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5화 왜곡된 진실

  • 한명규는 경찰의 말을 듣고 얼른 맞장구를 쳤다.
  • “그러게, 경찰서에 가서 고문용 의자에 앉으면 그 돈의 출처를 말하지 않고 배기겠어?”
  • 고문용 의자?
  • 모든 마을 사람이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단어를 듣자 두려움이 생긴 듯 서로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 “이번에 한서천은 정말 재수가 없게 됐어. 건드려도 왜 하필 한명규를 건드려!”
  • “작게 말해, 장춘봉이 듣고 너를 찾아서 복수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때가 되면 넌 제2의 한서천이야.”
  • 한서천은 워낙 감옥에 있으며 비밀스러운 계승을 받았기에 청각이 유달리 민감했기에 그 사람이 작은 소리로 의논하는 것까지 들을 수 있었다.
  • 그는 그 순간 바로 장춘봉 일가가 몇 년간 마을 사람들을 적지 않게 괴롭혔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 그러자 고개를 돌리고 음험한 얼굴로 한명규를 보더니 말했다.
  • “법은 나라가 정한 것이지. 지금 네가 한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아.”
  • 한명규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 “P 시티에서 유 대장이 곧 법이야. 너 같은 작디작은 촌뜨기가 나와 이런 말을 해도 소용없어.”
  • 그는 이 말을 하며 자기도 예전엔 촌뜨기였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 선두에 있던 제복을 입은 경찰이 아랫사람을 향해 손을 저었다.
  • “즉시 이놈을 체포해. 정말 궁핍한 지역에 부패가 생긴다는 말이 맞아, 무법지대가 따로 없군.”
  • “네! 유 대장님!”
  • 얼마 후 한 무리 경찰이 유 대장의 명을 따라 한서천을 겹겹이 둘러싸더니 무작정 경찰차로 끌고 갔다.
  • 한정군과 임수아는 아들이 눈앞에서 체포되자 조급해서 말했다.
  • “우리 아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체포하는 거야?”
  • “법을 어겼는지 아닌지는 당신이 왈가불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법은 공평하니까 우리가 알아서 조사할 거야.”
  • 유 대장이 임수아를 밀쳐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 장춘봉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 “임수아, 내 말 들어봐. 넌 한서천 같은 아들을 키우느니 차라리 벽에 머리 찧고 죽는 게 나아. 우리 아들을 봐, 유 대장과는 죽고 못 사는 형제 같은 사이야.”
  • 서원영은 막무가내인 장춘봉을 보자 즉시 손에 들었던 캐리어를 놓고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 “죽고 못 사는 형제면 어때서요? 경찰서의 대장이면 또 뭐가 어떤데요? P 시티에서 법 없이 살 수 있기라도 해요?”
  • 장춘봉은 그 말을 듣자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원영 곁으로 다가왔다.
  • “쯧쯧! 어머머! 옷 입은 꼴 좀 봐, 설마 어느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는 아니겠지?”
  • 두 사람이 한창 말싸움을 벌이던 때에 경찰차는 천천히 마을 입구를 향하고 있었고 모든 마을 사람이 한서천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 한소함은 멀어져가는 경찰차를 흘끗 보더니 얼른 서원영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 “서 의사, 저런 몰상식한 여자와 언쟁을 높이지 말아요. 우리 함께 도시로 가서 오빠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봐요.”
  • 한정군도 조바심이 나서 말했다.
  • “서 의사, 도시에 아는 사람이 있어? 꼭 우리 서천이 좀 도와줘.”
  • “한씨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한서천은 무사할 거예요. 제가 지금 따라갈게요.”
  • 서원영이 말을 마치고 한소함의 손을 끌고 마을 입구로 달려갔다. 이 시각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오로지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 마을 사람들은 더는 볼거리가 없게 되자 빠르게 흩어졌다. 하지만 일부 호기심이 강한 촌민들은 뒤따라서 P 시티 경찰서로 왔다.
  • 장춘봉은 힘없이 서 있는 한정군과 임수아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 “내가 말했지! 돈 갚는 건 능력을 아니야. 게다가 이 돈의 출처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 임수아는 더는 장춘봉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편을 끌고 마당을 가로지르더니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 임수아는 그제야 서원영이 왔을 때 자기 아들을 향해 “여보”라고 불렀던 것이 생각났다.
  • 그녀는 남편 앞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
  • “여보, 서 의사 이 아이가 설마 우리 서천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
  • 한정군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 “그런 꿈은 꾸지도 마. 그저 서천이를 위해 어려운 상황을 모면해주기 위해서인데 그걸 또 정색해서 받아들여?”
  • P시티 파출소에서 한소천은 취조실로 끌려갔고 유 대장이 나서서 그를 심문했다.
  • 그는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담배 연기를 뿜어냈고 그제야 입을 열었다.
  • “한서천, 솔직하게 말해. 그 2천만 원은 어디서 훔쳐 온 거야? 육체적인 고통을 모면하고 싶으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 그는 말을 맺지 않았다. 그는 눈앞의 이 촌놈이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반드시 알 것이라 확신했다.
  • “아니면 뭐죠? 설마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서 자백이라도 받아내려고요?”
  • 한서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 유 대장은 그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 한참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 “이곳은 경찰서야.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는 일은 없어. 하지만 만약 이 2천만 원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어.”
  • 한서천이 싸늘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 돈은 제가 대대로 전해지는 약주를 배합하여 판 거예요.”
  • “아하! 보아하니 너희 집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 꽤 많은 모양이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 유 대장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 한서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유 대장님, 어떤 일은 믿기 어려워도 믿어야 할 겁니다. 저에겐 증인이 있어요.”
  • 한서천은 워낙에 유영식과 나범을 증인으로 내세울 생각이 없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그는 심사숙고하더니 말했다.
  • “YS 클럽의 유 사장 알죠? 저는 약주를 그들에게 팔았어요. 믿기지 않으시면 조사해봐도 좋아요.”
  • 유 대장은 그 말을 듣자 대뜸 폭소를 터트렸다.
  • “푸하하! 하늘도 웃을 농담이네! 유 사장이 너에게서 약주를 산다고? 소설 그만 써.”
  • 한서천은 그가 믿지 않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장을 흘끗 쳐다보며 믿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이때 경찰서 밖은 이미 마을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서원영과 한소함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유 대장의 심문은 반 시간이 지나도 결과가 없었기에 그는 밖으로 나가 한명규를 향해 말했다.
  • “명규야, 저 촌놈이 입만 살아있어. 반 시간을 닦달했지만 주둥이를 열지 않네. 유 사장님 이름까지 말하더라고.”
  • “유 사장? 저놈이 네 앞에서 유 사장 얘기를 했어? 한서천 이놈 진짜 허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부리네. 이젠 감히 유 사장 이름도 꺼내다니.”
  • “그러게 말이야! 정말 큰 일을 못 할 사람일수록 큰 인물에게 잘 보이려 한다니깐. 난 저놈 말을 절대 안 믿어. 잠시 휴식하고 계속 심문하지.”
  • “너도 나의 목적을 알 거야. 한서천이 이곳에 오게 된 이상 지금 내 눈앞의 이 문을 나갈 수 없었으면 좋겠어.”
  • 한명규는 눈에 독기를 품은 채 말하며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유 대장의 손에 쥐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