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된 거지? 틀릴 리가 없는데? 이건 분명히 고유진이… 고유진?! 이 나쁜 년이 날 함정에 빠뜨리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했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바로 알아차린 고미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미소를 짓고 있는 고유진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런 창피를 당하게 하고도 부족한지, 고유진은 그녀를 향해 술잔을 들어보이고는 일어서서 사람들을 향해 걸어왔다. 범상치 않은 그녀의 기질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너무 아름답다. 저런 색상의 원피스를 저렇게 잘 소화하다니. 정말 선녀 같아.”
“저 몸매, 완전 부럽다.”
“저런 대단한 기질을 풍기는 언니는 누구실까?”
고유진을 본 정이현과 두 꼬맹이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가 사람들 틈에 끼었다. 그들은 그녀가 뭘 하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고미진은 정이현의 행동을 보자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고유진은 얼굴을 찡그린 고미진을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유진이라고 하고요, 스타 그룹 책임자예요. 이 작품들에 관한 저의 견해는 고미진 씨와는 약간 달라요…”
고미진이 이를 갈든 말든 상관없이 고유진은 먼저 그 반지 앞에 서서 작품을 보며 야무지게 말했다.
“이 반지는 라라 아가씨의 작품인데요, 어느날 라라 씨의 애인이 장미를 들고 그녀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고 일생일대의 약속을 했답니다…”
고유진은 팔찌를 보더니 다시 고미진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 팔찌의 이름은 ‘선’이에요. 서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한계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선을 넘지 말라는 뜻에서 수갑 형태로 디자인했죠… 이 팔찌가 내포한 뜻은 사랑이라고 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약속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팔찌는 애인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해요.”
“훌륭해요!”
“고 대표님의 설명을 들으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사람들은 고유진을 둘러싸고 그녀를 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민우와 정민섭도 그들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줌마 정말 대단하네.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는데 학식까지 갖췄네.’
하지만 정이현의 태도는 그들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안색이 흐려졌고 온몸에서는 냉기가 감돌았다.
‘고유진 이 여자, 나대는 걸 너무 좋아하네? 저 남자들이 자신의 몸만 쳐다보는 게 안 보이나?’
정이현 자신도 왜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그는 그 남자들이 아니꼬웠다.
고유진의 등장으로 고미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설마 이것까지는 모르겠지.’
이번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펜던트에 관해 그녀는 이미 사람을 시켜 알아 놓았다. 그 펜던트는 밀레이 디자이너가 갓 디자인한 작품인데 오늘 처음으로 출시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유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조금밖에 알아내지 못했는데 고유진이 알 리가 없지.’
고미진은 고유진에게 다가가 도발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고유진 씨, 이 펜던트에 내포된 의미가 뭔지 얘기해보시겠어요? 저도 배우고 싶어서 그래요. 워낙 박식하시니까 아실 것 같은데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고미진을 본 고유진은 그녀가 자신을 망신시키려고 그런다는 걸 알고 일부러 뜸을 들이며 잘 모르는 척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