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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 유현아는 병원에 남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 열 시가 되자 유진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받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 시끄럽게 울리는 진동음 때문에 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전화를 받았다.
  • 유진화의 냉랭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아영이가 그러는데 너 오전에 집에서 나왔다며? 지금쯤 병원에 있는 거 다 알아. 내가 왜 치료비 지원을 끊었는지 너도 이제 알았겠지?”
  • 유현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 ‘내가 시킨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않아서겠죠.’
  • 이어서 유진화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너 최씨 가문에 돌아가기 싫어졌지? 하지만 유현아, 넌 결국 돌아가야 할 거야! 너 안 돌아가면 모든 병원에 연락해서 네 외할머니 치료를 거부하게 할 거야.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너도 알지? 물론, 믿고 싶지 않으면 어디 한번 해봐. 네 외할머니가 그러다가 목숨을 잃으면 그건 네 탓인 거야.”
  • 유현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 그녀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순간, 그녀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속에 있는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목적을 달성한 유진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얌전히 말 듣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그 대가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 전화를 끊은 뒤, 유현아는 병상에 누워 있는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조금만 능력이 있었어도 이대로 부친의 꼭두각시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테고 외할머니의 병세도 지금처럼 심해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 밤 열한 시, 유현아는 긴 한숨을 내쉬며 택시를 잡아 최씨 가문에 돌아왔다.
  • 고용인들도 전부 쉬러 간 시간이었다.
  • 온종일 끼니를 거른 유현아는 살금살금 주방으로 향했다.
  • 하지만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벽쪽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 남자도 그녀를 발견한 것 같았다.
  • ‘최지한이 왜 여기 있지? 유아영은?’
  • “누구 찾아?”
  •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자 최지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 유현아는 펜과 종이를 꺼내 답을 적었다.
  • [동생이요.]
  • 최지한은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여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 “유아영이 당신 자리를 대신할까 봐 두렵지도 않아?”
  • 유현아는 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 그는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 “유아영은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어. 앞으로 입조심 해야 할 거야.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할지 당신도 잘 알겠지.”
  • ‘유아영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고 나한테 경고하는 건가?’
  • 유현아는 낮에 호시탐탐 최지한을 바라보던 유아영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여태 살면서 유아영이 그녀를 괴롭힌 적은 있어도 그녀가 유아영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할 수만 있다면 유현아는 유아영과 왕래를 끊고 살고 싶었다.
  • 하지만 세상일 그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 다음 날 오전, 유아영이 유현아의 방 문을 노크했다.
  • “언니, 아줌마가 그러는데 정원에 연못도 있고 그렇게 경치가 좋대. 나랑 같이 구경하러 가면 안 돼?”
  • 유아영은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 유현아는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씨 아줌마를 비롯한 고용인들이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 만약 그녀가 거절하면 또 무슨 얘기를 들을지 알 수 없었다.
  • 유현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두 사람은 함께 저택 정원을 걸었다. 유현아는 넘치는 최씨 가문의 재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 이 집 어르신은 이미 10년 전에 회사에서 은퇴하고 본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그 뒤로 최지한이 경영권을 떠맡게 되었는데 어르신이 건재하실 때보다 그룹 규모를 더 크게 확장했다고 들었다.
  • 업계에서 최지한을 따를 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아부하려고 줄을 선 사람도 무수히 많았다.
  • 인맥, 재력 모두 풍부한 최씨 가문은 정원의 연못까지도 워터파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크게 지었다.
  • 연못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유현아와 유아영은 다리 위에서 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감상했다.
  • 한참이 지나도록 유아영은 풍경만 감상할 뿐,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그들이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던 순간, 유아영은 갑자기 앞서가는 유현아의 등을 힘껏 밀쳤다.
  • 유현아가 중심을 잡고 뒤돌아서던 순간,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유아영이 연못에 빠졌다.
  •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 유현아는 두 눈을 의심했다.
  • 유아영의 연극은 의도가 너무 선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가문에 CCTV 하나 설치하지 않았을까? CCTV를 돌려보면 모든 게 들통날 일이었다.
  • 똑똑한 유아영이 정말 이 점을 간과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