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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저랑 결혼해요

  • 유하빈의 역질문에 차지태는 다른 증거를 내놓으라는 듯 말없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 이에 휴대폰을 꺼내들어 화면을 두어 번 터치하던 그녀는 차지태를 향해 제 휴대폰을 내밀었다.
  • 그녀의 몸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에는 몸 곳곳에 빨갛게 멍이 든 모습이 찍혀있었다.
  • “차지태씨, 오른쪽 옆구리에 큰 흉터 있죠? 그리고 왼쪽 어깨에 치아에 깨물린 후에 남은 흉터도 있을 테고.”
  • 말없이 사진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차지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하빈과 눈을 마주쳤다.
  • “……무엇보다 차지태씨가 내 몸에 남긴 흔적, 한국으로 가져와서 DNA 분석이라도 할까요? 차지태씨가 원하면 지금이라도 가능합니다.”
  • 그래, 이 정도면 증거라 칭하기에는 충분했다.
  • 게다가 그가 남긴 흔적이라니, 성인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었다.
  •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완벽한 증거였다.
  •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뭡니까?”
  • 드디어 결론을 지을 순간이 왔다.
  •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김정혁은 곧 닥쳐올 상황에 숨이 막혀 무심코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 “말씀드렸잖아요. 저랑 결혼해요.”
  • 유하빈의 침착한 대답에 차지태는 손을 들어 앞턱을 매만지며 다시 한번 질문했다.
  • “돈이 필요한 겁니까?”
  • 그 말에 유하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어 실소를 터뜨렸다.
  • “돈이요? 아니요, 당신의 돈이나 재산 따위 관심도, 흥미도 없어요.”
  • “그럼 왜 결혼을 하겠다는 거죠?”
  • 차지태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유하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했다.
  • 그가 한 여자에게 이토록 인내심을 보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 차지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김정혁 또한 흥미가 생겨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 “당신이랑 결혼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1년이면 돼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년, 물론 목적을 더 빨리 달성하면 이혼이 앞당겨질 수도 있겠네요.”
  • “이혼할 때, 위자료 안 줘도 됩니다.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애인을 만나러 다녀도 상관없어요. 난 그냥 차지태씨의 아내라는 타이틀만 필요한 거니까.”
  • 차지태는 여전히 말없이 유하빈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 “그러니까 차지태씨가 결정해요. 나랑 1년 동안 부부 사이로 지낼 건지, 아니면 올해의 기업인 차지태가 강/간을 저질렀다는 기사로 내일 아침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하고 싶은지.”
  • 그녀의 말만 들어보면 차지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 그가 강/간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러한 자극적인 기사 자체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 그리고 무엇보다 금방 주식시장에 상장한 제타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갑갑한 상황에 안절부절못하던 김정혁은 상황을 중재하려 어떻게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려고 했다.
  • 그러나 어쩐지 차지태의 얼굴에는 당황한 감정이 한 가닥도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의 웃음기마저 엿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