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연은 갑자기 정색하더니 고시윤의 작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추적기의 신호를 차단시킨 후 재빨리 일련의 코드를 입력했다.
“띠!”
그녀는 추적기의 빨간 스위치가 다시 작동하고 나서야 동작을 멈췄다.
“엄마, 제가 역추적당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우리 아들 바보는 아니네, 역추적도 역추적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추적한 흔적이야. 만약 진태훈과 그의 가짜 아들, 즉 너 진승우, 앞뒤로 겹쳐 여기에 나타난 걸 알게 된다면…”
“그럼 난 들켜버릴 수밖에요! 엄마는 참 대단해요. 근데 방금 추적기를 다른 신호에 접속한 것 같은데 덩달아 누굴 해친 거예요?”
고시윤은 완전히 숭배한다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흥분해 있었다.
고수연은 들떠있는 그를 바라보더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시윤아, 기왕 돌아왔으니 내일 아침 일찍 헬기로 데려다줄게. 오늘은 일찍 자.”
고수연은 고시윤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고시윤은 그녀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는 짧은 다리를 놀려 잽싸게 피했다.
“아니, 엄마, 아직 그 나쁜 아저씨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못 봤으니 지금 가면 안 돼요! 저도 남아서 엄마와 같이 싸울 거예요.”
그는 소파 주변으로 도망치며 한편으로는 계속 흥정을 해 나갔다.
“진태훈이 다신 널 못 찾아내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 거야!”
고수연은 그를 뒤쫓느라고 이미 소파를 두 바퀴 돈 상태였지만 고시윤의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못했다.
‘이 자식 정말 잡기 힘드네!’
고시윤은 엄마가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쫓아오자 아예 도망가지 않고 와락 고수연의 허벅지를 안았다. 그러고는 입에 침이 마를세라 자신을 위해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엄마, 흥분하지 마세요. 어차피 국내에서 할 일이 많으시잖아요. 만약 그 나쁜 아저씨한테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없어졌다는 걸 들킨다면 분명 엄마를 찾아와서 힘들게 할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엄마의 사업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잖아요? 엄마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병상에 누워 있는 동생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동생이 다 나을 때까지 안 들키게끔 약속드릴게요!”
고수연은 고시윤에게 꽉 잡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를 들어 올리려고 시도해 봤다. 하지만 그가 다리에 달린 부품처럼 매달려서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시윤이 한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 진태훈은 내가 그의 아들을 따돌린 사실을 모르고 하루가 멀다 하게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데 만약 들켜버린다면 계획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겠지. 역시 힘들겠어!’
“엄마도 제가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죠?”
고시윤은 고개를 들고 고수연을 바라보았다.
‘망설이고 계신 것을 보니 내 말에 넘어가신 게 분명해!’
‘누구 아들인지 정말 똑똑하다니까.’
“좋아, 며칠 더 있지 뭐. 근데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항상 안전 조심하고. 알겠지?”
“알겠어요, 엄마의 걸림돌이 안 되도록 약속할게요! 근데, 엄마! 나쁜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저를 그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
진태훈의 차는 폭우를 가로질렀다. 폭우로 인해 시야가 잘 안 보여 이동하는 속도가 제법 느렸고 굵은 빗방울이 끊임없이 차창을 두드리며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만감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서울에 이런 폭우가 내린 지가 얼마 만이더라… 5년 전에도 오늘처럼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 날이 있었는데.’
사색에 잠긴 진태훈은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띠띠!”
조용한 차 안에 갑자기 작은 소리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순식간에 일깨워놓았다.
“대표님, 이 소리는…”
용준은 간이 콩알만 해졌고 즉시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진태훈은 대꾸도 하지 않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차 좌석을 따라 만지작거리더니 얼마 안 지나 발판 밑 틈 사이에서 동전만 한 크기의 노란색 칩을 발견했다.
계속 깜박거리는 희미한 불빛에 진태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대표님, 이건… 위치 추적기? 그럴 리가 없어요. 출발하기 전에 제가 샅샅이 검사해 봤는데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어요!”
용준은 진태훈 손에 들려있는 빨간 불빛이 깜박거리는 자그마한 물건을 보자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위치 추적기가 아니라 내 제삿날 추적기 아니야? 분명 잘 검사했는데 어디서 이런 게…’
“컴퓨터 줘 봐.”
그러나 진태훈은 화도 안 내고 컴퓨터를 열자마자 곧장 진 씨 가문의 데이터 해석 시스템에 접속했다. 시스템을 연 진태훈은 그 칩을 컴퓨터 뒷면에 부착했고 모니터에는 곧바로 일련의 수치가 갱신되었다는 정보가 떴다.
그는 3분 만에 신호의 발원지를 추적해냈다. 지도상에 표기된 위치를 보자 진태훈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고 씨 가문? 아니야, 고 씨 가문은 그럴 배짱이 없어.’
진태훈의 붉으락 푸르락하는 얼굴을 본 용준은 그의 눈치만 보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진태훈의 노여움을 샀다가는 아프리카로 발령 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차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질 즈음에 진태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대표님, 큰일 났어요. 승우 도련님이 또 사라졌어요!”
이 말을 들은 진태훈의 눈동자에 그늘이 졌다.
“어떻게 된 거야?!”
‘너무 무서워서 아니면 내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혹시 납치라도 당한 걸까?’
며칠 전에 고장 난 진 씨 가문의 보안 시스템, 그리고 이 위치 추적기를 생각하자 진태훈의 낯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휴대폰 너머의 집사는 숨도 바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모, 모르겠어요… CCTV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데도 승우 도련님이 사라졌어요!”
진태훈은 그 추적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빨리 찾아!”
한편, 고 씨 가문.
고은정이 눈 뜨고 당했으니 쉽게 넘어갈 리 없었다.
‘김혁규란 놈이 감히 내 머리 위에 기어올라 나를 욕보이게 해? 참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을 보내 김혁규를 따끔하게 혼쭐내도록 하고 지금 급선무는 800억이야.’
고은정이 800억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들은 고봉민은 어질하더니 숨이 안 쉬어졌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옆에 있던 허연화가 부축해 줘서야 겨우 소파에 앉았다.
“방금 뭐라고, 800억? 은정아,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길래 800억이 필요하단 말이냐?”
“아빠, 우선 진정하세요. 800억이 많아 보여도 이 800억만 있으면 전 세계 자선 대사의 영광을 안게 되죠. 그리고 진 씨 가문에 시집가면 그 집 안주인이 되는 데 800억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