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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평생 못 돌아오면 나야 고맙지

  • 고은정은 고 씨 집안의 유동자금이 얼마 있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 800억은 작은 돈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오늘 내로 마련해야 한다면 결국 남몰래 뒤에서 손을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 이 때문에 고은정이 진 씨 집안을 들먹이며 고봉민을 설득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 “세계 자선 대사인가 뭔가 타이틀만 따내면 진짜 진태훈이 이 결혼에 동의를 하기는 해? 몇 년 동안 지켜보니까 진태훈은 너한테 크게 관심도 없는 거 같던데, 너 혼자서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진 씨 집안과 우리 고 씨 집안 사이에는 사람 목숨까지 연루되어 있어.”
  • 예전에 진 씨 집안의 어르신을 죽게 만들고 진 씨 집안을 배신한 고수연이 결국엔 고 씨 집안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봉민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 진태훈이 고은정의 체면을 고려해 고 씨 집안을 건드리진 않았지만 고 씨 집안이 진태훈과 다시 사돈관계를 맺으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 고은정은 뾰로통해서 물었다.
  • “아빠, 그렇게 딸의 매력을 못 믿어요? 제가 몇 년 동안 진 씨 어르신 명의로 얼마나 많은 자선 활동을 했는데, 태훈 씨가 얼음덩어리라고 해도 저한테는 눈길을 줘야 해요, 전 반드시 진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거예요!”
  • “그럼 왜 진태훈에게 800억을 달라고 하지 못해? 진 씨 집안에게 800억은 푼돈이나 다름없는데! 그 정도 요구도 안 들어주는 거야?”
  • “아빠,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요! 제가 어떻게 그 사람한테 얘기를 꺼내요! 태훈 씨가 우리 고 씨 집안에 800억도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전 그 집에 시집가자마자 얕보이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선단체의 일은 태훈 씨가 절대 알면 안 돼요, 제가 몇 년 동안 힘들게 만든 이미지가 다 물거품이 된다고요!”
  • “그래도 안돼! 네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난 절대 동의 못해!”
  • 고봉민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 결정을 끝낸 고봉민은 더 이상 고은정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2층으로 향했고 화가 치밀어 오른 고은정은 짜증 나고 분했다.
  • ‘어떡하지, 아빠가 안 도와주면 800억을 어디서 구하지?’
  •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그녀의 인생은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 절망감에 빠진 고은정은 화를 참지 못하고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때려 부쉈지만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 2층에서 내려오던 허연화는 엉망진창이 된 거실을 보며 한심한 듯 말했다.
  • “지금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내가 평소에 널 어떻게 가르쳤어?”
  • “엄마, 이 상황에서 잔소리가 나와요? 그 타이틀을 따내지 못하면 진 씨 집안에 시집을 갈 수가 없어요. 그 집안에 시집을 못 가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죽는 다니, 내 딸이 이렇게 잘났는데, 당연히 제일 좋은 집안에 시집가야지. 받아, 공금 암호 키야, 갖고 가서 너 하고 싶은 일 해.”
  • “이건… 아빠가 암호 키를 줬어요?”
  • “내가 몰래 갖고 온 거야, 절대 아빠한테 들키면 안 돼. 요즘 회사 자금 상황이 나쁘진 않으니까 이 정도 돈은 2주 정도 써도 문제없을 거야. 근데 은정아, 너 진짜 2주 안에 진태훈한테 시집갈 자신이 있는 거야?”
  • “자신 있어요, 제가 이 영광만 따내면 태훈 씨랑 결혼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에요, 고마워요 엄마!”
  • 기분이 좋아진 고은정은 큰소리를 치며 허연화에 다가가 뽀뽀 세례를 날렸다.
  • “좋아, 역시 내 딸은 날 닮아서 야망도 있고 포부도 있어, 이 서울 시에서 진 씨 집안의 사모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우리 예쁜 딸밖에 없어! 전에 고수연 그 나쁜 계집애한테 틈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지금 애도 없었을 텐데. 그래서, 진 씨 집안의 그 어린놈은 잘 처리했어?”
  • “그 어린놈이 명줄이 긴 건지 다친 곳도 없이 멀쩡하게 돌아왔더라고요, 이제 말까지 해요! 안 그래도 이상한 거 같았어요. 그래도 어린놈이 돌아와서 태훈 씨한테 헛소리는 안 해서 다행이지 너무 위험할 뻔했어요!”
  • “하루빨리 처리해, 새엄마 노릇하기 쉽지 않아.”
  • “네, 엄마 말씀대로 할게요!”
  • 고은정은 큰 결심한 뒤, 800억을 고수연에서 이체했고 이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는 마음이 너무 쓰렸다.
  • 그 여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목적만 찾아냈어도 이 800억을 순순히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 하지만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그 나쁜 계집애가 또 다른 무언가로 자신을 협박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 고은정은 이 800억으로 일단 그 여자를 잡아 둘뿐, 절대 가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 여자가 유독 고은정만 괴롭히는 걸로 보아 철저한 준비를 한 듯싶은데 반드시 그 여자의 정보를 탈탈 털어서 더 이상 끌려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
  •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꽉 움켜 쥐었다.
  • 800억 쓴 건 아무것도 아니야, 반드시 그 여자가 백 배 천 배 토해내게 만들 거야!
  • 이 돈을 받아서 쓸 기회조차 없을 줄 알아!
  • 더군다나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면 고은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예정인데, 그때 가면 수많은 800억이 생길 것이고 그 여자는 절대 살아서 이 서울 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바로 이때, 고현수가 정보를 전하러 왔다.
  • “아가씨, 지금 진 씨 가문의 별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인데, 승우 도련님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 “진승우 그놈이 또 사라졌다고?”
  • 고은정은 흥분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물으며 엄마를 힐끔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대박이다, 하늘도 그녀를 돕고 있다!
  • 지난번에 묘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고은정이 진태훈에게 아무리 여러 번 연락을 해도 그는 미지근한 태도만 보였기에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절호의 기회가 생기다니!
  • “네, 저희 쪽 사람 말로는 사라진지 두세 시간 됐다고 합니다, 별장 전체를 찾아봤는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 모른다고 합니다.”
  • “마침 잘 사라졌어, 그 어린놈이 평생 못 돌아오면 나야 고맙지! 태훈 씨는?”
  • “진 대표님은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앞 전에 H 시의 한 별장에 가셨는데 거기서 뭘 하셨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 “자세하게 조사해 봐, 고 씨 집안의 돈과 목숨까지 다 걸었어, 내가 진 씨 가문에 시집가는 일엔 그 어떤 문제도 생겨서는 안돼!”
  • “네, 아가씨.”
  • 마음이 급한 고은정은 단정하게 꾸미고 진 씨 가문으로 향했다.
  • 그 어린놈이 없는 오늘 밤, 그녀는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해 거사를 치르고 말 것이다!
  • 갑자기 튀어나온 그 여자 때문에 고은정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을뿐더러 또 다른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하루빨리 진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되어야 한다.
  • 차에서 대기 중이던 고은정은 진태훈이 거의 도착한다는 별장 내부 소식에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우산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고은정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빗물이 온몸을 적셨다. 살랑거리던 치마는 순간 비에 젖어 축축해졌고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고은정은 더욱 가련해 보였다.
  • “아가씨,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집안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 고현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거센 비바람 속에서 걸어가고 있는 고은정을 바라보다가 우산도 챙기지 않고 급하게 차에서 내려 그녀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고은정의 눈빛에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고은정이 우산을 쓰고 별장 문 앞에 도착하자 진태훈의 차가 천천히 다가왔다.
  • 돌아서던 고은정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옆에 버려진 우산은 바람에 날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