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억은 작은 돈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오늘 내로 마련해야 한다면 결국 남몰래 뒤에서 손을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고은정이 진 씨 집안을 들먹이며 고봉민을 설득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세계 자선 대사인가 뭔가 타이틀만 따내면 진짜 진태훈이 이 결혼에 동의를 하기는 해? 몇 년 동안 지켜보니까 진태훈은 너한테 크게 관심도 없는 거 같던데, 너 혼자서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진 씨 집안과 우리 고 씨 집안 사이에는 사람 목숨까지 연루되어 있어.”
예전에 진 씨 집안의 어르신을 죽게 만들고 진 씨 집안을 배신한 고수연이 결국엔 고 씨 집안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봉민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진태훈이 고은정의 체면을 고려해 고 씨 집안을 건드리진 않았지만 고 씨 집안이 진태훈과 다시 사돈관계를 맺으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고은정은 뾰로통해서 물었다.
“아빠, 그렇게 딸의 매력을 못 믿어요? 제가 몇 년 동안 진 씨 어르신 명의로 얼마나 많은 자선 활동을 했는데, 태훈 씨가 얼음덩어리라고 해도 저한테는 눈길을 줘야 해요, 전 반드시 진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거예요!”
“그럼 왜 진태훈에게 800억을 달라고 하지 못해? 진 씨 집안에게 800억은 푼돈이나 다름없는데! 그 정도 요구도 안 들어주는 거야?”
“아빠,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요! 제가 어떻게 그 사람한테 얘기를 꺼내요! 태훈 씨가 우리 고 씨 집안에 800억도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전 그 집에 시집가자마자 얕보이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선단체의 일은 태훈 씨가 절대 알면 안 돼요, 제가 몇 년 동안 힘들게 만든 이미지가 다 물거품이 된다고요!”
“그래도 안돼! 네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난 절대 동의 못해!”
고봉민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결정을 끝낸 고봉민은 더 이상 고은정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2층으로 향했고 화가 치밀어 오른 고은정은 짜증 나고 분했다.
‘어떡하지, 아빠가 안 도와주면 800억을 어디서 구하지?’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그녀의 인생은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절망감에 빠진 고은정은 화를 참지 못하고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때려 부쉈지만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2층에서 내려오던 허연화는 엉망진창이 된 거실을 보며 한심한 듯 말했다.
“지금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내가 평소에 널 어떻게 가르쳤어?”
“엄마, 이 상황에서 잔소리가 나와요? 그 타이틀을 따내지 못하면 진 씨 집안에 시집을 갈 수가 없어요. 그 집안에 시집을 못 가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죽는 다니, 내 딸이 이렇게 잘났는데, 당연히 제일 좋은 집안에 시집가야지. 받아, 공금 암호 키야, 갖고 가서 너 하고 싶은 일 해.”
“이건… 아빠가 암호 키를 줬어요?”
“내가 몰래 갖고 온 거야, 절대 아빠한테 들키면 안 돼. 요즘 회사 자금 상황이 나쁘진 않으니까 이 정도 돈은 2주 정도 써도 문제없을 거야. 근데 은정아, 너 진짜 2주 안에 진태훈한테 시집갈 자신이 있는 거야?”
“자신 있어요, 제가 이 영광만 따내면 태훈 씨랑 결혼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에요, 고마워요 엄마!”
기분이 좋아진 고은정은 큰소리를 치며 허연화에 다가가 뽀뽀 세례를 날렸다.
“좋아, 역시 내 딸은 날 닮아서 야망도 있고 포부도 있어, 이 서울 시에서 진 씨 집안의 사모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우리 예쁜 딸밖에 없어! 전에 고수연 그 나쁜 계집애한테 틈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지금 애도 없었을 텐데. 그래서, 진 씨 집안의 그 어린놈은 잘 처리했어?”
“그 어린놈이 명줄이 긴 건지 다친 곳도 없이 멀쩡하게 돌아왔더라고요, 이제 말까지 해요! 안 그래도 이상한 거 같았어요. 그래도 어린놈이 돌아와서 태훈 씨한테 헛소리는 안 해서 다행이지 너무 위험할 뻔했어요!”
“하루빨리 처리해, 새엄마 노릇하기 쉽지 않아.”
“네, 엄마 말씀대로 할게요!”
고은정은 큰 결심한 뒤, 800억을 고수연에서 이체했고 이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는 마음이 너무 쓰렸다.
그 여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목적만 찾아냈어도 이 800억을 순순히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그 나쁜 계집애가 또 다른 무언가로 자신을 협박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고은정은 이 800억으로 일단 그 여자를 잡아 둘뿐, 절대 가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 여자가 유독 고은정만 괴롭히는 걸로 보아 철저한 준비를 한 듯싶은데 반드시 그 여자의 정보를 탈탈 털어서 더 이상 끌려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꽉 움켜 쥐었다.
800억 쓴 건 아무것도 아니야, 반드시 그 여자가 백 배 천 배 토해내게 만들 거야!
이 돈을 받아서 쓸 기회조차 없을 줄 알아!
더군다나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면 고은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예정인데, 그때 가면 수많은 800억이 생길 것이고 그 여자는 절대 살아서 이 서울 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때, 고현수가 정보를 전하러 왔다.
“아가씨, 지금 진 씨 가문의 별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인데, 승우 도련님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진승우 그놈이 또 사라졌다고?”
고은정은 흥분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물으며 엄마를 힐끔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박이다, 하늘도 그녀를 돕고 있다!
지난번에 묘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고은정이 진태훈에게 아무리 여러 번 연락을 해도 그는 미지근한 태도만 보였기에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절호의 기회가 생기다니!
“네, 저희 쪽 사람 말로는 사라진지 두세 시간 됐다고 합니다, 별장 전체를 찾아봤는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 모른다고 합니다.”
“마침 잘 사라졌어, 그 어린놈이 평생 못 돌아오면 나야 고맙지! 태훈 씨는?”
“진 대표님은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앞 전에 H 시의 한 별장에 가셨는데 거기서 뭘 하셨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자세하게 조사해 봐, 고 씨 집안의 돈과 목숨까지 다 걸었어, 내가 진 씨 가문에 시집가는 일엔 그 어떤 문제도 생겨서는 안돼!”
“네, 아가씨.”
마음이 급한 고은정은 단정하게 꾸미고 진 씨 가문으로 향했다.
그 어린놈이 없는 오늘 밤, 그녀는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해 거사를 치르고 말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그 여자 때문에 고은정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을뿐더러 또 다른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하루빨리 진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되어야 한다.
차에서 대기 중이던 고은정은 진태훈이 거의 도착한다는 별장 내부 소식에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우산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고은정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빗물이 온몸을 적셨다. 살랑거리던 치마는 순간 비에 젖어 축축해졌고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고은정은 더욱 가련해 보였다.
“아가씨,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집안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고현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거센 비바람 속에서 걸어가고 있는 고은정을 바라보다가 우산도 챙기지 않고 급하게 차에서 내려 그녀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고은정의 눈빛에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