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성이 생각을 되짚는 동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겁을 먹었을 거라 생각한 상대방은 문자 한 마디를 더 보냈다.
“임희원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입니다.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좋게 말할 때 물러나죠?”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말아요. 이번에 좋게 잘 넘어가면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나중에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도 돼요. 다른 건 몰라도 미녀는 충분히 많으니까.”
그는 심지성에게 임희원을 포기하지 않으면 엄중한 후과가 따를 거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심지성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심지성을 협박하다니?
심 씨 가문은 한국 전체를 뒤흔드는 큰 손인데, 그 앞에서 감히 이름을 들먹였다?
“싫다면요?”
“이봐요. 충분히 정중하게 부탁했다고 생각하는데? 좋게 말할 때 들어요.”
“또라이.”
심지성은 상대방의 말을 보란 듯이 무시하고 대화창에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그는 충전 창을 누른 뒤 손가락으로 가볍게 ‘1’ 하나와 ‘0’ 여덟 개를 톡톡 두드렸다.
그건 한화 2억 원에 해당하는 라이브 방송 선물권이었다!
그러자 수많은 별풍선이 방송 화면 전체를 장식하고 심도령이 별풍선 십만 개를 선물했다는 안내가 떴다.
순간, 댓글 창의 열기가 다시 한번 폭발했다. 저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건 4천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었다! 플랫폼의 인기 순위를 지키고 있는 BJ들 방송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였다.
“감사합니다! 심도령님의 별풍선 감사합니다!”
임희원은 흥분하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임희원의 외모는 모든 BJ들과는 비길 바도 되지 않는 여신 중에 여신이었다.
때문에 그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수많은 팬들을 그녀의 치마폭에 가둘 수 있을 것이며 잘나가는 BJ들 자리에 오르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문 업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보수적인 여자였다.
게다가 대학교 강사인 그녀는 쓸데없는 스캔들에 휩싸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 번도 방송에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방송을 하면서 그녀는 목소리에만 의지해 인기를 얻은 것이었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지 않으니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많을 수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가끔 선물하는 별풍선 몇백 개 정도가 많은 거였는데 한꺼번에 만개는 정말이지 뜻밖의 서프라이즈였다.
그녀의 방송에서 많은 돈을 소비하는 유일한 사람은 임소한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선물을 쏘는 이유를 뻔히 알고 있는 임희원은 그의 선물과 등장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들도 많이 보는 방송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방송을 보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이며 임소한의 등장이 임희원의 인지도를 높이기도 하니 임희원 그녀도 그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심도령이라는 아이디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처음 들어온 방송에서 등장하자마자 큰 선물을 했던 것이었다.
임희원은 그에게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피드에 들어가 보니 금방 가입한 듯 깨끗했다.
임희원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댓글 창이 또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도령께서 별풍선 오만 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특수 효과는 끝나기가 무섭게 연속적으로 쏟아졌다.
“전도령께서 별풍선 십만 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대박.”
“무슨 일이야?”
“이 BJ 유명한 사람이에요?”
……
심지성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임소한이 당연히 반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를 자극하지 못했다면 재미가 없을 뻔했다.
“계속해 봐, 진 사람이 손자야!”
임소한은 이번에는 개인 톡이 아닌 댓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글씨도 빨간색으로 설정해 흰색 댓글들 속에서 특히 눈에 띄었다.
“누가 이기나 제대로 붙어!”
“허허.”
심지성은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리고…
“심도령께서 별풍선 삼십만 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조용히 전도령의 기세를 꺾었다.
상대방도 이에 질세라 재빨리 반격해 왔다.
“전도령님께서 별풍선 삼십오만 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화면을 보고 있던 심지성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선물 버튼을 다시 한번 눌렀다.
“심도령께서 별풍선 오십만 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오십만 개!
“심도령님 대박!”
“미쳤어!”
“대박이다 진짜!”
“지금까지 이런 장면 처음 봐요!”
“시X!”
대학교의 어느 식당 룸, 정장 차림의 부잣집 남자가 노발대발하며 외마디 욕설을 뱉으며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펄쩍 뛰는 임소한에게 얼른 물었다.
“심도령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임소한은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혼자서 욕설을 이어갔다. 그는 화가 나서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와 그를 둘러싸고 그의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곧바로 그가 분노한 이유를 알아챘다.
“감히 우리 형님한테 대결을 걸어?!”
한 사람이 별안간 분개하며 소리쳤다.
“형님, 걱정 마십시오. 저 자식 단숨에 몇십만 원을 부었으니 곧 바닥이 날 겁니다. 관심 한번 받아보려는 거죠.”
듣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덕분에 임소한은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임소한은 천해시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의 아버지 임성재는 중소기업을 몇 개나 거느린 거물이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기업은 시가총액이 6천억을 돌파한 국내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인 임천 그룹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천해시에서 손꼽히는 부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소한은 임성재의 외동아들로, 온 가족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원하는 스포츠카가 있으면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매달 무려 몇억 씩 통장에 꽂히니 그의 과시욕을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보름이 지났지만 주머니가 아직도 두둑한 그와 돈으로 비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흥! 겨우 긁어모은 코 묻은 돈으로 나에게 도전한다?
임소한은 어떠한 결심을 했다.
“너희들 지금 얼마나 갖고 있어? 나에게 모두 이체해 줘. 다음 달에 돌려줄게.”
“형이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는 거에 필요한 건데 갚기는 뭘 갚아요.”
그의 동생들 중 한 명이 그 말을 듣고 즉시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후, 임소한의 핸드폰에 입금 알림이 울렸다.
다른 동생들도 모두 맞장구를 치며 잇달아 돈을 이체했다.
임소한의 주변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이니 모두 만만치 않은 집안 자제들이었다. 비록 임소한과 겨룰 바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몇 천만 원에서 몇 백만 원까지 어렵지 않게 내놓았다.
이내 1억 2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은 그는 생각도 거치지 않고 충전 버튼을 눌렀다.
“전도령님께서 별풍선 육십만 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와아! 2차 전이야! 끝난 줄 알았는데.”
“아, 부러워.”
“거지의 상상 범위 밖이네요.”
“돈이 최고군요!”
자신의 선물에 반응하는 댓글들을 보며 임소한은 희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빨간 글씨로 심지성을 지목하며 말했다.
“계속해 보시지?”
“계속해 봐! 왜 멈췄어?”
“다음 생에나 다시 도전하려고?”
연속되는 비아냥에도 심도령의 아이디가 보이지 않자 임소한은 후련한 마음으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닌 게, 꺼져!”
임소한은 거만하게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럼요, 형님이 누구라고, 그 자식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봐요.”
그의 동생이 옆에서 아부를 떨었다.
“하하, 형님, 아직까지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면 패배를 인정한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요. 얼굴이 있으면 다시는 나타나지 못할 거예요.”
“하하, 기분 좋으니까 저녁에 달리자, 내가 쏜다!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모두 연결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