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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더 아프게해도 괜찮아

  •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진태훈 앞에서 고수연이라는 세 글자는 금기어였다.
  • 그러나 그는 여전히 참지 못하고 품에 안고 있던 진 씨 가문의 장손을 바로 옆에 있던 진태훈에게 넘겼다.
  • “죄송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제 친구랑 너무 닮아서 착각했어요. 오해는 하지 마시고 제 이름은 유해성이라고 해요. 이건 제 아들이 아니고 저는 억 소리 나는 월급에 아직 싱글이에요. 우리 친구 할래요?”
  •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엄마의 매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걸 고시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 이 아저씨는 좀 멍청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심하고 자상해 보여 나쁘진 않다.
  • 비록 외국 아저씨들과 비교도 안 되지만 그는 엄마만 좋다면 언제든지 지지해 줄 것이다.
  • 고시윤은 엄마에게 눈을 찡긋거리며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 한편 제대로 무시당한 진태훈은 안색이 더 나빠졌다. 그의 차갑고 매서운 눈빛은 간땡이가 제대로 부은 유해성을 노려보았다.
  • “유해성, 너 죽고 싶어?”
  • 그의 품에 안긴 고시윤은 온몸이 음침한 기운에 싸여 있는 것만 같았다.
  • 고시윤은 숨죽인 채 가만히 있었다.
  • “10초 안에 바로 따라 나 와. 안 그러면 진 씨 가문에서 쫓겨날 줄 알아.”
  • 억 소리 나는 월급을 받는다고?
  • 그는 자신의 기분을 더럽히는 자는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바로 버리는 성격이었다.
  • 결국 유해성은 협박을 못 이기고 따라나섰다.
  • 목숨은 내놓더라도 쫓겨나기는 싫었다.
  • 하지만 그는 카톡을 추가했으니 속으로 뿌듯했을 것이다.
  • 고수연은 두 사람을 보내고 바로 병실로 들어갔다.
  • 유해성이 진 씨 가문의 홈닥터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검사를 받으려고 병원까지 왔을까? 단지 병원을 핑계로 그녀를 찾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의심스러워 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방금 진태훈이 병원에서 시윤이를 데리고 무슨 검사를 받았는지 확인해 봐.”
  • 그 녀석의 몸 상태는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정기 검진을 받았는데 이보다 더 건강할 수는 없었다.
  • 배혁은 바로 결과를 가져왔다.
  • “시윤이가 ADHD 환자인 것 같아 검사를 받았다고해요. 시윤이가 아침에 그의 얼굴에 커다란 거북이를 그렸대요. 감히 진 대표님의 얼굴을 가지고 장난칠 사람은 시윤이밖에 없을 것 같네요.”
  • “…”
  • 듣고 있던 고수연은 어이없는 듯 이마를 만졌다.
  • “참 그리고 유전자 검사도 했어요.”
  • 그 말을 듣고 고수연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 역시 진태훈을 속이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인 건 시윤이도 그놈 친 자식이었다. 그들이 이 문제를 풀려면 애 좀 먹을 것이다.
  • 그녀는 고시윤에게 문자를 보내 몇 마디 일러두려고 했다. 그때 그녀가 머리를 들어 보니 침대에 누워있던 아이가 깨어 있었다.
  • 진승우의 얼굴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맑고 커다란 검은 눈동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고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 그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승우야 깼어? 컨디션은 좀 어때? 어디 아픈 데는 없고?”
  • 고수연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희망에 찬 눈빛을 보이는 듯했으나 바로 다시 눈을 감은 채 경계했다.
  • “승우야 괜찮아.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앞으로 아줌마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아줌마 믿어줘, 알았지…”
  • 승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다시 눈을 떴다.
  • 그는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기 시작했지만 눈물을 감추려고 애써 참았다.
  • 그는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엄마처럼 따뜻한 목소리였다.
  • 이 아줌마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이미 고은정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 고수연은 진승우의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더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지금 의사 선생님한테 가서 검사부터 받아 보고 아무런 문제 없으면 아줌마랑 같이 집에 가자.”
  • 진태훈은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젠 승우도 깨어났으니 만약 부자지간에 만나기라도 하면 진태훈은 바로 단서를 찾아낼 것이다.
  • 때문에 그녀는 지금 당장 승우를 데리고 병원을 떠나야 했다.
  • 집으로 간다는 말을 듣더니 고수연이 잡고 있던 작은 손은 심하게 떨었다.
  • 고수연에게서 진 씨 가문의 저택이 아니라 고수연의 집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 고수연은 자신의 아들이 그 집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작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고수연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바로 주원에게 연락해 정밀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 다행히 승우는 회복이 잘 됐고 상처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 고수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바로 배혁에게 이사할 집에 관련해 지시를 내렸다.
  • 고 씨 가문의 저택.
  • 고현수의 보고를 듣고 있던 고은정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눈앞의 물건을 바닥에 우르르 싹 쓸어내렸다.
  • “이것들이 감히 이 틈을 타서 한몫 챙기려는 거잖아.”
  • “아가씨, 일단 진정하시고 실검이 여기저기 터지는 걸 보면 누군가가 뒤에서 고의로 장난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상대가 워낙 치밀해서 우리가 어떻게 찾아낼 방법이 없어요. 자선 파티도 코앞인데 우리도 이대로 끝인가요?”
  • “자선 파티가 코앞인 건 나도 알아. 만약 내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돼. 이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면 영원히 벗지 못할 수도 있어.”
  • 고은정은 격분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 그녀는 반드시 파티에 참가해야 했고 그래야만 헛소문들이 사그라질 것이다.
  •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방이 실검에서 내려주는 대신 100억을 요구했다.
  • 100억은 그녀의 전부 비상금이었다.
  • 도대체 누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일까?
  • 그녀는 너무 바빠 진승우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 생각에 잠겨 있던 고은정이 갑자기 물었다.
  • “진승우 그 녀석이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그러진 않았지?”
  • “제가 아는 바로는 아직 없어요. 하지만 진 대표님이 저택의 보안을 더 강화하고 도련님의 안전에 심혈을 기울여 인력도 추가했어요. 저희가 다시 손을 쓰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지금 당장 묘원에서 발생했던 모든 일들을 깔끔히 처리해. 그 어떤 단서도 남겨서는 안돼.”
  • 그녀는 그 녀석이 어떻게 털끝 하나 안다치고 무사히 돌아왔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증거만 없으면 그 녀석이 아무리 이상한 소리를 해도 그녀는 틀린 것도 맞는다고 우길 수 있었다.
  • “네! 그리고 진 대표님은 실검에 대해 신경도 안 쓰세요. 진 대표님이 아가씨를 이렇게 신뢰하는데 이번 실검 사건만 순조롭게 해결되면 진 대표님이 아가씨를 향한 마음은 변함없을 거예요.”
  • 고은정은 이 말을 듣더니 안색이 조금 환해졌다.
  • “자선단체에 연락해서 내가 내일 직접 찾아뵙겠다고 전해 줘.”
  • 무사히 진 씨 가문에 들어가기 위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