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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놈이 또 도망갔다

  • 진 씨 집안의 모든 것, 고 씨 집안의 모든 것, 그녀는 모두 싫어한다!
  • 그러나 애초에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돌아올 것이며 고은정을 죽게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 그녀는 진 씨 집안을 배반하여 할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를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 오명과 억울함을 헛되이 짊어지지 않고 그녀를 해쳤던 사람들, 그녀의 혈육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 바로 그때 뒤에 있던 조수 배혁이 공손히 그녀에게 일깨워 주었다.
  • “회장님, 진 대표님의 차가 이미 산 아래에 도착했답니다. 이제 저희는 가야 합니다.”
  • 고수연의 눈에 차가운 빛이 돌더니 이내 다시 선글라스로 가렸다.
  • “할아버지, 저 먼저 갈게요.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
  • 다음은 고은정의 제삿날이다!
  • 말을 마친 그녀는 하이힐을 또각 거리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 “자선 만찬 일은 어떻게 됐어?”
  • “이미 분부하신 대로 고은정을 글로벌 자선 연회 금지 명단에 올렸습니다! 진 씨 집안 어르신의 명의로 그렇게 많은 자선활동을 해왔고 자선 공주라는 미명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연회에 발도 디딜 수 없고 가면 뒤 진짜 모습이 드러났으니 진 씨네 집안에 시집갈 면목이 있는지 지켜봅시다!”
  • 고수연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잘했어. 귀국해서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고시윤 잘 감시해.”
  • 고시윤은 그녀의 아들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천하무적의 말썽꾸러기다.
  • “네, 회장님.”
  •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 산 중턱에서 진태훈 일행을 만났다.
  •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에 빼곡히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진태훈의 높고 꼿꼿한 자태가 눈에 띄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의 깊은 눈동자는 어두운 밤의 매처럼 날카로웠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마치 명령을 내리는 왕처럼 오만함이 풍겼다.
  • 5년 만이다. 그는 예전보다 더 성숙하고 고귀해졌다.
  • 진 씨 집안은 이미 그의 인솔하에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심지어 불과 5년 만에 파죽지세로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시가총액은 수십 배나 올랐다. 진 씨 집안은 이미 이 바닥의 진정한 명문이자 상업 제국이 되었다.
  • 진태훈 바로 뒤에는 똑같이 5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은정이 있었다!
  • 고은정은 럭셔리하게 맞춤 제작한 한정판 검은 원피스를 입었고 유난히 화려하게 치장했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진태훈의 뒤를 따라가는 걸 보니 고은정은 지난 5년 동안 잘 지낸 것 같다.
  • 고수연은 진태현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들과 스쳐 지나갔다.
  • 그러나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선글라스를 통해 뿜어져 나와 고은정의 얼굴을 매섭게 도려냈다.
  • 고수연이 싸늘하게 웃는다.
  • 지금 이 순간, 고은정은 진 씨네 집에 시집갈 좋은 날을 꿈꾸고 있다!
  • 왜냐하면 그녀는 오늘 진승우 그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냈고 고수연과 그 늙은이의 제삿날이라 생각만 해도 통쾌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고수연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녀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 그녀는 분위기가 이렇게 고결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질투를 참지 못하고 몇 번 더 쳐다보았다. 마음속은 어쩐지 불안했지만 이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어르신의 묘비 앞에 놓여 있는 그 싱싱한 백합꽃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 진태훈은 우두커니 선 채 그 백합꽃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누가 왔었나?”
  • 고은정은 순간 그 신비로운 여인이 생각났다.
  • 그러나 다시 돌아봤을 때 그 여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 그 여인은 진 씨 집안과 무슨 연관이 있지?
  • 왜 이 늙은이 기일에 왔지?
  • 아닐 거다, 그녀가 착각했을 거다. 그녀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이미 죽어 지옥에 누워서 그녀를 올려다볼 뿐, 그녀를 전혀 위협할 수 없다.
  • 바로 이때 용준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 그는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다가 함께 왔던 진승우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보고했다.
  • “대표님, 승우 도련님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 말을 들은 진태훈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쏘아봤다.
  • “어떻게 된 거야?”
  • “아까 분명 저희와 함께 있었는데…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무능해서…”
  • 고은정은 분명 진승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야 알았다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당황스럽고 다급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연기를 했다.
  • “방금 전까지도 분명히 여기에 있었는데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지?”
  • 그녀는 능청스럽게 녀석을 찾는 척했다.
  • 진태훈은 차가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명령했다.
  • “빨리 안 찾아!”
  • “네.”
  • 고수연은 산에서 내려오자 싸늘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 그녀는 진태훈이 오늘 같은 날 고은정 이 살인범을 데리고 할아버지 기일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 그녀가 없는 동안 고은정은 무사태평하게 지냈나 보다. 감히 할아버지를 방해할 용기가 있다니!
  • 다만, 고은정이 웃을 수 있는 날도 오늘까지이다.
  • 고은정이 울면서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날을 기다리고 있다.
  • 막 차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희미한 구조 요청 소리가 들렸다.
  • “우우우우, 살려….”
  • 고수연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묘원 산기슭에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어린 소년이 누워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 그녀는 표정이 굳어졌고 즉시 결단을 내렸다.
  • “빨리 사람 살려!”
  • 배혁은 재빠르게 뛰쳐나가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 “대표님, 아이가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 이 말을 듣고 고수연은 재빨리 배혁을 시켜 아이를 차 뒷좌석에 앉히고 차에 올라타 직접 아이의 상처를 살폈다.
  • 남자아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본래의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고 검은 양복에도 온통 핏자국이 나 있었다. 게다가 호흡도 약했고 고통스러운 듯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다.
  • 아이의 상처는 심각했다. 온몸이 여러 군데 골절되고 연조직이 타박상을 입었다. 만약 추락하는 과정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완충되지 않았다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 다행히 내장은 손상되지 않았고 운 좋게도 그녀를 만났다.
  • 그러나 지끈거리는 아픔에도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수연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 “무서워… 살려줘, 엄마…”
  • 공포에 질린 듯 가련하고 연약한 아이의 구원 소리가 고수연의 마음을 순식간에 찢어지게 했다.
  • 고수연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
  • “당장 주원에게 연락해서 병원으로 가!”
  • “네!”
  • 다만 녀석에게는 아무런 신원 정보가 없다.
  • 그녀는 자칫 아이를 아프게 할까 두려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아가야, 겁내지 말고 아줌마한테 알려줘. 엄마는 어디에 있어? 엄마 연락처 알아?”
  • 진승우는 숨이 곧 끊어질 듯 전혀 말을 할 수 없었지만, 핏자국이 가득한 그 작은 손은 그녀의 옷을 꽉 움켜쥐고 꿋꿋이 아픔을 참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아기 같은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 고수연의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 어린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 “아가야, 무서워하지 마. 아줌마가 먼저 너 병원에 데려다줄 거야. 그리고 나중에 엄마 찾아줄게…”
  • “잠들지 마, 아가야! 눈 떠, 정신 차려!”
  •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고 다행히도 위험에서 벗어났다.
  • 고수연은 병실을 지키며 줄곧 떠나지 않았다.
  • 이 녀석은 그녀의 아이들과 같은 또래라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이 녀석을 보니 진태훈에게 끌려간 자신의 아이가 생각난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고은정이 있다면 그녀의 아이도 틀림없이 잘 지내지 못할 것이다.
  • “회장님?”
  •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 고수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혁이 와서 상황을 보고하고 말을 멈추었다.
  • “회장님, 아드님께서… 또… 또 도망치셨습니다!”
  • 고수연은 눈을 치켜들었다.
  • “어디로 도망간 거야?”
  • “저희와 함께 귀국했지만 서울에 들어와서 놓쳐버렸습니다.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고 그냥 아버지를 찾으러 돌아온 거라 회장님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서 복수를 하고 나면… 얌전히 돌아갈 거라고 했습니다!”
  • 아버지를 찾는다고?!
  • 고수연은 진태훈이 시윤과 시원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 이 녀석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더더욱 없다!
  • “알았어,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 이 자식, 다 컸다고 막 나가네?
  • 그녀는 이 녀석을 직접 돌려보내려고 한다. 고수연은 늘씬한 두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앞에 있는 노트북을 켜고 그 녀석의 종적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