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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두 꼬맹이와의 상봉

  • “아니에요. 저 그러지 않았어요.”
  • 고미진은 고개를 숙이고 부인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 ‘정이현은 어떻게 알았을까?’
  • “아니라고?”
  • 정이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차갑게 되묻자 고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 비 맞은 배꽃과도 같은 그녀의 모습을 다른 남자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정이현의 눈에는 혐오스럽기만 했다.
  • 그는 조금 전에 조사한 서류를 테이블에 던졌다.
  • “난 누구에게 함부로 누명을 씌우는 버릇이 없으니까 네 눈으로 봐.”
  • 불안한 마음으로 서류를 들여다보던 고미진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 정이현은 그녀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 “정말 아니야?”
  • “제… 제가…”
  • 고미진은 댜시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이현 씨, 제가 잘못했으니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런 멍청한 짓을 했어요.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요. 이현 씨, 당신을 너무 좋아하니까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까 봐 항상 두려워요. 이런 제 마음을 당신은 모르시죠? 제가 마음이 혼란스러우니까 잠시 어떻게 되었었나 봐요.”
  • 정이현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 “난 너에게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진작에 말했잖아.”
  • “이현 씨, 우리가 같이 산 지 벌써 5년 됐는데 당신은 정말 저한테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 고미진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 “내 한계를 건드리려고 하지 마!”
  • 정이현은 경고 한마디 하고는 문을 닫고 떠나갔다.
  •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고미진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으스러지게 주먹을 쥐었다.
  • ‘5년이나 지나도 난 정이현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어. 고유진도 나타난 판에 진실이라도 밝혀지면 난 영영 정씨 가문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될 거야!’
  • 고미진의 눈에 음흉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 ‘정이현은 내 것이야!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어!’
  • 잠시 후 고미진은 휴대폰을 들고 고유진에게 전화했다.
  • 전화가 통하기 바쁘게 그녀는 명령 조로 말했다.
  • “내일 2시간 앞당겨 품평회로 와.”
  • “응.”
  • 고유진은 간단한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미진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 ‘몇 년 못 봤더니 이 나쁜 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불쌍하게 고씨 가문에서 쫓겨난 주제야!’
  • 다음날,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고유진은 약속대로 2시간 전에 품평회 현장인 대신 국제호텔에 도착했다.
  • 오늘 품평회에는 여러 보석 디자인 대가들뿐만 아니라 각계 비즈니스 인사들도 모였다. 게다가 행사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거물급 신제품을 발표한다고 한다.
  • 현장을 한 번 둘러보았지만, 고미진은 보이지 않았다. 고유진은 비서에게 얘기하고 정원을 거닐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길에 행방불명된 자신의 두 아이가 떠오른 그녀는 마음이 착잡했다.
  • 정원에는 기이한 꽃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돌다리 밑에 잔잔하게 흐르는 물, 조산과 정자는 신선이 사는 곳을 방불케 했다.
  • 바람을 쐬고 나니 마음속의 걱정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앞으로 좀 더 걸어가자 두 아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 “꽃이 너무 예쁘다. 형, 그릴 수 있겠어?”
  • “당연하지. 오늘 우리 여기서 더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을 거야. 형이 다 그릴 수 있어.”
  • “그럼 형이 배운 다음에 나한테 가르쳐줄래?”
  • “응. 형이 꼭 가르쳐줄게.”
  • ‘오늘 행사에 애들도 온다고 했나? 목소리를 들으니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 같은데.’
  • 호기심이 생긴 고유진이 걸어가 보니 자신의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의 꼬맹이 둘이 연못가에 있는 돌 위에 앉아 스케치판을 들고 그림 그리고 있었다.
  • 발걸음 소리를 들은 두 꼬맹이도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 세 쌍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들은 깜짝 놀랐다.
  • ‘이상하네. 꼭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고유진은 두 꼬맹이한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약간 마른 애는 좀 커 보였는데 잘생기고 점잖았고, 다른 한 명은 젖살이 있었는데 그 역시 잘생긴 얼굴이었다.
  • ‘크면 미남들이겠네.’
  • 다만 고유진의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달리, 낯선 사람을 보고 약간 당황하는 걸 보니 두 아이의 성격이 내성적인 것 같았다.
  • 두 꼬맹이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유진을 가늠하고 있었다. 포도알 같은 두 눈에 고유진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 한참 후에야 제정신이 든 고유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 “두려워하지 마. 난 고유진이라고 하는데 오늘 품평회에 참가하러 왔거든. 방금 무의식중에 너희 대화를 들었어. 너희들도 행사에 참가하러 온 거야?”
  • 그들이 놀랄까 봐 고유진은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두 꼬맹이는 망설이다가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 ‘아빠가 낯선 사람과 말하지 말라고 했어.’
  • 그런데 왠지 그들은 고유진의 질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유진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