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12화 논쟁

  • 남진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연영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특별할 줄 알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얄팍할 줄은 몰랐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얼마큼 잘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연영이 자신을 완전히 넋을 놓고 보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 연영은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더 보다가는 입에서 침까지 줄줄 흘러 내릴 것 같았다. 남진은 그런 자신의 상상에 소름이 끼쳐 닭살이 돋았다.
  • 그는 오늘의 오디션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공허하게 낭비를 하였는데 그래서 연기력이 딸리는 배우들의 연기를 더 이상 보고 싶지는 않았다.
  • 그는 로빈의 말에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 로빈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자 득의 양양해서 무의식중에 또 한 번 남진의 손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은 냉랭한 그의 눈빛에 앞으로 뻗은 손은 허공에 머물기만 하였다.
  • 연영은 멀어지는 남진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고 주저하지 않고 그를 뒤따랐다.
  • 로빈은 그녀를 보고 손을 뻗어 세우려고 했으나 잡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몸뚱이를 남진을 향해 밀치는 꼴이 되었다. 놀란 연영은 비명을 질렀고 소리를 들은 남진은 머뭇거릴 새도 없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현장은 삽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 둘은 서로를 꼬옥 끌어안은 자세로 딱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 한참이 지나서야 얼어붙었던 현장 사람들과 분위기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 강철은 혹시라도 남 대표님이 다쳤을까 봐 몸을 벌벌 떨며 급히 다가가 입을 열었다.
  • “남…남 대표님 괜찮으신 건가요?”
  • 연영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 “미…미안해요. 고의가 아니에요.”
  • 남진은 맨땅에 부딪혀 저려나는 왼팔을 만지면서 연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그는 방금 전 넘어졌을 때도 아까 창고에서와 같이 오렌지 블로섬 향을 맡았는데 이로써 그는 눈앞의 그녀가 창고에서 마주쳤던 여성이라는 것을 짐작해 낼 수 있었다.
  •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로빈이 우악스럽게 그녀를 힘껏 잡아당기며 비아냥거렸다.
  • “시간 약속도 못 지키는 주제에 얕은 수만 쓰네. 저리 비켜.”
  • 연영은 그녀의 손에 밀려 또 한 번 땅바닥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연영은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도저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네가 나를 밀쳐 넘어지면서 남진 씨 한테도 피해를 끼치게 되였는데 왜 사과를 하지 않을지 언정 모함하려고 하는 거야?”
  • 연영이 한 구절 한 구절씩 뱉어내는 사실에 로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지만 변명을 하기에는 현장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여 불가능하였다.
  • “네가 먼저 진이한테 다가가고 싶어 해서 내가 손을 뻗어 말린 것뿐이야. 화제를 바꿀 생각하지 말고 너 같은 직업정신도 없이 쉽게 갈려고 하는 여배우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어. 그러니까 얼른 나가.”
  • “내가 오늘 늦은 데는 이유가 있었어, 누군가 나를 가두어 놓고 오디션을 볼 수 없게 만들었어.”
  • 연영은 물러서지 않았고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일이라고 똑똑히 말했다.
  • “하하. 아무 말이나 막 지껄이네. 너 같은 이름 없는 아마추어를 누가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해치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진이가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거 같아? 네가 마음대로 지어낸 변명에 속을 것 같아?”
  • “내가 말한 것은 전부 사실이야. 내가 여기로 왔을 때 어느 한 스태프로 보이는 남성이 나를 막아서더니 내가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하자마자 미리 약을 발라 둔 수건으로 나를 기절시켰어. 그리고 창고에 가두어 놓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적게 맡아서 일찍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어.”
  • 연영은 로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눈빛은 범인이 바로 그녀라고 의심하는 듯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촬영장 안에서 로빈을 제외하고 전부 초면인 사람들이었고 그들 가운데 자신을 해치려 하는 사람은 분명 로빈밖에 없었다.
  • 로빈은 정곡이 찔려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 “여기 온 배우들 모두 연기할 기회를 얻기 위해 오는 곳이기에 스스로 그 기회를 버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고 연기 실력이 부족하여 떨어지게 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가 제 발로 나갈게요.”
  • 연영은 남진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 그녀는 자신의 아들과 거의 똑같이 생긴 이 남자가 오디션 현장의 제일 우두머리인 사람인 것을 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