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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엄마, 나쁜 아저씨가 엄마를 해칠 것 같아

  • 고수연은 귀여운 아들의 사진을 보며 역시 어릴 적부터 키운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개구쟁이라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 진태훈이 그녀에 대해 조사할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 그녀는 그가 보낸 해커의 추격을 피해 엊저녁 돌아오자마자 너무 많은 일을 했더니 기진맥진해졌다.
  • 하지만 다행히 그들은 그녀가 진 씨 가문의 저택에 다녀온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 그녀는 사람을 파견하여 헬기의 경로조차도 지워버렸다.
  • 고시윤은 어려서부터 아빠의 사랑을 못 받았으니 며칠만 아빠랑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놔두기로 했다.
  • 아들이 이만큼 컸으니 진태훈한테 애를 먹일 때도 된 것 같았다.
  • 그녀는 바로 답장을 했다.
  • “걱정 마, 나에 대해 조사하려면 이번 생에는 힘들 거야. 너나 몸조심하고 며칠 뒤에 데리러 갈게.”
  • 발송 버튼을 누른 뒤 바로 일어나 진승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 이 아이는 너무 심하게 다쳐 비록 생명의 위험은 없으나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 그는 어제 수술 후 지금까지 계속 혼수상태다. 고수연은 진 씨 가문 저택에서 돌아온 뒤 줄곧 이 아이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깨어났을 때 곁에 아무도 없으면 무서워할까 봐 걱정되었다.
  • 고수연은 이 아이가 몇 년 동안 겪었을 수많은 고통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 그녀는 좀 더 일찍 돌아왔어야 했다.
  • 진태훈은 그녀를 죽도록 미워하는데 그녀가 낳은 아이를 이뻐할 리가 없다는 것을 진작에 생각했어야 했다.
  • 고수연은 마음속으로 자책했고 심장이 쥐어짜듯 아프면서 숨이 막혔다.
  •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그녀는 생각을 접은 뒤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 “회장님, 고은정 씨가 자선단체 회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수백 통도 넘게 전화를 했어요.”
  • “뭐가 그렇게 급하지?”
  • “당연히 급하죠. 어제 실검을 내리려고 40억을 투자해서 오늘 모처럼 효과를 보았는데 당연히 자선단체를 찾아서 결백을 주장해야죠.”
  • “우리가 야근까지 하면서 힘들게 실검에 올렸는데 고작 40억을 가지고 없던 일로 하자고? 그럼 우리 직원들한테 미안해서 안되지. 실검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회장님은 만나지 않을 거라고 전해.”
  • “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 배혁은 전화기 너머로 대답하더니 바로 행동에 옮겼다.
  • 고수연이 전화를 끊고 보니 마침 고시윤이 보낸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 그녀는 병원 벽에 기대어 카톡을 확인했다.
  • “엄마 큰일 났어요. 얼른 숨어요. 나쁜 아저씨가 저를 핑계로 병원에 왔어요. 엄마를 해칠 것 같아요.”
  • 메시지를 확인 한 고수연은 놀란 나머지 바로 몸을 돌리려 했지만 커다란 검은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 검은 얼굴의 주인공은 바로 고시윤이 말하던 나쁜 아저씨였다.
  • 지금 이 순간 진태훈은 훤칠한 키에 꿋꿋한 자세로 그녀와 몇 걸음 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 맞춤 제작한 고급스러운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그에게서 자부심과 패기가 넘쳤다. 그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향했고 찬 기운이 감돌았다.
  • 그는 마치 원수를 노리듯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고수연!”
  • 고수연은 뜨끔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빨리 자기 이름을 찾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 하지만 그가 누구였던가? 그는 바로 서울에서 명성이 자자하고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면서 살고 있는 진태훈이다.
  • 고수연은 이내 마음을 다 잡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예쁜 얼굴에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 “진태훈 씨, 내 이름까지 알아내고 일부러 우연한 만남을 자처하신 건가? 사실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진태훈 씨가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카톡으로 친구 요청을 하면 되는데. 참고로 나도 진태훈 씨처럼 잘 생긴 사람한테는 관심이 많거든.”
  • 그녀는 백옥같이 하얀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팍에 올리고 손가락은 장난치 듯 그의 옷깃을 따라 내려가더니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그의 복근을 만졌다.
  • 아주 노골적으로 희롱했다.
  • 이 모든 걸 옆에서 지켜보던 용준도 깜짝 놀랐다.
  • 진 대표님이 이 여자한테 농락당했단 말인가?
  • 이렇게 놀라운 장면을 과연 내가 봐도 괜찮은 건가?
  • 용준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진태현을 보며 차라리 눈이 멀었으면 했다.
  • 진태훈은 눈앞에 있는 여자가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거침없이 행동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 그는 자신의 복근을 슬슬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 “이름이 고수연이라고? 이름도 같고 할아버지 제삿날 묘원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우연치고는 너무 똑같잖아?”
  • 고수연의 태도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진태훈을 바라보는 눈빛에 조롱기는 사라지고 차가움이 더해졌다.
  • “진태훈 씨, 아프니까 이 손 좀 놓지?”
  • “제대로 설명 안 하면 더 아플 수도 있어.”
  • 더 아플 거라고?
  • 그녀는 이미 5년 전에 경험했었다.
  • 고수연은 손목을 살짝 비틀어 진태훈한테서 민첩하게 벗어났다.
  • 그녀는 매몰차게 몇 걸음 물러서더니 조롱기 섞인 말투로 내뱉었다.
  •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어르신께서 많이 도와주셨어. 돌아오는 길에 인사차 들린 것뿐이야.”
  • “진태현 씨,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어르신처럼 좋은 분이 왜 갑자기 돌아가셨지? 손자로써 잘 보호해 드리지 못할망정 누가 어르신한테 인사하는 것까지도 간섭하나 봐? 그러고도 손자라고 할 수 있어?”
  • 듣고 있던 진태훈의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 그는 옆으로 늘어뜨린 다섯 손가락을 움켜지고 있었다. 그녀가 간도 크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감히 그한테 따질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 그가 할아버지 손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 할아버지가 왜 일찍 돌아가셨는지 따지고 있었다.
  • 이 모든 게 그를 속이고 배신하며 조종하던 고수연이라는 여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 고수연이랑 같은 이름을 하고 감히 그의 눈앞에서 까불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진태훈은 죽이고 싶었다.
  • 하지만 그는 참았다.
  • 진태훈은 그녀를 보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 소름 끼칠 정도로 낯이 익었다.
  • 그한테 따지는 모습조차도 고수연이랑 너무 닮았다.
  • 정말 우연일까?
  • 분위기는 아주 살벌했고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 고수연도 살벌한 그의 눈빛을 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 바로 그때 누군가가 이 모든 정적을 깨뜨렸다.
  • “진태훈, 여기 있었구나. 승우의 검사가 모두 끝났어. 이젠 가야지.”
  • 유해성은 고시윤을 안고 걸어오다가 고수연을 보는 순간 멈춰 섰다.
  •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쳤다.
  • “고수연? 살아있었어?”
  • “…”
  • 고수연은 유해성이 그녀를 알아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다행히 그녀는 지금 얼굴이 바뀌었고 예전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 유해성의 품에 안겨 있던 고시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이 수다쟁이가 정말 신기라도 있는 건가? 엄마가 이렇게 변신했는데 어떻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지?
  • 하지만 그는 엄마가 나쁜 아저씨랑 얽히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 그는 애써 작은 눈을 깜박이며 엄마한테 어떤 상황인지, 귀여운 아들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려고 했다.
  • 고수연은 조용히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이 분은?”
  • 고수연은 유해성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유해성은 고수연을 보고만 있어도 친근감이 느껴졌고 특히 그녀의 두 눈이 그를 말려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