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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정이현의 아이들

  •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자 고유진은 약간 걱정되었다.
  • “가족들과 함께 왔어? 왜 너희들만 있어? 물가에서 놀면 위험해서 안 돼.”
  • 자신들을 걱정해주는 그녀의 행동에 놀란 두 꼬맹이는 여전히 말은 안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고유진은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상하게 친근감을 느낀 그녀는 그들과 좀 더 있고 싶었다.
  • ‘내가 오늘따라 두 아이가 그리운가 보네.’
  • 고유진은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녀는 그들의 스케치판을 가리키며 웃음을 지었다.
  • “너희들이 그린 그림을 봐도 돼? 나도 그림을 잘 그리거든.”
  • 두 꼬맹이는 서로 한 번 쳐다보고서야 스케치판을 천천히 고유진에게 내밀었다. 고유진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두 꼬맹이 옆으로 다가갔다.
  • 생동감이 있는 꽃을 본 순간 그녀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 “너무 잘 그렸다?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되겠어.”
  • 그제야 통통한 얼굴의 꼬맹이가 뿌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형은 이것보다 더 예쁜 것도 그려요. 형이 저한테 가르쳐준다고 했으니 저도 앞으로 이렇게 예쁘게 그릴 수 있을 거예요.”
  • “그래? 너희들 정말 대단하구나!”
  • 고유진은 두 꼬맹이에게 엄지를 추켜들었다.
  • “너희들은 내가 여태 본 중에 가장 재능 있는 아이들이야. 아줌마도 어렸을 때는 너희만큼은 그리지 못했거든.”
  • 고유진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림그리기에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들이 자신의 기능을 물려 받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아쉽게도 세 명 중 한 명도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 오늘 그림을 이토록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자 그녀는 이 아이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 이렇게 직설적인 칭찬을 처음 들어보는 맏이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고유진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 ‘정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구나.’
  • 고유진은 그들과 함께 돌 위에 앉아 스케치판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한편 대신 국제호텔 로얄 스위트룸에서.
  • 차가운 표정으로 염라대왕처럼 소파에 앉아 있는 정이현 때문에 방 안의 온도는 극도로 낮아졌다.
  • 양림이 초조하게 문 어귀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두 꼬마 도련님은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거야? 정씨 가문 두 어르신이 그토록 아끼시는 꼬마 도련님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 한참 근심에 쌓여 있는데 경호원이 성큼성큼 뛰어 들어왔다.
  • “대표님, 찾… 찾았어요.”
  • 정이현은 냉큼 몸을 일으켰다.
  • “앞장서!”
  • 세 사람은 다급히 정원에 왔다.
  • 연못가에 웬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수공으로 계수나무꽃을 수놓은 원피스는 슬림한 디자인으로 그녀의 볼륨감 있는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 주고 있었고, 위로 올린 긴 머리에 불필요한 장신구가 없으니 오히려 더 심플하고 대범해 보였다. 빈티지한 메이크업은 온순하고 부드러운 여성미를 물씬 풍겼다.
  •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는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선녀 같았다.
  • 그녀 옆에는 두 아이가 얌전히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화로운 그들의 모습은 석양빛 아래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 이 장면에 감동 받은 정이현은 걸음을 멈췄다.
  • ‘저 여자는… 고유진 아니야?’
  • 그 시각 고유진은 이미 그림을 다 그렸다. 그녀는 두 꼬맹이의 만화 캐릭터를 그리고 그 밑에 날짜와 자신의 이니셜인 GYJ을 적어 넣고는 웃으면서 두 꼬맹이에게 말했다.
  • “이건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야. 비록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났지만, 아줌마는 왠지 너희들이 너무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지금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기를 바란단다.”
  • 과분한 선물을 받은 두 꼬맹이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 고유진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받아. 화이팅!”
  • 두 형제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유진의 그림을 받아 들고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 그림속의 캐릭터는 그들과 너무나도 닮았다.
  • 그들은 끝내 입을 열었다.
  • “아줌마, 고맙습니다.”
  • 그리고는 해맑게 웃었다.
  • 햇살처럼 눈부시게 웃는 그들을 본 정이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그는 처음 보았다. 양림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 ‘꼬마 도련님들이 낯선 사람과 말도 하고 웃기까지 하네?’
  • 고유진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자신의 아이들한테 하듯 두 꼬맹이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 뜻밖에도 두 꼬맹이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
  •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따뜻한 게 너무 좋은데…’
  • 정이현이 나지막하게 기침하며 다가갔다.
  • “고유진 씨!”
  • “정 대표님?”
  • 고유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가 여기 왜 왔을까?’
  • 정이현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두 꼬맹이 앞으로 걸어갔다.
  • “정민우, 정민섭, 누가 너희들더러 제멋대로 돌아다니라고 했어?”
  • 정이현의 두 아들은 그림그리기와 디자인을 가장 좋아했고 또 그 방면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 품평회만 있다 하면 꼭 그들을 데리고 참석하고는 했다.
  • 그런데 그들이 그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화낼 만도 했다.
  • ‘성이 정씨야? 정이현의 아이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