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각, 공항 로비에서 고시윤은 캡 모자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전신 무장하고는 엄마 쪽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조심조심했다.
아아아!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마!
서울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녀석은 몸에 지닌 전자제품들을 모두 버렸고 수많은 사람들한테 추적도 당해봤다. 그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안돼, 그래도 엄마 쪽 사람들을 따돌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처자식을 버리고 간 그 나쁜 아저씨를 찾을 정력이 어디 있어?’
순간, 녀석은 방송 소리에 주의를 돌렸다. 포도알같이 큰 눈은 갑자기 반짝 빛이 났다!
“이어서 보도 드릴 내용은 실종 신고입니다. 제보자는 서울 진 씨 가문이며 오늘은 진 씨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신지 5주년이 되는 기일인데 진 씨 가문의 황태자 진승우 님께서 서울공원 묘원에서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혹 관련 소식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진 씨 가문에서 20억의 사례금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겠다고 합니다!”
아래는 한 장의 진 씨 가문의 황태자 사진이었다.
그걸 본 고시윤은 깜짝 놀랐다. 진 씨 가문의 황태자가 왜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
‘쟤, 설마 나랑 친형제인 건가? 아니면 아빠가 같을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이 들자 고시윤은 다급히 진 씨 가문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사진 한 장도 건지지 못했고 저 녀석의 친 아버지가 진태훈이란 것만 알게 되었다.
‘진태훈, 혹시 저 사람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그 처자식을 버린 나쁜 아저씨인가?’
만약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있나?
진 씨네 가문에 잠입하면 자신과 진태훈의 관계를 조사할 수 있고 엄마의 추적도 피할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니겠는가!
고시윤은 사악한 큰 눈으로 사진 속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웃었다.
‘동생, 미안하지만 네 얼굴을 좀 빌려야겠어!’
고시윤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직접 자신의 마스크와 캡 모자를 벗어 던지고는 당당하게 서비스 데스크로 걸어가 카운터 누나한테 자신의 덧니를 귀엽게 드러내며 말했다.
“하이, 간호사 누나, 나 저 방송에서 말하는 진 씨 가문의 황태자랑 닮은 거 같지 않아?”
하하하 내가 바로 진 씨 가문의 황태자야!
빨리 나를 잡아서 사례금 받으러 가 하하하!
…
진태훈이 파견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찾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저 묘원 주차장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은정은 두 다리를 오므리고 진태훈의 옆에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검정 원피스는 그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싸주었다.
새하얀 속살 아래 보일락 말락 살짝 드러난 쇄골, 가는 눈썹 아래 예쁜 눈망울을 가진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자책과 걱정에 쌓여 말했다.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태훈 씨, 내가 승우를 잘 보살피지 못했어!”
“안 그래도 몸이 허약한데 그러다 정말…”
고은정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흐느끼며 말했다.
“혹시 승우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진태훈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겁고도 억압적인 분위기가 거대한 그를 감쌌다. 그는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는 전례 없이 고은정에게 거칠게 말했다.
“울지 마!!”
고은정은 놀라서 순간 소리를 삼켜버렸다. 뭐라고 해석하고 싶었지만 진태훈의 조수인 용준이 부리나케 들어왔다.
“대표님,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묘원 주위의 CCTV가 모두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단서를 찾았습니다. 이건 묘원 근처에 있던 차량의 기사님께서 우연히 찍은 사진인데, 바로 이 여자가 묘원을 떠날 때 품속에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오늘 어르신 묘비 앞에 백합꽃을 놓은 그 여자입니다.”
진태훈은 즉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물어봤다.
“사실이야?”
용준은 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이 여자의 신분이 신비하긴 하나 우리는 병원에서 그녀의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도련님께서 지금 많이 다쳐 서울대병원에 있는데 지금 위험한 상태에서는 벗어났다고 합니다.”
진태훈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깊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가자!”
고은정은 마음이 불안했다. 저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진짜야? 승우는 어때? 태훈 씨, 나도 병원에 가보고 싶어!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왜 갑자기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지? 그 녀석이 그렇게 높은 산에서 떨어졌으면 뼈도 못 추렸을 텐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가 있지?’
고은정은 쫓아가고 싶었지만 진태훈이 너무도 빨리 떠나는 바람에 따라갈 수 없었다.
…
병실의 컴퓨터 앞, 고수연은 고시윤을 추적하는데 실패했지만 진 씨 가문에서 게시한 사람을 찾는 광고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갓 녀석을 만났을 때부터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라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직 갈피를 못 잡았는데 병실에 한 무리의 불청객들이 쳐들어왔다!
고수연은 진태훈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순간, 병실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용준은 곧장 병상을 향해 갔다가 그 위 크게 다쳐 혼수상태에 빠진 녀석을 보자 살기로 충만되여 말했다.
“승우 도련님…”
진 씨 가문의 황태자는 비록 자폐증이 있어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진 씨 가문의 보배임을 알아줘야 한다!
그런데 이 여자가 감히 작은 도련님을 납치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심하게 다치게 하다니, 아마도 죽고 싶은가 보다!
…
한 무리의 사람들은 그녀를 에워싸고 주동적으로 진태훈에게 길을 내주었다.
진태훈은 검은색 코트를 입고 들어섰다. 그의 큰 체구는 마치 산과도 같아 위압감이 느껴졌고 잘생기고 진한 이목구비는 어둠에 가린 채 장군 같은 기세로 고수연을 압박해왔다. 그의 어둡고 깊은 눈동자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마치 금방이라도 그녀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그는 쌀쌀한 말투로 물었다.
“바로 당신이 내 아들을 다치게 한 거야?”
고수연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성질을 참으며 이 불청객들을 스윽 살피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냉혹하게 답했다.
“아닌데!”
또박또박 대답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눈과 눈이 마주치자 불꽃이 뛰었다!
고수연은 조금도 지지 않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왕년의 나약하고 무능했던 고수연이 아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건 더더욱 두렵지 않다.
지난 5년 동안 계속 화장술로 자신을 위장하여 진실된 모습으로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태훈은 이 병상 위 혼수상태에 빠져 온몸에 상처뿐인 아이를 보면서 순간 얼굴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니라고? 근데 왜 어르신의 기일에 묘원에 나타났지? 당신이 한 게 아닌데 왜 멀쩡하던 애가 병상에 누워있지?”
진태훈의 눈에서 분노가 뿜어져 나왔고 목소리마저 잠겨있어 무서웠다.
“감히 내 아들을 다치게 하다니, 죽고 싶어?”
묘원에서 스쳐 지난 걸 진태훈은 기억한다. 다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 여태껏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여자가 작정하고 찾아온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고수연은 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나 아니라고!”
진태훈이 막 움직이려고 할 때, 문밖으로부터 기쁨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옷의 경호원이 아이를 안고 쳐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