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다니! 승우 도련님은 어릴 적부터 자폐증이 있었고 성격이 괴팍하여 지금껏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 일 때문에 대표님께서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모두 속수무책이었었지.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승우 도련님은 예전과 성격도 조금 달라 보이고 입고 있는 옷마저 달라…’
고시윤은 진 씨네 진짜 도련님이 말도 못 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진퇴양난이 된 상황에서 그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그, 그니까… 어떤 명의를 만났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저를 치료해 주셨어요.”
진태훈의 아들은 그한테 사랑스럽게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아이는 분명히 그의 아들이었다!
진태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품속의 아들을 꼭 안았다.
“정말이야?”
고시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내가 이 여자를 오해한 거야?’
진태훈은 차가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오늘 할아버지의 묘지에 인사하러 갔었어…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그는 계속 입술을 깨물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숙여 아들에게 물었다.
“이 여자 본 적 있어?”
고시윤은 고수연을 바라보더니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본 적 없는데요. 근데 아빠, 왜 이 분한테 계속 매달리는 거예요? 설마 이 예쁜 누나한테 반했어요?”
이 말을 듣은 진태훈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고수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들을 안은 채 병실 문을 나섰다.
“아빠랑 집에 가자. 저런 여자를 만나면 도망가야 해. 사기꾼이거든.”
예전의 그도 고수연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갔었다.
고수연이라는 여자만 생각하면 그는 마음속의 아픔과 증오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고시윤은 진태훈이 이렇게 사실을 왜곡시킬 줄 몰랐다.
‘감히 우리 엄마를 사기꾼이라 하다니!’
고시윤은 참지 못하고 속으로 이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자신의 큰 계획을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진태훈의 어깨 위에 엎드리고는 엄마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복화술로 작별 인사를 했다.
“엄마, 미안해요. 일부러 모른 척한 게 아니에요.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잘 교육하고 돌아갈게요. 아프지 말고 잘 지내세요. 그리고 이 동생도 잘 보살펴주시고요.”
‘이 쓰레기 같은 남자를 교육한 뒤, 바로 엄마를 모시고 멀리 떠나 누나를 만나러 갈 거야!’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신속하게 떠났다.
한편, 병실에 있던 고수연은 진태훈 품속에 숨어 점차 멀어지는 아들을 보고 악마 같은 아들놈의 엉덩이를 호되게 때리고 싶었다.
‘고시윤, 나를 모른 척하다니! 게다가 진승우를 사칭해 그런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다니… 저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겠어.’
아들이 소란을 피워 일을 망칠까 봐 두려운 마음에 귀국할 때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진태훈이 그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시윤이는 똑똑하니까 아직은 발각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그것보다 그녀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침대 위에 누워있는 승우였다.
고수연은 침대 앞까지 걸어가서 아이의 차갑고 작은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마음속은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사무쳤다.
귀국전, 그녀는 아들과 재회하는 장면을 여러 번 상상했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인 아들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얼굴은 상처투성이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만일 오늘 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그녀는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승우야, 5년간 잘 지내고 있었던 거야?”
고수연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아파졌다. 아들이 잘 지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태훈은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고은정도 승우에게 잘해 줬을 리 없지. 그렇지 않은 이상, 왜 여태 말을 하지 못했겠어… 그리고 묘원에서 굴러떨어진 건 또…’
고수연의 눈빛은 삽 시에 차가워졌다.
나쁜 예감이 든 그녀는 바로 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대로 알아봐. 오늘 그 애가 왜 묘원에서 굴러떨어졌는지. 그리고 고은정이 한 짓이 맞는지!”
전화 한편의 배혁은 지령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회장님.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고수연은 진승우의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만일 정말 고은정의 짓이라면 지금 내 아들 몸에 있는 상처의 백배, 천 배로 고은정한테 갚아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