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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협박

  • “저, 저는 괜, 괜찮습니다. 아가씨는…… 꺅!”
  • 부딪히는 과정에 긁힌 건지 양지아의 손바닥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 “쉿.”
  • 그 광경을 본 이지은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양지아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 “손 치료하셔야……”
  • 양지아는 이지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 애초에 사람이 없는 모퉁이에서 벌어졌던 해프닝이라 조금 전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한 일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피가 흐르는 손으로 이지은의 손목을 잡았던 터라 손목에는 양지아의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정신이 아찔해진 이지은은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 “이지은씨,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몇 년 됐죠?”
  • 양지아는 세면대 앞에 서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었다.
  • 새하얀 세면대가 그녀의 피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 “일……일 년 되었습니다.”
  • 양지아는 세면대 앞의 거울로 등 뒤에 서있는 이지은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이지은은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 혹시 대표님께 말씀드려 그녀를 자르려고 하는 걸까?
  • 머릿속에는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 채 새어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꽉 깨문 이지은은 양지아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이지은씨, 승진하고 싶지 않아요?”
  • 하지만 양지아가 내뱉은 건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 “네?”
  • 이지은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양지아를 바라봤다.
  • “승진하고 싶지 않냐고요.”
  • “하…… 하고 싶습니다.”
  • 양지아는 수도꼭지를 닫고 손의 물기를 털어낸 후 티슈를 뽑아 여전히 조금씩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뒤로 돌아서서 이지은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 “그럼 나 좀 도와줄래요?”
  • 이지은은 양지아의 말을 이해하려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이지은의 맹한 표정에 양지아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 “간단해요. 지금 이 순간부터, 대표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나한테 보고하면 돼요.”
  • “네? 하지만 그건……”
  • 업무상의 기밀이라는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양지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이지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제타에 입사하는 직원들이 교육받는 철칙 중 하나가 바로 회사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는 것이다.
  • 그것이 업무적인 사항이든, 직원들 간의 사사로운 가십이든 전부 회사 기밀에 속했다.
  • 이건 대표님이 회사의 일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했다.
  • 그러니까 회사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이지은에게 있어서 회사의 기밀을 누설하는 것이란 곧 가장 중요한 룰을 어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 게다가 대표님의 일거수일투족이라니.
  • 들키는 순간 회사에서 잘리는 건 물론이고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 “그럼 지금 당장 대표님에게 말씀드릴까? 네가 일부러 나를 밀치는 바람에 손에 상처가 났다고?”
  • 양지아는 피가 흐르는 손으로 이지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그럼 너희 대표님께서 뭐라고 하실 것 같아?”
  • 양지아의 기다란 손톱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이지은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 분명히 이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데도 마치 사탄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