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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덩달아 누굴 해친 거예요?

  • 고수연은 옆에 앉아 손이 가는 대로 고시윤의 곱슬머리를 정리해 줬다.
  • 곱슬머리라 그런지 촉감이 아주 좋았다.
  • “이건…”
  • “시윤아, 설마 엄마가 준 위치 추적기를 진태훈한테 붙인 거야?”
  • “헤헤, 엄마는 역시 전 세계에서 제일 총명한 엄마라니까!”
  • 고시윤은 초콜릿 우유를 마시면서 알랑거렸다.
  • “휴대폰 가져와 봐, 어서!”
  • 고수연은 갑자기 정색하더니 고시윤의 작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추적기의 신호를 차단시킨 후 재빨리 일련의 코드를 입력했다.
  • “띠!”
  • 그녀는 추적기의 빨간 스위치가 다시 작동하고 나서야 동작을 멈췄다.
  • “엄마, 제가 역추적당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 “우리 아들 바보는 아니네, 역추적도 역추적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추적한 흔적이야. 만약 진태훈과 그의 가짜 아들, 즉 너 진승우, 앞뒤로 겹쳐 여기에 나타난 걸 알게 된다면…”
  • “그럼 난 들켜버릴 수밖에요! 엄마는 참 대단해요. 근데 방금 추적기를 다른 신호에 접속한 것 같은데 덩달아 누굴 해친 거예요?”
  • 고시윤은 완전히 숭배한다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흥분해 있었다.
  • 고수연은 들떠있는 그를 바라보더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 “시윤아, 기왕 돌아왔으니 내일 아침 일찍 헬기로 데려다줄게. 오늘은 일찍 자.”
  • 고수연은 고시윤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 고시윤은 그녀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는 짧은 다리를 놀려 잽싸게 피했다.
  • “아니, 엄마, 아직 그 나쁜 아저씨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못 봤으니 지금 가면 안 돼요! 저도 남아서 엄마와 같이 싸울 거예요.”
  • 그는 소파 주변으로 도망치며 한편으로는 계속 흥정을 해 나갔다.
  • “진태훈이 다신 널 못 찾아내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 거야!”
  • 고수연은 그를 뒤쫓느라고 이미 소파를 두 바퀴 돈 상태였지만 고시윤의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못했다.
  • ‘이 자식 정말 잡기 힘드네!’
  • 고시윤은 엄마가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쫓아오자 아예 도망가지 않고 와락 고수연의 허벅지를 안았다. 그러고는 입에 침이 마를세라 자신을 위해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 “엄마, 흥분하지 마세요. 어차피 국내에서 할 일이 많으시잖아요. 만약 그 나쁜 아저씨한테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없어졌다는 걸 들킨다면 분명 엄마를 찾아와서 힘들게 할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엄마의 사업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잖아요? 엄마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병상에 누워 있는 동생도 생각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동생이 다 나을 때까지 안 들키게끔 약속드릴게요!”
  • 고수연은 고시윤에게 꽉 잡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를 들어 올리려고 시도해 봤다. 하지만 그가 다리에 달린 부품처럼 매달려서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 게다가 고시윤이 한 말도 일리가 있었다.
  • ‘지금 진태훈은 내가 그의 아들을 따돌린 사실을 모르고 하루가 멀다 하게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데 만약 들켜버린다면 계획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겠지. 역시 힘들겠어!’
  • “엄마도 제가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죠?”
  • 고시윤은 고개를 들고 고수연을 바라보았다.
  • ‘망설이고 계신 것을 보니 내 말에 넘어가신 게 분명해!’
  • ‘누구 아들인지 정말 똑똑하다니까.’
  • “좋아, 며칠 더 있지 뭐. 근데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항상 안전 조심하고. 알겠지?”
  • “알겠어요, 엄마의 걸림돌이 안 되도록 약속할게요! 근데, 엄마! 나쁜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저를 그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
  • 진태훈의 차는 폭우를 가로질렀다. 폭우로 인해 시야가 잘 안 보여 이동하는 속도가 제법 느렸고 굵은 빗방울이 끊임없이 차창을 두드리며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만감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 ‘서울에 이런 폭우가 내린 지가 얼마 만이더라… 5년 전에도 오늘처럼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 날이 있었는데.’
  • 사색에 잠긴 진태훈은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 “띠띠!”
  • 조용한 차 안에 갑자기 작은 소리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순식간에 일깨워놓았다.
  • “대표님, 이 소리는…”
  • 용준은 간이 콩알만 해졌고 즉시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 진태훈은 대꾸도 하지 않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차 좌석을 따라 만지작거리더니 얼마 안 지나 발판 밑 틈 사이에서 동전만 한 크기의 노란색 칩을 발견했다.
  • 계속 깜박거리는 희미한 불빛에 진태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 “대표님, 이건… 위치 추적기? 그럴 리가 없어요. 출발하기 전에 제가 샅샅이 검사해 봤는데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어요!”
  • 용준은 진태훈 손에 들려있는 빨간 불빛이 깜박거리는 자그마한 물건을 보자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 ‘위치 추적기가 아니라 내 제삿날 추적기 아니야? 분명 잘 검사했는데 어디서 이런 게…’
  • “컴퓨터 줘 봐.”
  • 그러나 진태훈은 화도 안 내고 컴퓨터를 열자마자 곧장 진 씨 가문의 데이터 해석 시스템에 접속했다. 시스템을 연 진태훈은 그 칩을 컴퓨터 뒷면에 부착했고 모니터에는 곧바로 일련의 수치가 갱신되었다는 정보가 떴다.
  • 그는 3분 만에 신호의 발원지를 추적해냈다. 지도상에 표기된 위치를 보자 진태훈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고 씨 가문? 아니야, 고 씨 가문은 그럴 배짱이 없어.’
  • 진태훈의 붉으락 푸르락하는 얼굴을 본 용준은 그의 눈치만 보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진태훈의 노여움을 샀다가는 아프리카로 발령 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 차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질 즈음에 진태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 “대표님, 큰일 났어요. 승우 도련님이 또 사라졌어요!”
  • 이 말을 들은 진태훈의 눈동자에 그늘이 졌다.
  • “어떻게 된 거야?!”
  • ‘너무 무서워서 아니면 내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혹시 납치라도 당한 걸까?’
  • 며칠 전에 고장 난 진 씨 가문의 보안 시스템, 그리고 이 위치 추적기를 생각하자 진태훈의 낯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 휴대폰 너머의 집사는 숨도 바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 “모, 모르겠어요… CCTV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데도 승우 도련님이 사라졌어요!”
  • 진태훈은 그 추적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 “빨리 찾아!”
  • 한편, 고 씨 가문.
  • 고은정이 눈 뜨고 당했으니 쉽게 넘어갈 리 없었다.
  • ‘김혁규란 놈이 감히 내 머리 위에 기어올라 나를 욕보이게 해? 참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을 보내 김혁규를 따끔하게 혼쭐내도록 하고 지금 급선무는 800억이야.’
  • 고은정이 800억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들은 고봉민은 어질하더니 숨이 안 쉬어졌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옆에 있던 허연화가 부축해 줘서야 겨우 소파에 앉았다.
  • “방금 뭐라고, 800억? 은정아,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길래 800억이 필요하단 말이냐?”
  • “아빠, 우선 진정하세요. 800억이 많아 보여도 이 800억만 있으면 전 세계 자선 대사의 영광을 안게 되죠. 그리고 진 씨 가문에 시집가면 그 집 안주인이 되는 데 800억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요?”
  • 고은정이 당당하게 말한 것 같지만 사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