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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빨래

  • 10년이 지나 진이서도 이제 서른둘이 되었을 테니, 아마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그만두자.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결국 내가 걔를 저버린 거지 뭐.”
  • 임봉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가 수련한 호흡법은 ‘구천선연법’이라는 것으로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이 호흡법은 최고의 선법으로 한 고대 유적지에서 목숨을 걸고 익힌 것이라 했다.
  • 하지만 이 호흡법은 일반 사람은 수련할 수 없고, 오직 영적인 기운을 타고난 사람만이 수련할 수 있었기에, 노인이 처음 임봉을 보았을 때 그렇게나 흥분했었던 것이었다.
  •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임봉은 왜 노인이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하고 무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 노인은 경이로운 재능으로 말법 시대에 도겁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끝내는 이 척박한 세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명이 다하던 그 순간까지도 신선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 신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노인의 평생 집념이었다. 이에 그는 인생에서의 마지막 10년에 임봉을 찾아내어 자신이 평생 동안 익힌 학문을 모두 가르쳤고, 임봉이 자신을 대신해 천지의 족쇄를 깨고 후대는 신선이 될 수 없다는 저주를 깨뜨리기를 바랐다.
  • 그런 노인의 혹독한 훈련 아래, 임봉 또한 이를 악물고 노력했고, 단 10년 만에 금단기의 정점에 도달한 수련자가 될 수 있었다.
  • 일반적으로 수련의 경지는 연기, 축기, 금단, 원영, 출교, 화신, 연허, 합체, 대승, 도겸의 10개 경지로 나뉜다.
  • 그리고 각 경지는 또 여러 개의 더 작은 경지로 나뉘는데, 예를 들어 금단기는 집단, 결단, 단변의 세 개의 소단계로 나뉘고, 원영기는 집영, 결영, 영변의 세 개의 소단계로 나뉜다.
  • 매 하나의 소단계를 돌파하는 것은 수련자에게는 큰 돌파이고, 따라서 실력은 급격히 향상되게 된다.
  • 그렇기에 지금 같은 말법 시대에 임봉이 금단기의 정점에 도달한 수련자라는 것은 거의 세상을 휩쓸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물론, 이 또한 그저 노인이 생전에 그에게 말해준 것일 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임봉 역시 아직 다른 수련자를 만난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했다.
  • ……
  • 눈 깜빡할 사이에 하룻밤이 지나갔다.
  • 수련에서 눈을 뜬 임봉은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금단기를 돌파한 뒤로 또 한 단계 더 나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 이 지역의 희박한 영기 때문에 원영을 응집하려면 기부좌 수련만으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빠르게 돌파하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 그러던 그때, 집의 대문이 열리더니 임유연이 세탁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 나와 빨래를 하러 문 앞의 작은 연못으로 향했다. 이에 임봉은 얼른 여동생 옆으로 다가갔다.
  • “유연아, 빨래하려고? 오빠가 도와줄게.”
  • “필요 없어.”
  • 임유연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 지난밤, 임봉이 밖에서 밤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녀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속 원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 그녀는 그가 돌아온 이유가 분명 철거 문제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 “사양할 것 없어.”
  • 임봉은 아예 대야를 뺏어 들고 연못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막상 쪼그려 앉고 보니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대야 안에는 여성용 속옷들이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 ‘빨래를 해… 말아?’
  • 임봉은 난처해졌다. 아무리 여동생이라지만, 그럼에도 남녀가 유별한 법이었다.
  • 게다가 이런 피부에 직접 닿는 옷들을 그가 손으로 비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 하지만 그것보다도, 낡아서 색이 바랜 속옷들을 보며 임봉은 마음이 아팠다.
  • 여자애들은 속옷 같은 것은 자주 새것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여동생의 속옷은 몇 년을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낡아져 있었다.
  •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부끄러워하기도 해?”
  • 임유연은 강둑 위에 서서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 “옷들이 너무 낡았네. 나중에 오빠가 새 걸로 사줄게.”
  • 임봉은 빨래를 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가식 떨지 마!”
  • 임유연은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본 임봉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 ……
  • 빨래를 다 끝낸 뒤, 임봉은 돈을 좀 벌어올 생각으로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 하지만 바로 그때, 집 앞의 낡고 부서진 자갈길에 분홍색 미니밴 한 대가 다가와 멈춰 서더니, 옅은 화장에 화려한 차림을 한 소녀가 차에서 내렸다.
  • 어림잡아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는데, 흰 원피스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고, 36D에, 생기 넘치는 모습이 마치 정교한 도자기 인형 같았다.
  • 그녀의 이름은 이로하로, 임유연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이로하는 문 앞에 서 있는 임봉을 이상하게 한 번 쳐다보고는 집 안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