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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아이들의 덕을 보다

  • 정이현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고 서 있는 두 꼬맹이를 본 고유진은 엄마의 본성 때문인가, 괜히 가슴 아파서 한마디 했다.
  • “정 대표님, 제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이 아직 어리잖아요. 화내지 말고 잘 타이르세요.”
  • 그리고 그녀는 또 웃으면서 두 꼬맹이에게 말했다.
  • “정민우, 정민섭이라고 했지? 정말 듣기 좋은 이름이네. 아줌마는 너희가 착한 아이들이라는 걸 알아. 그런데 너희는 아직 어려서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단 말이야. 앞으로는 이러지 마. 아빠한테 사과드린 후에 아빠랑 같이 돌아가.”
  • 이렇게 따뜻한 말을 들은 순간 꼬맹이들은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들의 엄마였더라면 그들에게 화부터 냈을 것이다. 그들은 눈을 깜박거리며 고유진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후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정이현에게 다가갔다.
  • “아빠, 미안해요. 우리가 잘못했어요.”
  • 바로 이때 고유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고미진이었다.
  • 고유진은 먼저 전화를 받지 않고 두 꼬맹이와 정이현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네. 얘들아, 어른들 말씀 잘 들어. 너희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안녕!”
  • 그녀는 진심으로 두 아이가 예뻤지만, 정이현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더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들을 향해 웃음을 짓고는 돌아서서 떠나갔다.
  • 하지만 두 꼬맹이는 헤어지기 아쉬운 듯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 몇 걸음 걸어가서야 고유진은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받았다.
  • “말해.”
  • 고미진은 조산 뒤에 서서 약간 화난 어투로 말했다.
  • “너 어디 갔었어?”
  • 방금 정이현이 정원 쪽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다급히 달려온 그녀는 정이현 앞에 서 있는 고유진을 발견했다.
  • ‘저 여자가 왜 정이현과 아이들과 같이 있지?’
  • 그래서 황급히 전화를 하게 되었다.
  • 고유진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 “네 요구대로 2시간 전에 왔더니 네가 시간을 지키지 않았잖아. 내가 뭘 하러 갔는지는 너와 상관없잖아?”
  • ‘나와 상관없다니? 나 몰래 내 남자와 아이들을 홀리고 다니는데 나와 상관없다고?’
  • 고미진은 지금 당장 달려가서 득의양양한 그녀의 얼굴을 찢어놓고 싶었다.
  • 아직도 고유진과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이현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난 그녀는 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나와 아이들한테서 떨어져. 나 지금 뒷문에 있으니까 얼른 와.”
  •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고유진은 끊긴 휴대폰을 바라보며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짓고 침착하게 호텔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 고유진을 본 고미진은 소리를 낮추어 노기등등해서 말했다.
  • “지금부터 넌 아무 데도 가지 마. 내 면목이 없었더라면 네 주제에 이런 곳에 올 수나 있었겠어? 다시 한번 내 남자와 내 아이들에게 집적대면 가만두지 않겠어.”
  • 그녀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기고만장하게 말했다.
  • “얼른 나랑 같이 들어가자. 시간 낭비하지 말고.”
  • ‘지금쯤 정이현은 민우, 민섭이와 함께 있을 거야. 이 시간을 이용해 포인트를 기억해둬야 해. 오늘은 절대로 실수하면 안 돼.’
  • 현장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작품들이 불빛 아래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 고미진이 벼락치기로 고유진한테서 많은 독특한 견해를 얻어듣고 나니 그때 마침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서서 품평회가 곧 시작될 거라고 선포했다.
  • 고미진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는 뜻으로 고유진에게 경고의 시선을 보내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 고미진은 웃으면서 휴게실로 들어가 정이현을 보면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 “이현 씨, 저 조금 전까지도 디자이너와 함께 작품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배웠어요. 천천히 배우다 보면 저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 그리고는 정이현의 반응을 살피지도 않고 바로 아이들 앞으로 가서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 “너희 디자인하는 걸 가장 좋아하잖아. 오늘 엄마랑 같이 가서 공부 좀 하자.”
  • 고미진은 아이들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 “품평회가 곧 시작되겠네. 가자.”
  • 정민우와 정민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이현의 눈치를 살폈다.
  • 정이현이 일어서는 걸 보고서야 그들은 고미진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갔다.
  • 네 식구 모두 선남선녀였다. 특히 두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 “세상에, 정 대표님 아니야? 정말 잘생겼네.”
  • “옆에 있는 저 여자는 누구야? 정 대표님이 결혼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 “못 들었어? 5년 전에 정 대표님에게 아이 둘 낳아줬다는 여자가 바로 저 여자잖아. 고씨 가문 맏딸이라고 하던데 여태 명분도 없이 살았나 봐.”
  • “애들 덕을 본 거지.”
  •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미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정이현 옆에 서 있는 여자가 나면 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야?’
  • 고유진은 구석에 앉아 와인잔을 흔들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그쪽 상황을 구경했다.
  • 오늘 품평회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하지만 정이현은 오고부터 구석에 앉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유진에게 눈길이 끌렸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그녀한테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