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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만일의 경우

  • 순간 눈앞이 새카매지더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쓰러졌고 남자가 그녀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 남자는 모든 걸 꿰뚫어 볼 듯이 날카로운 눈매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 “왜 하필이면 시경이야? 당신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게 목적이야? 아니면 내 체면을 짓밟고 싶어서야? 그것도 아니면 이모가 미워서 일부러 보복하는 거야?”
  • 유현아는 양손이 남자에게 꽉 잡혀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 그녀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 남자, 지금 뭐 하려는 거지!
  • 최지한은 엄지로 그녀의 눈썹을 쓰다듬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 “이렇게 예쁜 눈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불순한 생각을 하는 건지. 그렇게 더러운 방법까지 쓰면서! 유씨 가문에 순수하고 깨끗한 여자가 어디 있어?”
  • 그의 말투에서 짙은 증오가 느껴졌다.
  • ‘증오?’
  • 유현아는 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녀는 그를 뿌리치려고 발버둥 치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 [이거 놔요… 이거 놔요…]
  • 하지만 남자의 힘이 너무 세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최씨 가문에 시집온 뒤로 당했던 수많은 괄시와 괴롭힘, 게다가 있지도 않은 오명까지 뒤집어썼다는 서러움이 북받쳤다.
  • 그렇게 발버둥 치다가 병원 진단서가 그녀의 품에서 바닥에 툭 떨어졌다. 외할머니의 진단서였다.
  • 그것을 주워 확인한 최지한은 살짝 놀란 듯, 표정이 굳었다.
  • 그녀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그는 고개를 숙여 눈물범벅이 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 그녀가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여자는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눈물만 떨구었다.
  • 어쩐지 분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앞으로 시경이랑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나한테 보이는 날엔 이 방을 못 나갈 줄 알아.”
  • 그 말을 들은 유현아는 온몸을 떨었다.
  • 그가 나간 뒤, 유현아는 떨리는 손으로 진단서를 주워들었다.
  •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흐느꼈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 집에서 멀리 떠나 최지한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 다음 날 아침.
  • 유현아는 울어서 풍풍 부은 두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 어젯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녀는 일부러 최지한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매번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면 그녀는 그를 못 본 척 지나쳤다.
  • 심지어 그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가 밖에 나간 뒤에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소여홍은 속 시원히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을 앓는 성시경의 모습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유현아의 방을 찾아서 차갑게 경고했다.
  • “네가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앞으로 내 아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알겠어?!”
  • 유현아는 그녀와 다툴 마음이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이고 발길을 돌렸다.
  • 소여홍이 다시 큰소리로 고함쳤다.
  • “거기 안 서?!”
  • 유현아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채, 소여홍의 비난을 들었다.
  • “감히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면 그땐 죽기보다 힘든 고통을 느끼게 해줄 거야.”
  • 유현아는 등을 돌리고 펜을 찾아 종이에 글을 썼다.
  • “저랑 성 선생님이 알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아무 목적도 없고요. 앞으로 그분께 다시 말 걸지 않을게요. 멀리 피할게요.”
  • 그제야 소여홍은 표정을 풀고 말했다.
  • “그 말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약속을 어길 시에는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 유현아는 펜을 챙겨 피곤한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 그녀가 자리를 뜬 뒤, 오씨 아줌마가 다가와서 말했다.
  • “사모님, 저 말을 그대로 믿으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소여홍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 “왜?”
  • 오씨 아줌마가 음침한 표정으로 답했다.
  • “도련님께서 좋아하시는 분은 아영 씨잖아요. 유현아와 이혼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유현아도 이 사실을 알고 일부러 시경 도련님한테 접근한 게 아닐까요? 시경 도련님을 이용해서 신분 상승하려고요. 그래서 오늘 한 약속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거예요.”
  • 그 말을 들으니 소여홍의 얼굴이 다시 음침하게 굳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 잠시 고민하던 오씨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시경 도련님한테 저 여자랑 왕래하지 못하게 하는 거고요. 두 번째는 아영 씨가 하루빨리 저 여자를 몰아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사고뭉치도 이 집에 계속 있을 수 없게 되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부담도 커질 것 같네요….”
  • 그 말을 듣고 한참 고민하던 소여홍은 유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