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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인심 좋은 의사

  • 순간 당황한 유현아는 다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고용인들은 그녀를 막아서려 했지만 소여홍이 그들을 제지했다.
  • 소여홍은 유현아가 유아영과 최지한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했다.
  • “내버려 둬. 나가면 좋지 뭘!”
  • 유현아는 급히 택시를 잡고 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 다행인 건, 외할머니는 이미 고비를 넘긴 뒤였다. 새로 온 외과 의사가 외할머니의 수술을 담당했다고 했다.
  • 백발의 노인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미약한 숨소리가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유현아는 병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떨구었다.
  • 부친에게 강요당해 억지로 최씨 가문에 시집왔을 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소여홍이 온갖 시비를 걸며 그녀를 괴롭힐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고용인들조차 그녀를 무시할 때도 무감각하던 그녀였다.
  •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외할머니였다.
  • 만약 유일한 버팀목인 외할머니마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유현아는 철저히 무너질 것 같았다.
  •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젊고 준수한 남자가 의사 가운을 입고 문밖에 서 있었다.
  • “안녕하세요. 환자분 주치의 성시경이라고 합니다. 환자분 가족 되시죠? 환자분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유현아는 외할머니를 살린 이 의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을 닦고 미소 띤 얼굴로 손짓으로 감사 인사를 표했다.
  • 성시경은 여자의 예쁜 미소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눈물을 머금은 맑은 눈동자는 비가 온 뒤의 무지개를 보는 것처럼 오색 찬연하고 예뻤다.
  • “쿨럭.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성시경은 수화를 전혀 몰랐지만 그녀가 전한 의미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환자분 상태는 잠시 안정됐지만, 결국 더 큰 수술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자주 환자분 귓가에 대고 말을 걸어주세요. 환자분도 위로를 느끼실 겁니다. 긴장을 풀어야 수술 경과도 좋아요.”
  • 유현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상대가 수화를 모른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녀는 조용히 그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다가 가끔 예의 바른 미소를 보여주었다.
  • 성시경은 이 예쁜 여자한테 꽤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주의사항들을 얘기해준 뒤, 발길을 돌렸다.
  • 이때, 유현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
  • 그녀는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위에 이 은혜는 꼭 보답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연락처와 이름을 적은 차용증을 그에게 건넸다.
  • 성시경은 그녀를 닮은 예쁜 글씨체를 보고는 다시 그녀의 도자기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 “이러실 필요 없어요.”
  • 노인과 여자가 지금 어려운 상황인 걸 알기에 돈을 되돌려 받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 하지만 유현아는 한사코 차용증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 성시경은 더 거절하기도 뭐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서 챙겼다.
  • 이 여자를 향한 호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 그가 떠난 뒤, 그제야 유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외할머니는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 연세가 있으셔서 아무도 그녀의 수술을 도맡으려 하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그마저 유지하려면 수많은 돈이 필요했다.
  • 간호사는 유씨 가문에서 치료비를 끊은지 며칠 되었다고 했다.
  • 아무도 치료비를 지불하지 않으니 당연히 치료도 중단되었다.
  • 그래서 위기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 성시경의 도움이 없었으면 외할머니는 아마 오늘을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 이로써 유진화가 얼마나 냉혹한 인간인지 증명이 되었다.
  • 서류를 훔치려 한 일로 그녀는 최지한의 미움을 샀을뿐더러 부친마저 치료비 지원을 끊어 버렸다.
  • 치료비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그녀가 다시 최씨 가문에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