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눈앞이 새카매지더니 그녀는 어느새 소파에 쓰러졌고 남자가 그녀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남자는 모든 걸 꿰뚫어 볼 듯이 날카로운 눈매로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왜 하필이면 시경이야? 당신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게 목적이야? 아니면 내 체면을 짓밟고 싶어서야? 그것도 아니면 이모가 미워서 일부러 보복하는 거야?”
유현아는 양손이 남자에게 꽉 잡혀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 남자, 지금 뭐 하려는 거지!
최지한은 엄지로 그녀의 눈썹을 쓰다듬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렇게 예쁜 눈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불순한 생각을 하는 건지. 그렇게 더러운 방법까지 쓰면서! 유씨 가문에 순수하고 깨끗한 여자가 어디 있어?”
그의 말투에서 짙은 증오가 느껴졌다.
‘증오?’
유현아는 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뿌리치려고 발버둥 치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이거 놔요… 이거 놔요…]
하지만 남자의 힘이 너무 세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최씨 가문에 시집온 뒤로 당했던 수많은 괄시와 괴롭힘, 게다가 있지도 않은 오명까지 뒤집어썼다는 서러움이 북받쳤다.
그렇게 발버둥 치다가 병원 진단서가 그녀의 품에서 바닥에 툭 떨어졌다. 외할머니의 진단서였다.
그것을 주워 확인한 최지한은 살짝 놀란 듯,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눈물범벅이 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자는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눈물만 떨구었다.
어쩐지 분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앞으로 시경이랑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나한테 보이는 날엔 이 방을 못 나갈 줄 알아.”
그 말을 들은 유현아는 온몸을 떨었다.
그가 나간 뒤, 유현아는 떨리는 손으로 진단서를 주워들었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흐느꼈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 집에서 멀리 떠나 최지한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유현아는 울어서 풍풍 부은 두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어젯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녀는 일부러 최지한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매번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면 그녀는 그를 못 본 척 지나쳤다.
심지어 그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가 밖에 나간 뒤에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소여홍은 속 시원히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을 앓는 성시경의 모습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유현아의 방을 찾아서 차갑게 경고했다.
“네가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앞으로 내 아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알겠어?!”
유현아는 그녀와 다툴 마음이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이고 발길을 돌렸다.
소여홍이 다시 큰소리로 고함쳤다.
“거기 안 서?!”
유현아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채, 소여홍의 비난을 들었다.
“감히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면 그땐 죽기보다 힘든 고통을 느끼게 해줄 거야.”
유현아는 등을 돌리고 펜을 찾아 종이에 글을 썼다.
“저랑 성 선생님이 알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아무 목적도 없고요. 앞으로 그분께 다시 말 걸지 않을게요. 멀리 피할게요.”
그제야 소여홍은 표정을 풀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약속을 어길 시에는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유현아는 펜을 챙겨 피곤한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자리를 뜬 뒤, 오씨 아줌마가 다가와서 말했다.
“사모님, 저 말을 그대로 믿으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소여홍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왜?”
오씨 아줌마가 음침한 표정으로 답했다.
“도련님께서 좋아하시는 분은 아영 씨잖아요. 유현아와 이혼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해요. 유현아도 이 사실을 알고 일부러 시경 도련님한테 접근한 게 아닐까요? 시경 도련님을 이용해서 신분 상승하려고요. 그래서 오늘 한 약속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소여홍의 얼굴이 다시 음침하게 굳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고민하던 오씨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시경 도련님한테 저 여자랑 왕래하지 못하게 하는 거고요. 두 번째는 아영 씨가 하루빨리 저 여자를 몰아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사고뭉치도 이 집에 계속 있을 수 없게 되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부담도 커질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