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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고시윤,참 잘했어!

  •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어린아이가 경호원의 손을 잡고 들어오고 있었다.
  •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어린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아니, 승우 도련님이 두 명이라고?’
  • 고시윤은 원래 자신만만하였으나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엄마와 눈이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작은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 ‘분명 엄마를 피해서 진 씨 가문의 승우 도련님까지 사칭했는데, 엄마가 있는 호랑이굴에 다시 들어올 줄이야… 하느님,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 가요!’
  • 그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갑자기 덩치가 좋은 남성의 품에 안겨졌다.
  • 용준은 멀쩡한 승우 도련님을 본 순간, 곧바로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아이를 잊어버렸다.
  • 그는 당연히 자신이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이라 여기고는 고시윤을 품에 안은 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승우 도련님, 괜찮으세요?”
  • 고시윤은 얼떨결에 그에게 안기긴 했지만 포도알 같은 눈으로 주위를 계속 훑어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길은 진태훈한테서 멈추었다.
  • ‘이 아저씨가 바로 진태훈이라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왜 우리 엄마랑 같은 곳에 있는 거야!’
  • 그는 주위를 한 번 더 살폈고 그제야 얼굴이 훼손된 채 침대에 누워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 ‘저 아이가 설마 진 씨 가문의 진짜 도련님은 아니겠지? 아,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괜찮아. 엄마한테서 벗어나려는 나의 계획을 위해서는 끝까지 연기해야 돼.’
  • 그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가 진태훈의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 진태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갑자기 멀쩡하게 돌아온 어린아이를 훑어보았다. 그는 의심스러운지 미간을 찌푸렸다.
  • “우리 승우 맞아?”
  • 고시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 “네네, 맞아요. 아빠! 똑똑히 봐요. 제가 아빠 아들이에요. 저기 누워있는 애는 아니라고요!”
  • 용준은 승우 도련님을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 “승우 도련님, 언제부터 말을 트신 거예요?”
  • ‘그것도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다니! 승우 도련님은 어릴 적부터 자폐증이 있었고 성격이 괴팍하여 지금껏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 일 때문에 대표님께서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모두 속수무책이었었지.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승우 도련님은 예전과 성격도 조금 달라 보이고 입고 있는 옷마저 달라…’
  • 고시윤은 진 씨네 진짜 도련님이 말도 못 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진퇴양난이 된 상황에서 그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그, 그니까… 어떤 명의를 만났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저를 치료해 주셨어요.”
  • 진태훈의 아들은 그한테 사랑스럽게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 하지만, 지금 그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아이는 분명히 그의 아들이었다!
  • 진태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품속의 아들을 꼭 안았다.
  • “정말이야?”
  • 고시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내가 이 여자를 오해한 거야?’
  • 진태훈은 차가운 입술을 깨물었다.
  • ‘하지만 이 여자는 오늘 할아버지의 묘지에 인사하러 갔었어…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 그는 계속 입술을 깨물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숙여 아들에게 물었다.
  • “이 여자 본 적 있어?”
  • 고시윤은 고수연을 바라보더니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 “모르겠어요. 본 적 없는데요. 근데 아빠, 왜 이 분한테 계속 매달리는 거예요? 설마 이 예쁜 누나한테 반했어요?”
  • 이 말을 듣은 진태훈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고수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들을 안은 채 병실 문을 나섰다.
  • “아빠랑 집에 가자. 저런 여자를 만나면 도망가야 해. 사기꾼이거든.”
  • 예전의 그도 고수연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갔었다.
  • 고수연이라는 여자만 생각하면 그는 마음속의 아픔과 증오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 고시윤은 진태훈이 이렇게 사실을 왜곡시킬 줄 몰랐다.
  • ‘감히 우리 엄마를 사기꾼이라 하다니!’
  • 고시윤은 참지 못하고 속으로 이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 하지만 자신의 큰 계획을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진태훈의 어깨 위에 엎드리고는 엄마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복화술로 작별 인사를 했다.
  • “엄마, 미안해요. 일부러 모른 척한 게 아니에요.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잘 교육하고 돌아갈게요. 아프지 말고 잘 지내세요. 그리고 이 동생도 잘 보살펴주시고요.”
  •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교육한 뒤, 바로 엄마를 모시고 멀리 떠나 누나를 만나러 갈 거야!’
  •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신속하게 떠났다.
  • 한편, 병실에 있던 고수연은 진태훈 품속에 숨어 점차 멀어지는 아들을 보고 악마 같은 아들놈의 엉덩이를 호되게 때리고 싶었다.
  • ‘고시윤, 나를 모른 척하다니! 게다가 진승우를 사칭해 그런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다니… 저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겠어.’
  • 아들이 소란을 피워 일을 망칠까 봐 두려운 마음에 귀국할 때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 만일 진태훈이 그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 ‘하지만 우리 시윤이는 똑똑하니까 아직은 발각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 그것보다 그녀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침대 위에 누워있는 승우였다.
  • 고수연은 침대 앞까지 걸어가서 아이의 차갑고 작은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마음속은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사무쳤다.
  • 귀국전, 그녀는 아들과 재회하는 장면을 여러 번 상상했었다.
  • 하지만 상처투성이인 아들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얼굴은 상처투성이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만일 오늘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그녀는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 “승우야, 5년간 잘 지내고 있었던 거야?”
  • 고수연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아파졌다. 아들이 잘 지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진태훈은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고은정도 승우에게 잘해 줬을 리 없지. 그렇지 않은 이상, 왜 여태 말을 하지 못했겠어… 그리고 묘원에서 굴러떨어진 건 또…’
  • 고수연의 눈빛은 삽 시에 차가워졌다.
  • 나쁜 예감이 든 그녀는 바로 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제대로 알아봐. 오늘 그 애가 왜 묘원에서 굴러떨어졌는지. 그리고 고은정이 한 짓이 맞는지!”
  • 전화 한편의 배혁은 지령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네, 회장님.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뒤, 고수연은 진승우의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 ‘만일 정말 고은정의 짓이라면 지금 내 아들 몸에 있는 상처의 백배, 천 배로 고은정한테 갚아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