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아는 피곤한 몸을 끌고 욕실에 가서 간단한 샤워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파에 미모의 중년 여인이 팔짱을 끼고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부친이 줬던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바로 최지한의 이모 소여홍이었다.
듣는 바에 의하면 최지한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소여홍의 손에서 컸다고 했다. 나중에 최씨 어르신이 그들을 가문으로 불렀고 최지한은 탁월한 실력으로 자신만의 상업제국을 세웠다. 그 뒤로 그는 소여홍을 어머니처럼 모시며 극진히 보살폈다.
소여홍은 그녀를 냉랭하게 아래위로 훑더니 말했다.
“유진화 이 늙은 여우가 약속을 어겼네. 우리가 원하는 아이가 유아영인 걸 알면서 감히 너를 보내? 우리 최씨 가문이 무슨 쓰레기 수거함인 줄 알았나 봐? 지한이가 왜 너를 안 돌려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이렇게 됐으니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시집왔다고 신분 상승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우리 가문은 바보가 아니야. 됐어. 가서 밥이나 해. 시집을 왔으면 아내의 역할은 해야지!”
최씨 가문에 고용인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소여홍은 새색시인 유현아에게 아침밥을 하라고 명령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한 유현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소여홍이 일부러 시비를 거는 걸 알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권력도, 배경도 없는 여자는 이 사람들에게 반항할 능력이 없으니 조용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유현아는 주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밥상 한번 차리는 거,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양보했다고 해서 곱게 넘어갈 소여홍이 아니었다. 그녀는 유현아가 만만하다고 생각하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역시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네!”
유현아는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가던 길을 갔다.
잠시 후, 최지한이 회사에서 돌아오자 소여홍은 웃으며 그에게 식사를 권했다. 고개를 돌린 남자의 눈에 앞치마를 하고 주방에서 바쁘게 돌아치는 유현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소여홍이 웃으며 말했다.
“쟤가 기어코 자기가 밥을 하겠다지 뭐니. 솜씨 좀 보여주려나 봐.”
최지한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같이 지낸 유현아에게 집안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그녀는 꽤 푸짐한 밥상을 차렸다.
고용인은 부지런하고 현숙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를 존중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런 일은 하인이나 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윗사람은 당연히 명령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밥 먹는 동안, 사람들은 그녀를 없는 사람 대하듯이 무시했고 모든 정성을 최지한에게 쏟았다. 이 자리가 불편해진 유현아는 대충 몇 숟가락 뜨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현아가 나간 뒤, 소여홍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예의도 없는 것. 벙어리라고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가도 되는 거야?”
최지한은 고개도 들지 않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가 말이 없자 소여홍은 눈을 굴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한아, 유씨 가문 너무 하는 거 아니야? 감히 벙어리를 우리 집에 들이밀어? 이건 우릴 무시하는 행동이잖아? 그러면서 너한테 도움을 요청했다고? 꿈 깨라고 해!”
소여홍은 최지한의 상업적인 수단과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씨 가문이 그에게서 별로 이득을 취하지 못할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벙어리를 신부로 맞았다고 하면 다른 가문의 귀부인들이 그들을 무시할 게 뻔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최지한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소여홍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프랑스 유학 갔던 시경이가 몇 년 만에 드디어 집에 돌아오게 됐는데 벙어리한테 형수님이라고 부르게 할 수는 없잖아? 소문이 나면 우리 가문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어? 며칠 지켜보다가 그냥 내쫓아. 최씨 가문 안주인 자리는 내가 다시 괜찮은 애로 물색해 볼게. 응?”
한참 말이 없던 최지한이 드디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모는 신경 쓰지 마세요.”
차가운 말투에 소여홍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남자가 자리를 뜬 뒤, 뒤에 있던 오씨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그녀를 위로했다.
“사모님이 힘드실까 봐 그러셨을 거예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소여홍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 납치범 손에서 구조된 뒤로 지한이는 성격이 몰라보게 바뀌었어. 어릴 때처럼 나한테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나를 최씨 가문에 불러들여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했지만, 지한이 속으로 여전히 날 원망하는 거 알아. 내가 조금만 신경 썼어도 지한이가 납치되고 그 고생을 하는 일은 없었겠지.”
오씨 아주머니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어떤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최지한은 업계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강자였지만 성격도 점점 더 차갑고 냉철하게 변했다. 그러니 소여홍이 신경 쓰는 것도 이해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