명의 자객은 침전 안으로 활을 쏘기 시작했다.
진무열은 깜짝 놀랐다.
“조심하오!”
그는 서숙의를 보호하려고 바닥에 덮쳤다. 간신히 그 화살은 피했다.
그 화살은 바닥에 꽂혔다. 원목 바닥이 쩍쩍 갈라진 걸 보니 화살에 맞았으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진무열은 사람을 부르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서숙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발견했다. 그녀의 고운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 자객이 검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전하, 조심하옵소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진무열을 밀쳐내고는 다시 자기 밑으로 보호했다.
그녀가 이렇게 힘이 셀 줄은 몰랐다.
긴 검은 서숙의의 등을 향해 찔렀다. 그러고는 빨간 피가 튀어 나왔다.
“우욱...”
그녀는 진무열의 얼굴에 피를 토했다. 진무열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하.”
서숙의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자기 몸으로 자객을 막으려고 온 힘을 다해 진무열을 짓눌렀다.
“서숙의!”
진무열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그녀를 지켜주려고 했으나 새빨간 피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몸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등은 칼에 찔려 거의 손바닥만 한 길이의 상처가 났다.
“아악!”
진무열은 분한 마음에 소리만 크게 질렀다.
자객이 더 찌르려고 다가오자 진무열은 겨우 빠져나와 서숙의를 보호했다.
그 모습을 본 자객은 좀 주춤했다. 이번 암살의 목표는 서숙의지 진무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숙의가 죽지 않았을까 봐 또 두려웠다.
이때, 여러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한 늙은이가 나타났다.
“전하를 보호하거라!”
풍천도였다. 아수라장이 된 침전을 보고는 화가 나 바로 한 자객의 목을 비틀렸다.
나머지 6명의 자객은 목숨을 잃는 게 두렵지 않은지 모두 서숙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금위군도 침전으로 달려왔다. 스무 명이 넘은 사람이 진무열을 둘러싸고는 방패를 들어 그를 보호했다. 말 그대로 철통 보안이었다.
진무열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그의 얼굴은 이미 굳어졌다.
서숙의의 낯에는 전혀 혈색이 없었다. 입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왔고 온 힘을 다해 진무열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을 할 힘이 전혀 나지 않았다.
“말하지 마오, 당장 어의를 부를 테니 걱정하지 마오.”
진무열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서숙의는 그를 꼭 붙잡기만 했다. 피가 묻은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
“전하... 전하, 밖은 위험하오니 나가지 마시옵소서.”
진무열은 그녀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를 안고서는 밖으로 나가 어의를 찾으려 했다.
서숙의는 눈물을 흘리면서 거의 비는 말투로 말했다.
“전하, 나가지 마시옵소서,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아직 자객이 금위군에 잡히지 않았는데...”
“더는... 더는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옵니다.”
그녀는 피를 머금고 창백한 손으로 진무열을 꽉 잡고 있었다. 그러고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신첩은 너무 기쁘옵니다, 전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게. 궁에 들어오고 나서 드디어 전하에게, 낙정에 도움을 드린 것 같아 신첩은 너무 기쁘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켁켁, 전하의 대를 못 이어준 것이옵니다... 전하, 절대 신첩을 잊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신첩은 어두운 걸, 그리고 혼자 있는 걸 싫어하옵니다.”
그녀는 아쉬움이 남아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너무 고통에 시달려서인지 그녀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