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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내의 본분을 다하다

  • 그 말에 송윤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유설희가 혼인관계증명서를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 그녀의 작은 머리는 지금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 송윤아가 유설희를 찾아가 가짜 혼인관계증명서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건, 그저 유민호와 송서민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진짜 결혼을 했다고?
  • 송윤아는 마치 자신이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렇게 송윤아가 한창 의아해하고 있을 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띡하고 진동했다.
  • 송서민이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 웨딩드레스를 입고 유민호와 팔짱을 낀 다정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 [다음 달 15일에 민호 씨랑 난 약혼식을 올릴 거야. 꼭 참석해야 해.]
  • 이런 메시지에 송윤아는 냉소했다.
  • 유민호는 송윤아가 자신에게 그녀의 순결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바로 그녀의 절친과 잠자리를 가졌다.
  • 그렇게 두 사람은 송윤아 몰래 만남을 이어가다가 약혼식을 올릴 때에서야 그녀에게 이별 통보한 것이다.
  • 3일 전, 유민호는 송윤아의 몸을 탐낼 생각으로 그녀에게 자신과 결혼하자고 속였었다.
  • 뜻밖에도 송윤아는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바보처럼 서울로 올라와 그와 결혼하려고 했었다.
  • 유민호와 송서민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두 사람에게 제대로 자극을 받은 송윤아는 얼굴빛이 점점 굳어졌다. 가짜 결혼이든 진짜 결혼이든 뭐 어때?
  • 송윤아는 두 사람에게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 평소 송윤아의 성격이라면 그녀는 절대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런 혼인을 하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유설희가 소개해준 사람이고 게다가 유씨 가문에서 일하고 있으니 위험한 사람은 아닐거라고 판단했다.
  • 그녀와 그의 혼인관계증명서는 진짜이니, 거짓이 들통날까 봐 더더욱 두렵지도 않았다.
  • 송윤아는 유보겸을 바라보며 용기있게 한마디했다.
  • “좋아요. 어쨌든 저희는 실수로 결혼했으니, 혼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좋겠어요.”
  • 5분 후, 유보겸은 계약서 하나를 송윤아에게 건네주었다.
  • 유보겸은 그녀 맞은편에 앉아 여유로운 자세로 우아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송윤아가 계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 송윤아는 계약서에 적힌 규정 중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 “필요할 때마다 아내의 의무를 다한다는 게 뭐예요?”
  • 그 의무는 합법적으로 자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 그 말에 유보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송윤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 “말 그대로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야.”
  • 그의 할아버지는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을 감시할 수도 있었다. 비록 그들은 가짜 결혼이지만, 송윤아는 아내의 본분을 다해서 그를 대신해 그의 할아버지를 상대해야 했다.
  • 유보겸의 말에 송윤아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 ‘역시 이런 증거들로 합법적으로 나랑 자려고 그러는 거야.’
  • 가정 환경의 영향과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송윤아는 유민호와 결혼을 한 다음에 관계를 가질 것을 약속했었다.
  • 게다가 유보겸과 친하지도 않고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아무리 실수로 결혼했다지만 일이 갑자기 이렇게 진행되니 진도가 너무 빨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송윤아는 점점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이곳에서 다급히 도망치고 싶었다.
  • 잠시 후,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 “아… 아니면 그냥 없던 거로 해요. 내일 법원에 가서 이 황당한 혼인을 취소하는 게 좋겠어요.”
  • 유보겸을 대신할 남자를 다시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왜?”
  • 유보겸이 물었다.
  • “저희는 아직 친하지도 않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결혼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송윤아는 머리를 쥐어짜내 여러가지 이유를 덧붙였다.
  • 사실 제일 주된 이유는 그녀는 자신의 몸을 그에게 주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유보겸은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 “정없이 결혼하는 부부도 많아. 같이 살면 자연스럽게 정이 들 수도 있어.”
  • 유보겸은 두 사람은 단지 협의 결혼을 했을 뿐이고,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쫓아다니는데 송윤아가 무슨 걱정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잠시 후, 유보겸은 협상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 “무슨 다른 걱정거리라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