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애초에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돌아올 것이며 고은정을 죽게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녀는 진 씨 집안을 배반하여 할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를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명과 억울함을 헛되이 짊어지지 않고 그녀를 해쳤던 사람들, 그녀의 혈육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 뒤에 있던 조수 배혁이 공손히 그녀에게 일깨워 주었다.
“회장님, 진 대표님의 차가 이미 산 아래에 도착했답니다. 이제 저희는 가야 합니다.”
고수연의 눈에 차가운 빛이 돌더니 이내 다시 선글라스로 가렸다.
“할아버지, 저 먼저 갈게요.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
다음은 고은정의 제삿날이다!
말을 마친 그녀는 하이힐을 또각 거리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자선 만찬 일은 어떻게 됐어?”
“이미 분부하신 대로 고은정을 글로벌 자선 연회 금지 명단에 올렸습니다! 진 씨 집안 어르신의 명의로 그렇게 많은 자선활동을 해왔고 자선 공주라는 미명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연회에 발도 디딜 수 없고 가면 뒤 진짜 모습이 드러났으니 진 씨네 집안에 시집갈 면목이 있는지 지켜봅시다!”
고수연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귀국해서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고시윤 잘 감시해.”
고시윤은 그녀의 아들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천하무적의 말썽꾸러기다.
“네, 회장님.”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 산 중턱에서 진태훈 일행을 만났다.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에 빼곡히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진태훈의 높고 꼿꼿한 자태가 눈에 띄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의 깊은 눈동자는 어두운 밤의 매처럼 날카로웠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마치 명령을 내리는 왕처럼 오만함이 풍겼다.
5년 만이다. 그는 예전보다 더 성숙하고 고귀해졌다.
진 씨 집안은 이미 그의 인솔하에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심지어 불과 5년 만에 파죽지세로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시가총액은 수십 배나 올랐다. 진 씨 집안은 이미 이 바닥의 진정한 명문이자 상업 제국이 되었다.
진태훈 바로 뒤에는 똑같이 5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은정이 있었다!
고은정은 럭셔리하게 맞춤 제작한 한정판 검은 원피스를 입었고 유난히 화려하게 치장했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진태훈의 뒤를 따라가는 걸 보니 고은정은 지난 5년 동안 잘 지낸 것 같다.
고수연은 진태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들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선글라스를 통해 뿜어져 나와 고은정의 얼굴을 매섭게 도려냈다.
고수연이 싸늘하게 웃는다.
지금 이 순간, 고은정은 진 씨네 집에 시집갈 좋은 날을 꿈꾸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오늘 진승우 그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냈고 고수연과 그 늙은이의 제삿날이라 생각만 해도 통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수연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녀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녀는 분위기가 이렇게 고결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질투를 참지 못하고 몇 번 더 쳐다보았다. 마음속은 어쩐지 불안했지만 이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르신의 묘비 앞에 놓여 있는 그 싱싱한 백합꽃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진태훈은 우두커니 선 채 그 백합꽃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왔었나?”
고은정은 순간 그 신비로운 여인이 생각났다.
그러나 다시 돌아봤을 때 그 여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 여인은 진 씨 집안과 무슨 연관이 있지?
왜 이 늙은이 기일에 왔지?
아닐 거다, 그녀가 착각했을 거다. 그녀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이미 죽어 지옥에 누워서 그녀를 올려다볼 뿐, 그녀를 전혀 위협할 수 없다.
바로 이때 용준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다가 함께 왔던 진승우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보고했다.
“대표님, 승우 도련님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말을 들은 진태훈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쏘아봤다.
“어떻게 된 거야?”
“아까 분명 저희와 함께 있었는데…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무능해서…”
고은정은 분명 진승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야 알았다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당황스럽고 다급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연기를 했다.
“방금 전까지도 분명히 여기에 있었는데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지?”
그녀는 능청스럽게 녀석을 찾는 척했다.
진태훈은 차가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빨리 안 찾아!”
“네.”
…
고수연은 산에서 내려오자 싸늘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진태훈이 오늘 같은 날 고은정 이 살인범을 데리고 할아버지 기일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녀가 없는 동안 고은정은 무사태평하게 지냈나 보다. 감히 할아버지를 방해할 용기가 있다니!
다만, 고은정이 웃을 수 있는 날도 오늘까지이다.
고은정이 울면서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막 차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희미한 구조 요청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우, 살려….”
고수연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묘원 산기슭에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어린 소년이 누워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녀는 표정이 굳어졌고 즉시 결단을 내렸다.
“빨리 사람 살려!”
배혁은 재빠르게 뛰쳐나가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대표님, 아이가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고수연은 재빨리 배혁을 시켜 아이를 차 뒷좌석에 앉히고 차에 올라타 직접 아이의 상처를 살폈다.
남자아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본래의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고 검은 양복에도 온통 핏자국이 나 있었다. 게다가 호흡도 약했고 고통스러운 듯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다.
아이의 상처는 심각했다. 온몸이 여러 군데 골절되고 연조직이 타박상을 입었다. 만약 추락하는 과정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완충되지 않았다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다행히 내장은 손상되지 않았고 운 좋게도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지끈거리는 아픔에도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수연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무서워… 살려줘, 엄마…”
공포에 질린 듯 가련하고 연약한 아이의 구원 소리가 고수연의 마음을 순식간에 찢어지게 했다.
고수연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
“당장 주원에게 연락해서 병원으로 가!”
“네!”
다만 녀석에게는 아무런 신원 정보가 없다.
그녀는 자칫 아이를 아프게 할까 두려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야, 겁내지 말고 아줌마한테 알려줘. 엄마는 어디에 있어? 엄마 연락처 알아?”
진승우는 숨이 곧 끊어질 듯 전혀 말을 할 수 없었지만, 핏자국이 가득한 그 작은 손은 그녀의 옷을 꽉 움켜쥐고 꿋꿋이 아픔을 참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기 같은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고수연의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 어린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아가야, 무서워하지 마. 아줌마가 먼저 너 병원에 데려다줄 거야. 그리고 나중에 엄마 찾아줄게…”
“잠들지 마, 아가야! 눈 떠, 정신 차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고 다행히도 위험에서 벗어났다.
고수연은 병실을 지키며 줄곧 떠나지 않았다.
이 녀석은 그녀의 아이들과 같은 또래라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녀석을 보니 진태훈에게 끌려간 자신의 아이가 생각난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고은정이 있다면 그녀의 아이도 틀림없이 잘 지내지 못할 것이다.
“회장님?”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고수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혁이 와서 상황을 보고하고 말을 멈추었다.
“회장님, 아드님께서… 또… 또 도망치셨습니다!”
고수연은 눈을 치켜들었다.
“어디로 도망간 거야?”
“저희와 함께 귀국했지만 서울에 들어와서 놓쳐버렸습니다.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고 그냥 아버지를 찾으러 돌아온 거라 회장님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서 복수를 하고 나면… 얌전히 돌아갈 거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찾는다고?!
고수연은 진태훈이 시윤과 시원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 녀석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더더욱 없다!
“알았어,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이 자식, 다 컸다고 막 나가네?
그녀는 이 녀석을 직접 돌려보내려고 한다. 고수연은 늘씬한 두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앞에 있는 노트북을 켜고 그 녀석의 종적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