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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저랑 결혼하는 거, 후회하세요?

  • “안녕하세요.”
  • 어제와 똑같이 차지태의 옆자리에 착석한 유하빈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 올 화이트 슈트 차림이었던 어제와 달리 블랙 정장 세트를 입은 그가 왠지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
  • “네.”
  • 차지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 기분이 별로인 걸까?
  • 역시나 알 수 없는 남자였다.
  • 하지만 그녀도 차지태와 별다른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에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할 말도 없는데 괜히 억지로 말을 붙였다가 상황이 더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까.
  • “후회하지 않겠어요?”
  • 이때, 정적을 깨고 차지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유하빈은 순간 심장이 덜컥 가라앉았다.
  •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걸까.
  • 후회한다고 말하면 결혼하지 않으려고?
  •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속물처럼 느껴질까?
  • “후회 없는 선택은 없어요.”
  • 어차피 정답이 없는 질문에 고민해 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다.
  • “……”
  • “차지태씨는요? 저랑 결혼하는 거, 후회하세요?”
  • 그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유하빈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 사실 그다지 궁금하진 않았다.
  •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혼인신고만 할 뿐인데, 게다가 결혼 유지 기간은 고작 1년.
  •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필요도 없는 허울뿐인 결혼에 그가 의미를 부여할 리가 없었다.
  • 얼마나 후회하고 있을까.
  • 그날 밤,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덮쳐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피곤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 그녀에게는 순결을 잃은 치욕스러운 밤이었는데 그녀의 순결을 빼앗은 남자한테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 게다가 그 남자는 지금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것에 크게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유하빈은 저도 모르게 비소가 흘러나왔다.
  • 그러나—
  • “아니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 **
  • 아직도 심장이 주체 없이 날뛰고 있었다.
  • 구청에 도착해서 혼인신고 절차를 밟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차지태의 대답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 “아니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 대답을 내뱉은 이유였을까.
  • 아니면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한 이유였을까.
  • 왠지 그의 대답이 거짓이 아닌 듯한 느낌이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 “……빈씨. 유하빈씨?”
  • “아, 네?”
  • “넋 놓고 뭐해요. 몇 번을 불렀는데.”
  • 차지태가 탁자를 가볍게 치자 유하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 그는 앞을 보라는 듯 턱짓을 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작성을 전부 끝낸 혼인 신고서를 바라봤다.
  • “유하빈씨가 제출하시죠.”
  • 유하빈은 혼인 신고서를 손에 들고 있다가 차지태를 한번 바라본 후, 마음을 먹은 듯 구청 직원에게 건네줬다.
  • 이로써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 그녀는 결혼에 대해 별다른 환상은 없었다.
  • 그러나 자신의 결혼이 아무런 사랑도 없는 그저 낯선 남자와 1년간의 계약 결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유하빈씨가 앞으로 1년 동안 살게 될 집 키입니다. 사람을 보낼 테니 짐을 옮기시죠.”
  • 구청 밖으로 나오자마자 차지태는 유하빈에게 열쇠 하나를 건넸다.
  • 이건 그녀가 살 집을 마련해줬다는 건가?
  •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