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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환영받지 못하는 신부

  • 최지한이 돌아온 뒤, 소여홍은 낮에 있었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물론,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 남자는 담담한 시선으로 구석에 있는 유현아를 힐끗 볼 뿐,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았다.
  • 유현아도 그에 관해 실망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 반면, 유아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최지한의 태도로 보아 유현아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 유아영은 미소를 머금고 다가가서 미리 준비한 커피를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 “오빠, 커피 드세요. 온종일 일하느라 힘들었죠? 시원하게 목 좀 축여요.”
  •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최지한은 냉랭하게 거절했다.
  • “필요 없어.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집에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어?”
  • 유아영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 그녀는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 아양을 떨었다.
  • “지한 오빠, 저 오빠한테서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 그래야 앞으로 아빠를 도와 회사를 경영하죠. 네?”
  •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애교를 부리는데 거절할 남자가 얼마나 될까?
  • 하지만 최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대꾸했다.
  • “오늘 안 가면 앞으로 다시 이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될 거야.”
  • 그의 냉랭한 눈빛과 흉터가 겹치자 더 험악한 인상을 풍겼다.
  • 유아영은 멈칫하다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알았어요. 우리 아빠가 걱정하실까 봐 그러는 거죠? 역시 지한 오빠는 따뜻한 사람이세요. 저 이해해요. 그러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 저택을 나서자 그녀의 입가에 걸렸던 사랑스러운 미소도 사라지고 음침한 표정만 남았다.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대문을 쏘아보며 결심을 굳혔다.
  • 유아영이 떠난 뒤, 유현아는 따뜻한 차 한잔을 내왔다.
  • 남자는 매일 퇴근하면 차 한잔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유아영이 냉커피를 내밀었을 때 거절했던 것이다.
  • 유현아는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남자의 음침한 시선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 “당신은 왜 아직도 여기 있어?”
  • 유현아는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모아 목과 어깨 사이에 가져가며 잠자는 포즈를 취했다.
  • [주무시러 안 가요?]
  • 그냥 걱정해서 물은 건데, 남자는 큰 오해를 한 것 같았다.
  • 최지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나랑 자고 싶다고?”
  • 유현아는 멈칫하며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 그는 성큼성큼 그녀의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
  • “그게 아니라면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 유현아는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다가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두 사람 다 눈치채지 못했다.
  • 성시경의 눈빛에 충격이 스치고 지나갔다.
  • 오랜만에 만난 형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찾아왔는데 이런 장면을 목격할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 ‘형은 형수를 아끼지 않는구나.’
  • 이런 생각이 들자 아까 들었던 의문이 풀렸다. 그래서 가정부인 오씨 아줌마까지 유현아를 무지한 것이었다.
  • 노인의 담당 간호사 말에 의하면, 유현아의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치료비 지원이 끊겼다.
  • 최지한이 그녀의 자금줄을 끊어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아의 그래서 항상 고민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낮에 그는 오씨 아줌마의 말투도 똑똑히 들었고 유현아를 향한 소여홍의 태도도 똑똑히 보았다.
  • 이제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 남편의 사랑도 못받는 말도 못 하는 벙어리가 최씨 가문에서 얼마나 곤란한 입지에 처해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 막막함을 느꼈을 것이다.
  • 게다가 상대는 나약하고 힘없는 여자였다. 그러니 비싼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 오늘까지 두 번밖에 만난 적 없는 여자였지만 성시경은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 ‘내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겠어….’
  • 잠에서 깬 유현아는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무시당하고 괴롭힘당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청소하다가 최지한에게 제지당한 뒤로 소여홍도 그녀에게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 뭇 고용인들의 아니꼬운 시선 속에서 식사를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성시경이 그녀를 불렀다.
  • “유현아 씨.”
  • 성시경은 그녀를 형수라고 부르는 대신, 이름으로 불렀다. 유현아도 이러한 호칭이 덜 어색했다.
  •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성시경이 입을 열었다.
  • “원장님한테 연락을 받았는데 할머니 깨어나셨대요. 마침 재검사를 진행할까 하는데 오늘 나랑 병원에 같이 가요.”
  • 유현아는 외할머니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에 들뜬 표정을 짓다가 이내 주저하며 수화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 [그래도 돼요?]
  • 성시경은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기에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 “괜찮아요.”
  • 결국 외할머니를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