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만큼 기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잔잔하고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무감각해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의 인내가 그토록 우습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저녁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산속의 온도는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진 듯 한기가 감돌았다.
임봉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노인을 묻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멀리 푸른 산을 우울함에 잠긴 두 눈으로 응시했다.
지금 이 순간의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또 한참이 지났다…
“당신이 이번엔 정말로 죽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의 육신은 서서히 사라져 영원으로 남겠죠. 마치 사막의 모래알처럼 말입니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영생인지도 모르겠군요. 이 이별로, 영원히 다시 볼 일 없을 겁니다!”
임봉은 끝내는 사부님이라는 그 한마디를 내뱉지 못했다. 그보다는, 이제 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는 긴 검을 꺼내 들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만약 현재 이곳에 도를 닦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말법 시대에 검을 타고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
반 시간 뒤, 임봉은 마침내 기억 속의 고향에 도착했다.
그의 고향 집은 전북 전주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집은 그래봤자 단순하고 소박한 작은 단층집이었다.
집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옆에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게… 모든 게 다 그대로네!”
눈앞의 익숙한 풍경에 임봉의 깊은 두 눈이 마침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무리 현재 마음가짐이 강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가슴 한편이 저릿해지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산속에 있는 동안 그는 지금 이 장면을 꿈속에서 수도 없이 보았었다. 연못에서 수영하던 어린 시절의 꿈도 꾸었고, 속세의 모습도 꿈속에서 보았으며, 젊은 시절의 꿈도 꾸었었다. 그리고 그의 꿈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지난 10년 동안 종적을 감추고 있었으니, 부모님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셨겠지? 그리고 여동생도. 내가 떠날 때 그 아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는데, 지금은 대학에 갔을까? 그 영감은 도를 닦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모든 속세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했었지. 하지만 이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어버린다면, 도를 닦는 목적은 또 뭐지?”
임봉은 깊은숨을 내쉬며 어질러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가 기다려온 것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갑자기 집 안에서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했어요! 철거 보상금 필요 없어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안 돼요… 싫어요…”
짝-!
“얌전히 있어!”
……
그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들은 임봉의 얼굴빛이 급격히 변했다.
‘유연이 목소리인가? 내 동생이 누군가에게 폭행당하고 있는 거야?’
“빌어먹을!!!”
임봉의 표정이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더니 그는 거의 순간 이동을 하듯 집 대문을 향해 돌진했다.
……
같은 시각, 집 안에서는 용 문신을 한 대머리의 남자 두 명이 한 소녀를 둘러싼 채 소름 끼치게 웃고 있었다.
“훌륭하네!”
“대박이야. 이 알박이 집주인이 이렇게 예쁠 줄이야. 우리 둘한테는 좋은 일이지 뭐!”
“흑흑, 이거 놔요!!”
임유연은 간절히 애원했다. 그녀의 고운 얼굴은 남자들에게 맞아 뺨이 빨갛게 부어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의 옷을 찢으려 드는 두 덩치 큰 남자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저항하지 마! 우리가 다 즐기고 나면 보내줄 테니!”
“걱정 마. 우리가 잘 다뤄줄게. 낄낄…”
두 대머리의 남자는 임유연을 눌러 내리며 연신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이에 임유연의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오늘 밤 이 남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이 겪은 일들을 떠올렸다. 돈이 아까워 옷도 못 사 입었고,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다. 하다못해 밥 한 끼 먹는 것에도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 애를 썼었다.
설날에도 다른 사람들은 가족끼리 모여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그녀는 홀로 집 침대에 웅크린 채 이 추운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동네가 재개발을 하게 되었는데, 철거 회사는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철거 보상금을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했고, 이에 그녀가 동의하지 않자, 이 두 사람이 찾아와 그녀를 폭행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