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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똑같은 이름

  • “내가 언제 긴장했다고 그래?”
  • 진태훈의 날카로운 눈빛에 유해성은 덜컥 겁이 났지만 그래도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할 수밖에 없었다.
  • “승우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혼자 몰래 방으로 들어가더니 창가에 앉아 우산을 들고 바깥을 보고 있었어. 고은정 씨가 승우한테 우산을 쓰고 뛰어내리면 날 수 있다고 말했대. 내가 때마침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 순간 진태훈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그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 “은정이는 승우 친 이모야. 승우한테 늘 잘해줬고. 아랫사람들 보고 집에 있는 우산 다 치우라고 해!”
  • 진태훈은 마치 고은정을 두둔하려는 듯했다.
  • 유해성은 진태훈의 말을 듣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 “그래도 고은정을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만약 고은정 씨가 정말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그때는…”
  • 유해성은 진태훈의 차가운 눈빛을 피했고 하려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 유해성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래. 못 들은 걸로 해.”
  • 유해성은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다가 마침 진태훈을 찾으러 온 용준과 마주쳤다.
  • 용준은 보고할 것이 많았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 가뜩이나 날이 서있는 진태훈은 용준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 “말해.”
  • “별장의 보안 시스템에 누군가 손을 댄 것 같습니다. 10여 분 동안의 CCTV 영상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별장에서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 “당장 사람을 보내 추적하고 보안을 강화해. 승우의 안전도 더 신경 쓰도록!”
  • 눈살을 찌푸린 진태훈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진 씨 가문의 보안 시스템은 세계 탑 수준이라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
  • 오늘의 기괴한 사건들을 그녀와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여자와 연관된 건지 한번 알아봐.”
  • “좀 전에 조사해 봤지만 아직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의 신분이 너무 미스터리해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무능한 탓에 지금까지 알아낸 건 이름뿐인데 고… 고수연이라고 합니다…”
  • 용준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 진태훈 앞에서 ‘고수연’이라는 세 글자가 금기어라는 것을 진 씨 가문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 신비로운 여자의 이름이 하필이면 고수연이라니!
  • 용준은 그 여인이 서울에서 비참하게 쫓겨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 “고수연?”
  • 진태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이름은 같지만 생김새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연인 것 같아요.”
  • 용준은 애써 그를 위로했다.
  • ‘전 사모님이 돌아가신 지 5년이나 지났는데 부활이라도 했겠어? 게다가 두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이 전혀 딴판이라고.’
  • 진태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 “계속 조사해! 그 여자, 분명 문제가 있어!”
  • 그녀가 ‘고수연’ 이라는 이름으로 할아버지 묘지에 인사하러 갔었기에 진태훈은 절대 우연이라고 믿지 않았다.
  • 그는 오늘 밤 별장 보안 시스템이 해킹당한 것도 이 여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 비록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여자의 몸에서 느껴지는 치명적인 익숙함 때문의 진태훈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 “알겠습니다!”
  • 용준은 조심스럽게 진태훈의 눈치를 살폈다.
  •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은정 아가씨에 관한 일인데, 인터넷에서 누군가 아가씨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를 냈고 현재 실시간 검색어 1위입니다. 우리 쪽에서 손을 쓸까요?”
  • 용준이 태블릿PC를 건네자 고은정에 관한 몇 가지 검색어가 진태훈의 눈에 들어왔다.
  • 진태훈은 한 번 훑어보고는 태블릿 PC를 내던졌다.
  • “이따위 하찮은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마!”
  • 다들 고은정이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진태훈은 몇 년 동안 줄곧 고은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왔기에 다른 사람의 지적이 필요 없었다.
  • “네, 대표님.”
  • 고시윤은 잠들면 엄마가 쳐들어와서 데리고 가버릴까 봐 자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 침대에 누워서 잠시 바깥의 상황을 엿듣고 있다가 도둑고양이처럼 진태훈의 서재 문 앞에 조용히 엎드렸다.
  • 물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 작은 귀를 바싹 문에 대고 엿듣는 게 옹졸하고 치사한 것 같이 느껴졌다. 뭐라고 하는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 ‘어? 이제 조금 들리는 것 같아! 이런 나쁜 놈, 감히 우리 엄마를 조사하다니!’
  • 고시윤은 절대로 엄마를 이 나쁜 놈의 손에 잡히게 둘 수 없었다.
  • ‘그런데 왜 갑자기 문이 움직이는 거지? 헉…’
  • 문이 열리자 고시윤은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반응이 빨라서 앞사람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 “승우야, 여기서 뭐해?”
  • 자신의 다리를 잡고 있는 아들을 보자 진태훈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고 눈빛에는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 그는 아들이 자신을 향해 벌린 작은 두 손을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아들을 안았다.
  • 진승우가 말을 하게 된 후, 그는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가까워질 줄 몰랐다.
  •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 고시윤은 자기가 엿듣고 있었다는 게 들통이 날 까봐 진태훈에 대한 역겨운 감정을 꾹 삼키고는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 “아빠, 저랑 같이 자면 안 돼요?”
  • 비록 친자식이라 예뻐하기는 했지만 진승우가 말을 하지 못해서 둘 사이가 별로 가깝지 않다고 유해성이 말한 적이 있다.
  • 그래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제출하면 진태훈이 싫다고 할게 뻔하니 고시윤은 무조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진태훈은 흔쾌히 승낙했다.
  • “그래.”
  • 평소 같으면 자식에게 독립해야 한다고 가르쳤을 텐데 오늘은 이 아이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것 같아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 ‘뭐야, 정보가 잘못된 거야? 두 사람 별로 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어?’
  • 고시윤은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기분이었다.
  • ‘이렇게 나쁜 남자와 같이 자다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낫지! 하지만 지금은 물러설 곳이 없어… 엄마를 위해 내가 희생할 수밖에!’
  • 이튿날 아침.
  • 고수연은 고시윤이 보낸 카카오톡 문자 소리에 깨났다. 대화 창에는 잠든 미남의 사진이 나타났다.
  • 그 미남은 다름 아닌 진태훈이었다.
  • 그리고 진태훈 얼굴에 그린 커다란 거북이는 고시윤의 걸작인 게 분명했다.
  • ‘역시 내 아들, 뭘 좀 아네.’
  • 고수연이 고소해 하고 있는데 고시윤이 연속 문자를 보내왔다.
  • “엄마, 이 나쁜 남자가 엄마를 조사하고 있어요! 아들이 곁에 없으니 꼭 조심하세요! 그리고 제가 엄마를 지켜 줄 테니 걱정 마세요! 이 남자가 감히 엄마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제가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며칠만 괴롭히고 돌아갈 테니 저를 너무 보고 싶어 하지 마시고 잘 지내요! 사랑해요, 엄마!”
  • 그는 문자와 함께 귀여운 셀카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