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고유진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피었고 한 쌍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에서 내뿜어지는 분위기는 너무나 도도하고 고결했다. 마치 속세에 물들지 않은 연꽃처럼 순수한 그 모습은 마치 그림 한 장을 펼쳐놓은 듯했다.
모두의 경탄스러운 시선 속에서 고유진은 천천히 무대로 올라갔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품평회의 책임자 고유진이라고 합니다.”
무대 아래에 있던 고미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번 행사의 책임자가 고유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씨 가문에서 내쫓긴 주제에 어떻게 이번 디자인 품평회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거지? 심지어 밀레이 대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정이현은 순간 멍해 있다가 차츰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유진이 책임자였다니...’
정민우와 정민섭은 더욱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고유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 생각이 맞았어. 아줌마는 정말 대단해.’
무대 위의 고유진은 주위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행사의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저의 최신작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이 작품을...”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립니다.”
‘사랑하는 사람?’
그 말에 정이현은 순간 멈칫했다.
‘설마 남자친구가 있는 건가?’
고미진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들을 위해서 만든 거였구나.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한다니 그 사랑은 영원히 찾지 못하게 할 거야.’
이때 스태프가 최신 디자인 작품을 들고 무대에 올라와 사람들 앞에 선보였다. 무대 뒤의 대형 스크린에도 이 작품을 띄웠다.
그 작품을 보자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작품의 디자인은 밀레이 대가의 작품과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장내의 사람들은 고유진이 주최 측 책임자인 동시에 밀레이 대가와 견줄 수 있는 디자이너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디자인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입을 열었다.
“이 몇 년 동안 이토록 감정 색채가 짙은 작품이 나온 적이 없었는데 진짜 믿어지지 않네요.”
재계의 오너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언컨대 이 작품이 발매된다면 반드시 새로운 보석 판매 기록을 달성할 거예요.”
고유진의 이 디자인은 펜던트나 액세서리 등 여러 주얼리 제품에 활용할 수 있었다. 크기도 조절할 수 있어 실용성 또한 아주 뛰어났다.
그녀가 오늘 선보인 것인 펜던트를 위주로 한 것이었다.
담황색 토파즈로 만들어진 펜던트의 본체에는 은은한 계수나무꽃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월궁항아와 옥토끼의 무늬도 있었다.
작품이 전시되는 도중에 스크린에 띄워진 영상은 자연 만물의 변화로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감정을 한편의 단편 영화처럼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우수에 가득 찬 장내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잔잔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이러한 변화에 정민우와 정민섭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줌마의 재능은 진짜 대단해. 만약 우리가 디자인했다면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정이현 역시 실눈을 뜬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조명이 차츰 어두워지고 스크린에는 몽롱한 달그림자만 남겨져 있었다. 그 위에는 하늘하늘한 여자의 그림자가 비쳐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갑자기 고유진의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저격했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공간에서도 저 달빛은 영원하기를...”
말이 끝나자 장내의 모든 조명이 켜졌다.
무대 위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아름다웠던 조금 전의 화면은 마치 꿈인 듯했다.
장내의 사람들은 조금 전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디자인 품평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진짜 너무 몽환적이에요.”
“이 디자인을 보고나니까 왠지 모르게 가족이 그리워지는데요.”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고유진의 재능에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번 디자인 품평회는 사람들 마음속에 수많은 사색과 여운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집에서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세 쌍둥이도 엄마의 감성에 젖어 들어 오직 한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반드시 엄마를 도와 동생들을 찾고야 말 거야!’
정민우와 정민섭은 모두가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 또다시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들은 고유진을 쫓아 호텔 정문까지 따라왔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줌마!”
“너희들 어떻게 왔어?”
고유진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바로 발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있는 형제들을 바라보며 애써 슬픔을 감춘 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정민우가 입을 열었다.
“아줌마의 디자인이 너무 좋아서 찾아왔어요. 아줌마 지금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 거예요? 아줌마가 이토록 뛰어나니까 반드시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고유진은 너무나 감동되었다.
“고마워.”
그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손을 뻗어 두 형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정민우와 정민섭은 그녀의 친절한 손길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유진을 바라보았다.
정민섭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가 아줌마한테 드리는 거예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마치자 그는 손에 든 그림을 고유진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조금 전 무대 위에 서 있던 고유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아름답고도 날씬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고유진은 이들 형제가 이토록 마음이 깊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생동감 있게 그린 걸 보면 재능이 타고난 듯했다.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너희들 진짜 너무 대단해. 고마워. 아줌마도 너희들의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들어. 너희들의 선물을 보니까 아줌마도 이젠 슬프지 않아. 너희들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거야. 아줌마 이만 가볼게. 너희들도 어서 들어가. 기회가 되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아빠가 너희들을 찾지 못하고 또 화내실 거야.”
두 형제는 너무나 아쉬웠다. 그들은 고유진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편하고 친근했다. 자신의 엄마 앞에서처럼 조심스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나와 있으면 아빠가 화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들은 고유진을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줌마 잘 가요. 아줌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
“아줌마도 너희들이 보고 싶을 거야.”
고유진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림을 챙기고는 자리를 떴다.
...
정이현은 제자리에 앉은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여자한테 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는 거지?’
그는 제대로 파헤쳐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그는 옆에 있던 양림에게 지시했다.
“고유진을 중심으로 밀레이 대가에 대해 알아봐.”
“네, 대표님.”
“그리고 고유진한테 연락해서 내일 내가 직접 스타 그룹에 가서 협력 계약서를 체결할 거라고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