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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고미진의 방문

  • 퇴근 시간 남산 별장에서.
  • 고유진이 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한 여자가 문을 두드리려고 하고 있었다.
  • 그 뒷모습이 그녀는 재가 되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다.
  • “고미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
  • 휑뎅그렁한 계단에서 울려 퍼지는 고유진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깜짝 놀란 고미진은 그녀를 돌아보더니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물었다.
  • “어떻게 너야?”
  • 고유진은 다가가서 코웃음 치며 말했다.
  • “그럼 누군 줄 알았어?”
  • 이곳에 사는 사람이 고유진일 줄은 생각지 못한 고미진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곧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 5년 전에 그녀는 고유진의 두 아이를 이용해 정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는데 성공했지만, 정이현은 시종 그녀에게 명분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갖은 수단을 다 써 보아도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 여자를 가까이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그가 어젯밤에 갑자기 어떤 여자가 사는 집에 갔다는 제보를 들은 고미진은 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 그 주소대로 찾아왔더니 뜻밖에도 그 여자가 고유진이라니!
  • 고미진은 점점 더 예뻐지는 여자를 보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 “고유진, 내가 경고하는데 너 정이현한테서 멀리 떨어져! 그는 너처럼 다른 남자의 아이나 낳는 더러운 여자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 ‘정이현? 그때는 임찬혁과 결탁해 날 함정에 빠뜨리더니? 지금은 어떻게 정이현에게 빌붙었을까? 이미 정씨 사모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이현을 위해 아이까지 낳아준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여태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니 그럼 그 사람이 혹시 고미진? 참, 이런 여자를 좋아하다니, 정이현은 눈이 멀었나?’
  • 고유진은 눈앞의 박정한 여자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 “난 누군가가 날 협박하는 걸 가장 싫어하거든. 내가 긴장되거나 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게다가 정이현처럼 훌륭한 남자라면 언제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르겠네?”
  • 그녀는 앞으로 다가서며 고미진을 직시했다.
  •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너한테서 남자라도 빼앗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렇게 되면 내연녀 자식인 넌 고스란히 물러나야 할 텐데.”
  • 열 살 되던 해에 그녀의 엄마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아빠는 엄마가 죽은 날 바로 내연녀를 데리고 집에 왔다. 고미진은 그녀보다 고작 한 살 어렸다. 그녀의 엄마가 임신했을 때부터 바람피운 게 분명했다.
  • 그들 두 모녀는 집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그녀를 해코지하려고 했고 나중에는 그녀의 약혼남과 짜고 들어 그녀를 함정에 빠뜨렸다!
  • 그녀는 정조를 잃고 고씨 가문에서 쫓겨났고 자신의 혈육과 생이별하게 되었다!
  • ‘조만간 너희들이 나한테 진 빚은 천천히 돌려받고야 말겠어!’
  • 화가 난 고미진이 고유진을 때리려고 손을 치켜들었다.
  • “네가 감히 날 욕해?”
  • 고유진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꽉 틀어쥐고 날카롭게 그녀를 보았다.
  • “욕하면 또 어때?”
  • 고미진은 그녀에게 잡힌 손목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갑자기 뭔가 생각난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기왕 만났으니 너에게 도움이나 청해야겠다.”
  • 고유진은 어이없이 그녀를 보았다.
  • “내가 널 도와줄 것 같아?”
  • “그렇게 서둘러 거절하지 마. 넌 아이를 찾고 싶지 않아? 그들을 내 손으로 보냈거든. 네가 날 도와준다면 네 아이들의 행방을 가르쳐줄게.”
  • 고미진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 “네가 가장 신경 쓰는 게 애들이잖아!”
  • 그녀의 약점을 아는 고미진이 정곡을 찔렀다. 아니나 다를까 고유진은 안색이 변했다.
  • “너 뭘 어쩌려고, 내 아이들은 건드리지 마!”
  • “입양 보낸 아이들한테 내가 뭘 어쩌겠어.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 고미진은 요염하게 웃었다.
  • “다음 주에 ‘사랑을 좇아’ 디자인 품평회가 있거든. 네가 그런 쪽에 타고난 재질이 있다는 걸 알아. 그날 와서 그 작품들의 특점만 나한테 알려주면 돼. 간단하게 입만 놀리면 아이들의 행방을 알 수 있는데 잘 생각해 봐.”
  • 이번 품평회에는 정이현도 참석할 것이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이 품평회를 개최한 사람은 여태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국제 디자인 대가 밀레이라는 사람인데, 정도 그룹에서 그 대가와 손을 잡기 위해 애타게 찾고 있다고 한다.
  • 정이현의 총애를 받기 위해 고미진은 이번 품평회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능력의 한계로 표면적인 것밖에 알지 못했다. 고유진이 이 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그녀는 오늘 우연히 고유진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 고유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고미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이 품평회에 관해 알고 있을뿐더러 때가 돼서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녀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 “그래.”
  • 고미진은 고유진이 이렇게 쉽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너 또 무슨 수작 부리려는 거지?”
  • “그럴 리가 있어. 내가 아이들을 찾으려면 네 말을 들을 수밖에 없잖아?”
  • 고유진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 “그건 그래.”
  • 고미진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 ‘감히 수를 쓰지는 못하겠지. 아이를 찾으려면 내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 고미진은 가기 전에 정이현 근처에서 얼씬도 하지 말라고 또 한 번 경고했다.
  • 같은 시각 세 꼬맹이는 망원경과 도청 장치를 통해 그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 고미진이 손을 들어 고유진을 때리려는 순간 세 꼬맹이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 ‘누구도 우리 엄마를 괴롭혀서는 안 돼!’
  • 고미진이 별장에서 나와 차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돌멩이들이 날아왔다!
  • “아…”
  • 겁에 질린 고미진이 연신 고함을 질렀다. 그 돌멩이들은 신기하게도 가장 아픈 곳만 골라서 때렸다. 그녀는 돌멩이에 맞아 군데군데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 “누구야, 누가 감히 날 기습하는 거야! 당장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