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을 걱정해주는 그녀의 행동에 놀란 두 꼬맹이는 여전히 말은 안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고유진은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상하게 친근감을 느낀 그녀는 그들과 좀 더 있고 싶었다.
‘내가 오늘따라 두 아이가 그리운가 보네.’
고유진은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녀는 그들의 스케치판을 가리키며 웃음을 지었다.
“너희들이 그린 그림을 봐도 돼? 나도 그림을 잘 그리거든.”
두 꼬맹이는 서로 한 번 쳐다보고서야 스케치판을 천천히 고유진에게 내밀었다. 고유진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두 꼬맹이 옆으로 다가갔다.
생동감이 있는 꽃을 본 순간 그녀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너무 잘 그렸다?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되겠어.”
그제야 통통한 얼굴의 꼬맹이가 뿌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은 이것보다 더 예쁜 것도 그려요. 형이 저한테 가르쳐준다고 했으니 저도 앞으로 이렇게 예쁘게 그릴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너희들 정말 대단하구나!”
고유진은 두 꼬맹이에게 엄지를 추켜들었다.
“너희들은 내가 여태 본 중에 가장 재능 있는 아이들이야. 아줌마도 어렸을 때는 너희만큼은 그리지 못했거든.”
고유진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림그리기에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의 기능을 물려 받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아쉽게도 세 명 중 한 명도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 그림을 이토록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자 그녀는 이 아이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직설적인 칭찬을 처음 들어보는 맏이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고유진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정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구나.’
고유진은 그들과 함께 돌 위에 앉아 스케치판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편 대신 국제호텔 로얄 스위트룸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염라대왕처럼 소파에 앉아 있는 정이현 때문에 방 안의 온도는 극도로 낮아졌다.
양림이 초조하게 문 어귀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두 꼬마 도련님은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거야? 정씨 가문 두 어르신이 그토록 아끼시는 꼬마 도련님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한참 근심에 쌓여 있는데 경호원이 성큼성큼 뛰어 들어왔다.
“대표님, 찾… 찾았어요.”
정이현은 냉큼 몸을 일으켰다.
“앞장서!”
세 사람은 다급히 정원에 왔다.
연못가에 웬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수공으로 계수나무꽃을 수놓은 원피스는 슬림한 디자인으로 그녀의 볼륨감 있는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고, 위로 올린 긴 머리에 불필요한 장신구가 없으니 오히려 더 심플하고 대범해 보였다. 빈티지한 메이크업은 온순하고 부드러운 여성미를 물씬 풍겼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는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녀 옆에는 두 아이가 얌전히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화로운 그들의 모습은 석양빛 아래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 장면에 감동 받은 정이현은 걸음을 멈췄다.
‘저 여자는… 고유진 아니야?’
그 시각 고유진은 이미 그림을 다 그렸다. 그녀는 두 꼬맹이의 만화 캐릭터를 그리고 그 밑에 날짜와 자신의 이니셜인 GYJ을 적어 넣고는 웃으면서 두 꼬맹이에게 말했다.
“이건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야. 비록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났지만, 아줌마는 왠지 너희들이 너무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지금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기를 바란단다.”
과분한 선물을 받은 두 꼬맹이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유진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 화이팅!”
두 형제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유진의 그림을 받아 들고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림속의 캐릭터는 그들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들은 끝내 입을 열었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해맑게 웃었다.
햇살처럼 눈부시게 웃는 그들을 본 정이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그는 처음 보았다. 양림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꼬마 도련님들이 낯선 사람과 말도 하고 웃기까지 하네?’
고유진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자신의 아이들한테 하듯 두 꼬맹이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뜻밖에도 두 꼬맹이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따뜻한 게 너무 좋은데…’
정이현이 나지막하게 기침하며 다가갔다.
“고유진 씨!”
“정 대표님?”
고유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여기 왜 왔을까?’
정이현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두 꼬맹이 앞으로 걸어갔다.
“정민우, 정민섭, 누가 너희들더러 제멋대로 돌아다니라고 했어?”
정이현의 두 아들은 그림그리기와 디자인을 가장 좋아했고 또 그 방면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 품평회만 있다 하면 꼭 그들을 데리고 참석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