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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건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에요

  •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이건 제가 한 짓이 아니에요."
  • "스타 그룹은 정도 그룹과 협력을 하고 싶은 입장입니다. 그러니 절대 이렇게 아둔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20억 원은 그저 얼마 안 되는 돈일 뿐입니다. 고작 그까짓 돈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정도 그룹의 방화벽을 해킹하지는 않겠죠. 누군가 저를 모함한 것 같으니 이 일은 분명하게 조사해 제대로 해결한 뒤 정 대표님께 결과를 알려 드릴 것입니다."
  • 정이현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 "그럼 고유진 씨의 결론 기다리겠습니다."
  • 그녀가 떠나기 전 정이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다만 고유진 씨에게 귀띔을 하나 드리자면, 이런 식으로 저의 주의를 끄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 그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사용하는 여자들을 수없이 만나 보았다.
  • 고유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정 대표님처럼 대단한 분에게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까요. 오늘 일은 빠른 시일 내에 조사를 마쳐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말을 마친 고유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이제 협력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 부리나케 남산 별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을 열고 별장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는 세 아이를 보게 되었다.
  •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은 아직 어렸지만 잘생긴 티가 났다. 아이들은 얌전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 고유진이 돌아온 것을 발견한 아이들은 전부 달려와 그녀를 에워싸고는 미소를 띠고 애교 섞인 인사를 건넸다.
  • "엄마."
  • 천진난만하고 무해한 모습들이었다.
  • 고유진의 화는 이미 절반은 풀려 버렸다.
  • 세 아이는 그녀가 10개월 동안 품어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 그녀는 당시 병원에서 5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고미진이 그 아이들을 각각 다른 인신매매범들에게 팔아넘겼다.
  • 그녀는 비싼 돈으로 고미진이 일을 시킨 간호사를 매수해 간신히 아이들에 대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 다행히도 아이들을 사 간 사람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 충분히 많은 돈을 지불한 뒤에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아직 남은 두 아이의 단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 5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아이들을 찾는 노력을 멈춘 적이 없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 정이현의 경고를 떠올린 고유진은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엄하게 입을 열었다.
  • "너희 셋, 똑바로 서. 엄마가 지금 질문을 하나 할 테니 사실대로 대답해야 해."
  • 고유진은 처음으로 이토록 엄한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 세 아이는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꼭 사실대로 대답할게요."
  • 첫째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 "엄마, 무슨 일이에요?"
  • 고유진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엄하게 말했다.
  • "정도 그룹에 관한 질문인데..."
  • "저희가 저지른 짓이 아니에요."
  • 세 아이는 다시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아직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부정하다니.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
  • 고유진은 두 눈을 부릅뜨더니 정말 화를 내기 시작했다.
  • 첫째가 또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 둘째도 말을 덧붙였다.
  • "그러니까요. 정도 그룹이 뭐예요?"
  • 셋째는 애교를 부리며 가련한 척 말했다.
  • "엄마, 왜 저희에게 화를 내는 거죠?"
  • 세 아이는 말을 하더니 곧 울 것처럼 굴었다.
  • ‘어디 한번 연기를 계속 해 보시지...’
  •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유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그녀의 아이들은 비록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컴퓨터를 다루는 솜씨가 무척 뛰어났다.
  • 첫째는 침착하고 냉정하며 여유로웠다. 날 때부터 타고난 고귀한 분위기에 어린 나이에 벌써 회사 임원 같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으며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 또한 거의 신급이라 칭할 수 있었다.
  • 둘째 아이는 총명하고 영리하여 생각이 깊었고 평소 독설을 조금 많이 하는 편이었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세 아이 중에서 책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 셋째 아이는 두 형과는 크게 달랐다. 아이는 단 음식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했다. 두 형에게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굴며 뒤에서 이익을 얻는 것만 즐겼다. 게다가 포동포동한 얼굴까지 더해지니 세 아이 중 가장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 하지만 이번에 고유진은 아이들의 눈물에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여전히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왜 그랬는지 엄마에게 말해."
  • 엄마가 이토록 확신하는 것을 본 세 아이는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 아이들은 눈물을 쏙 거두더니 울먹이지도 않고 보통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익숙하게 표정을 바꾸는 아이들을 보며 고유진은 놀라 멍해지고 말았다.
  • 여전히 첫째가 대변인 역할을 하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속이기 쉬워 보였어요."
  • 이어 둘째 아이의 독설이 들려왔다.
  • "보기만 해도 능력이 없는 남자였는데 역시나 회사의 방화벽마저 지키지 못하더군요."
  • 말을 하면서 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비웃음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 고유진은 하마터면 아이들 때문에 화병에 걸려 세상을 하직할 뻔했다.
  • ‘속이기가 쉬워? 능력이 없어?’
  • 당당한 정도 그룹의 대표이사이자 한국의 기적과도 같은 존재로 일컬어지는 남자가 도대체 어쩌다 속이기 쉽고 능력이 없는 남자 취급을 당하는 걸까?
  • 셋째는 두 형의 모습을 따라 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 "엄마. 이 남자가 엄마를 찾아와 뭐라 한 거예요? 그가 엄마를 괴롭힌다면 아예 그의 전 재산을 가로챌 거예요. 그럼 우리는 그 남자의 재산으로 디저트를 사 먹을 수 있잖아요."
  • 첫째와 둘째는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 "동생의 말이 맞아요. 감히 그가 엄마를 괴롭힌다면 그의 회사를 해킹해 팬티 한 장 남지 않을 때까지 재산을 빼돌릴 거예요."
  • 고유진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녀는 세 악동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도 그룹과 정면 승부를 겨루고 싶지 않았다.
  • 정도 그룹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직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정말 역추적에 들어간다면 이 엉망진창인 상황을 수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 그녀를 보호하려는 아이들의 마음에 고유진은 무척 감동했다.
  • 하지만 감동은 감동일 뿐, 가르칠 건 가르쳐야 했다.
  • "아가야. 이렇게까지 날 보호해주다니 엄마는 너무 감동이야. 하지만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건 나빠. 어떻게 다른 사람을 해킹해 그의 재산을 빼돌릴 수 있어?"
  • 둘째가 작게 투덜거렸다.
  • "이건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