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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이를 지워

  • 병원, 연지강은 의사가 보고 있는 앞에서 연영의 뺨을 연이어 내리쳤다.
  •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넌 갓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인데 결혼도 하지 않고 덜컥 임신부터 해? 네가 이 아비를 제대로 망신시킬 속셈인가 보구나!”
  • 의사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다급히 제지했다.
  • “연 대표님, 따님을 이렇게 때리시면 안 됩니다. 따님은 원체 몸이 허약한데 이렇게 폭행하시면 큰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 “한심한 것 같으니라고. 그 주제에 뭔 일이 벌어지겠어? 배 속의 더러운 종자를 당장 지워버려!”
  • 의사는 난처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 “연 대표님, 따님분은 태생적으로 난임입니다. 만약 이번에 아이를 지우면 앞으로 다시는 임신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 병상 위, 초점이 없던 영연의 눈동자에 한 가닥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 “그렇다고 한들 이 더러운 종자를 가만히 남겨둘 수는 없어! 당장 이 아이를 지워버려, 이 년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는 지워야 해!”
  • 연지강은 두 눈이 벌게져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미쳐 날뛰는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
  • 연영은 눈빛이 점점 흐려졌고 이내 공허함만 가득 찼다.
  • 그녀는 뭘 기대했던 걸까?
  • 그녀의 아버지는 비서와 바람나고, 외부인과 힘을 합쳐 그녀의 어머니를 괴롭히다가 끝내 조강지처를 버리고 내연녀를 집안에 들였다. 게다가 본처가 다 죽어가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지 않은 인간인데, 이런 인간이 무슨 짓인들 못 하랴?
  • 그녀가 딸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연지강은 눈엣가시로 여길 것이다.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가 얼마나 더럽고 비열한 수단으로 여자를 등에 업고 상위에 올랐는지, 그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처자식을 집 밖으로 쫓아낸 것에 관한 기억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연영은 얌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 “알았어요, 아빠. 아이 지울게요.”
  • 곁에서 지켜보던 로이는 그제야 앞으로 나서서 가식적으로 말했다.
  • “연영이가 잘못을 뉘우치잖아. 지강 씨도 화 풀어.”
  • 그녀는 연영이를 걱정하는 척 손을 뻗어 잔뜩 부어오른 연영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이것 좀 봐, 어떻게 이토록 매정할 수 있어? 영아, 무서워하지 마.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줌마는 네 곁에 있잖아. 말 들어, 일단 아이는 지우고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자. 앞으로 아줌마가 너를 친딸처럼 여기며 예뻐해 줄게.”
  • 로이의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촉감이 아주 부드러웠지만, 연영은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써서야 겨우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 그녀한테 로이의 혀 놀림은 그저 독사가 내뱉는 독일 뿐이었다.
  • 연영은 고개를 들고 아주 든든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 “고마워요, 아줌마.”
  • “너도 참, 우린 가족인데 고맙긴 뭘.”
  • 로이는 겉으로 웃고 있지만, 눈빛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멍청해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굳이 손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 연영은 쭈뼛쭈뼛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아줌마,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 로이는 그녀가 잔뜩 겁먹은 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다녀오라고 했다.
  • 연영은 천천히 병실을 벗어나 뒤돌아서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 로이는 연영의 뒤를 밟아 그녀가 확실히 화장실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병실로 돌아갔다.
  • 그러나 십여 분이 흐른 뒤에도 연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로이는 그제야 불현듯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 “지강 씨, 연영이 혹시 도망간 거 아니야?”
  • 연지강은 순식간에 낯빛이 변하더니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나갔다.
  • 로이는 화장실 안을 꼼꼼히 수색했지만, 연영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 일행 두 사람은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멀리서 옷차림이 익숙한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 “연영, 거기 서지 못해!”
  • 그 여자는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고함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앞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