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의구심을 품을수록 그의 이름 세 글자는 더욱 선명해져 그녀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클릭한 유하빈은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조용히 글을 읽어내려갔다.
“언니, 이거 도영 오빠 맞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도영 오빠가 왜 이 여자랑 결혼해?”
머리가 윙윙거렸다.
내일 오후 네시에 진행되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라니.
이 기가 막힌 상황에도 그녀에게는 충격을 받을 시간조차 없었다.
진도영과 만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야만 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유하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티켓을 구매했다.
여전히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유민아에게 휴대폰을 돌려주고 그녀는 병원을 뛰쳐나와 택시를 타고 뉴욕 공항으로 향했다……
**
이튿날 오후 세시, 팰리스 호텔.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을 뽑을 수 있진 않을까, 부푼 기대를 안고 벌떼처럼 모여든 수많은 취재진들 사이로 길게 늘어뜨린 화려한 레드 카펫이 눈에 띄었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여느 재벌가들의 결혼식과는 달리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온 세상에 소문을 내지 못해 안달인 듯했다.
“초대장 있으십니까?”
그리고 여기, 한 손은 캐리어를 끌고 한 손에는 의사 가운을 든 채 땀을 뚝뚝 흘리며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 여자가 간절한 눈빛으로 호텔 경호원을 바라보고 있다.
“초대장은 없는데요. 하지만 진도영…… 신랑분과 친구 사이입니다. 들어가게 해주실래요?”
“초대장 없으시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경호원은 마치 미친 여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유하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단호하게 막아섰다.
답답함에 발만 동동 구르던 유하빈 앞에 문득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지더니 이어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순간 심장이 덜컥 가라앉았다.
16년 동안, 매번 그날이 다가올 때면 악몽처럼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지금 또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엔 허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다.
“진도영……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몸의 떨림을 억지로 감추기 위해 주먹을 꾹 말아 쥔 유하빈은 잇새로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함부로 우리 진 서방 이름을 입에 올려? 우리 주연이 아빠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자까지 탐내는 거니?”
표독스러운 여인의 눈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허, 걔가 그래요? 내가 빼앗았다고?”
유하빈은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저기요, 아줌마. 온주연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남의 남자친구까지 탐내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기억 속 주눅이 든 나약한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두 눈을 번뜩이며 되레 쏘아붙이는 유하빈을 바라보며 여인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화만 더욱 치밀어 올랐고 바락바락 대드는 그 모습에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듯했다.
“남자친구? 어디서 헛소리야? 너도 네 어미처럼 정신병원에 갇히고 싶어서 안달 났어? 애초에 네 거는 어디에도 없었어. 제 어미를 닮아 몸이나 함부로 굴리고 다니는 주제에 감히 우리 주연이에게 막말하는 거니? 너야말로 어릴 때부터 우리 주연이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거 아니야?”
사정없이 쏘아대는 화살에 유하빈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몸을 함부로 굴린다니, 정신병원에 갇힌다니, 정확한 설명 하나 없었지만 유하빈은 여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하빈에게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여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주연이 임신 1개월이란다. 당연히 진 서방 애고.”
……뭐?
여인의 말에 유하빈은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제 귀를 의심했다.
“그……그게 무슨……”
“무슨 말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사악하게 웃는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유하빈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임신 1개월이라……
한 달이면, 정확히 진도영과 연락이 끊겼던 그날 밤이었다.
그 말인즉, 그녀가 숱한 치욕을 겪으며 애타게 그를 찾던 그날 밤, 그는 온주연과 함께 있었단 말인가?
더 이상 이성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밀려오는 배신감에 넋을 놓은 채 멍하니 호텔 안을 바라보고 있던 유하빈은 문득 “신랑 진도영, 신부 온주연”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열 글자는 유독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후벼팠다.
“이 정신 나간 여자 좀 쫓아내.”
이어 여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유하빈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려던 순간,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 팔을 잡고 있는 손을 밀어냈다.
“이거 놔, 혼자 갈 테니까.”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차가운 목소리와 온기 하나 없이 마치 산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차디찬 손에 흠칫 놀란 경호원들은 저도 모르게 힘을 풀었다.
“너 지금 뭐……”
“남의 걸 탐내는 그 못된 습관은 역시나 유전인가 보네요. 이런 걸 도벽이라고 하나?”
흥분한 여인의 말을 가볍게 끊어버린 유하빈은 서릿발같은 눈빛으로 여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그대로 뒤돌아 떠나버렸다.
“허, 저게 진짜 그년이라고?”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빨갛게 칠한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