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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품평회 책임자

  • 그녀가 발뺌하며 소개하려 하지 않자 고미진은 코웃음을 치며 사람들 속으로 다가가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 “제가 알기로 이건 밀레이 대가께서 얼마 전 새로 출시한 작품이에요. 이번 ‘사랑을 좇아’ 디자인 품평회에 처음으로 전시한 덕분에 저희가 제일 첫 번째로 감상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네요. 밀레이 대가께서는 워낙 보석 공예에 조예가 깊으셨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에요. 전체적인 펀칭 기법으로 조각한 펜던트의 디자인은 밀레이 대가께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요.”
  • “고미진 씨 진짜 대단해요. 이렇게 빨리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이해하다니 진짜 너무 감탄스러워요.”
  • “고미진 씨의 설명을 들으니 바로 알 것 같아요.”
  • 일부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며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 “정 대표님도 워낙 뛰어나신데 고미진 씨 역시 이토록 박식하다니 진짜 천생연분이 따로 없는데요.”
  • 주위의 칭찬에 고미진은 득의양양해졌다.
  • ‘비록 고유진한테 당하긴 했지만 지금 모든 사람의 시선은 날 향해 있어. 게다가 이건 밀레이 대가의 작품이야.’
  • 일각에서는 이번 품평회를 밀레이 대가가 주최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었다. 설령 그녀가 주최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번 품평회를 지켜볼 것이 분명했다.
  • ‘어쩌면 밀레이 대가가 이번 일로 인해 날 눈여겨볼지도 몰라.’
  • 정도 그룹 산하의 드림 주얼리에서 밀레이 대가와 협력하려고 했지만 여태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 그녀는 만약 자신이 정이현을 도와 이 협력을 추진한다면 그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분명 달라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 바로 이때 고유진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절절한 이 마음과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그대는 아시나요.”
  • 갑자기 튀어나온 그 한마디에 사람들은 순간 멍해졌다.
  • 모든 사람의 시선은 고유진한테로 향했다.
  • 정이현은 흥미로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 정민우와 정민섭도 덩달아 흠칫했다.
  • ‘아줌마도 우리처럼 이 작품에 다른 숨겨진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 세 사람은 고유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 “제가 보기에 이 펜던트의 디자인은 뼈에 사무치는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요. 이 펜던트는 여섯 개의 절단면을 가지고 있고 내부는 황금 대신 고전적인 보석을 사용해서 지난날에 대한 정을 표현한 듯해요. 전체적인 골드 컬러의 사용은 밀레이 대가의 마음속에 숨겨진 정이 황금보다 견고하다는 것을 뜻하죠. 그 정은 남녀 사이의 정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생각에는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건 그리움이에요.”
  • 고유진은 감개무량한 어투로 설명했다.
  • “진짜 그럴까요?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지는데요. 마치 밀레이 대가 마음속에 숨겨진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역시 대가는 대가네요. 이렇게 뛰어난 작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니요.”
  • “진짜 고유진 씨의 견해는 남다르네요. 이런 디자인 콘셉트는 저희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거예요.”
  • 정민우와 정민섭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아줌마 진짜 대단해요.”
  • ‘조금 전 엄마가 설명한 것도 좋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아줌마의 설명을 듣고 나니까 이 작품이 더욱 완벽해진 것 같아.’
  • 정이현의 얼굴에도 감탄의 기색이 역력했다.
  • 이 순간 고미진은 자신에게로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고유진한테로 향한 데다가 정이현조차 급격한 태도 변화를 보이자 더욱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 이때 정민우와 정민섭이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존경스러운 눈길로 고유진을 바라보았다.
  • 정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아줌마, 진짜 대단해요. 저희가 아줌마한테서 디자인에 대해 배우면 안 될까요?”
  • 정민섭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의 아빠는 비록 디자인에 대한 상식은 있었지만 일이 바빠 그들과 함께 디자인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 그들의 엄마는 두 사람에 대해 더욱 관심이 없었다.
  • 평소 디자인에 대해 함께 얘기할 사람이 없었던 그들은 고유진을 보자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고 고유진의 재능에 탄복하게 되었다.
  • 하지만 두 아이의 이러한 행동에 정이현은 더욱 의아해졌다.
  • 평소에 두 녀석은 낯가림이 심해 사람만 보면 피했었는데 고유진한테는 몇 번이나 먼저 말을 걸었고 심지어 그녀한테서 배우고 싶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두 아이를 바라보는 고유진의 눈빛도 더욱 온화해졌다.
  • 이들은 정이현과 고미진의 아이라서 당연히 거리를 두고 아예 만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느껴지는 친근함에 그녀는 기대에 찬 그들의 눈빛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 “그래...”
  •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미진은 아이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 “비록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네가 한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네가 밀레이 대가도 아니고 그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자고로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 법이야. 아무리 유명해지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는 안 되지.”
  • 고미진의 가시 돋친 말에 고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 “거짓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증명해 주겠지.”
  • 고유진은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두 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 비록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결국은 고미진의 아이들이었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고유진은 마음속의 아쉬움을 억누른 채 돌아서 자리를 떴다.
  • 정이현은 고유진의 날씬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 ‘밀레이 대가의 작품에 담긴 뜻에 대해 어떻게 이토록 확신하는 거지?’
  • 이때 조명이 어두워지며 사회자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모두 오늘 전시된 디자인 작품들을 보시고 디자이너의 재능에 감탄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디자이너분께 찬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귀빈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음은 오늘의 품평회에서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저희 주최 측 책임자께서 직접 여러분께 마지막 디자인 작품을 선보이려 합니다.”
  • 이때 스포트라이트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비추었고 무대 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가득한 드럼 소리로 바뀌었다.
  • 모두 책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정이현 역시 기대에 찬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그는 밀레이 대가와 협력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하려 했지만, 상대방이 너무나 신비로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 이번 품평회에 그녀의 최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그는 혹시나 하고 온 것이었다.
  • 설령 밀레이 대가가 참석하지 않더라도 품평회 책임자와 반드시 연관이 있을 것이고 그 책임자를 중심으로 알아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사이 무대 뒤의 드럼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고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그럼 ‘사랑을 좇아’ 디자인 품평회의 책임자를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위를 비추었다.
  • 모두의 시선도 무대 위로 향했다.
  • 환하고도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는 고유진한테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