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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용의 역린

  • “어떻게 됐어?”
  • “형… 형님, 놓… 놓쳤습니다!”
  • “놓쳤다고?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 “정말입니다.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돈을 받아 간 뒤에 우선은 여성 속옷을 잔뜩 샀고, 그다음 아이폰 두 대와 과일, 채소, 간식거리들을 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 “그러고 나서 뭐?”
  • “그리고 날아갔습니다!”
  • “날아갔다고!!??? 헬기가 데리러 왔다는 거야?”
  • “아닙니다. 혼자서 날아갔습니다!”
  • ……
  • 한 대형 공사 현장 한가운데 있던 왕훈은 전화를 끊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날아갔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세상에 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순 엉터리가 따로 없군!’
  • 그러던 그때, 빨간 모자를 쓴 공사장 책임자가 다가와 문 앞에 걸려 있는 하얀 종이를 보며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 “사장님, 고작 이런 종이 한 장이 정말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겁니까?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우리 아들이 그린 거랑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요.”
  • “안 돼도 되게 해야지! 안 그러면 어쩌겠어?”
  • 왕훈은 쌀쌀맞게 한 마디 답했다.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그는 당장 돌아가 연예인 몇 명을 불러 이 분노를 좀 해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 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뒤쪽에서 갑자기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이에 왕훈이 겁에 질려 뒤돌아보니, 문에 걸려 있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얀 종이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 그리고 그 하얀 종이 아래에는 시커멓게 탄 작은 동물의 사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족제비 사체였다.
  • “이게…”
  • 공사 책임자는 놀라 입이 떡 벌어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기이한 장면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얀 종이에서 나온 번개가 족제비를 죽이다니 말이다.
  • “대단하군! 엄청나!”
  • 자신이 진정한 고수를 만났음을 깨달은 왕훈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 ……
  • 같은 시각, 공사 현장에서 약 8-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동굴 속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노인이 갑자기 피를 토해냈다.
  • “황이가 당했어!”
  • “누가 감히 우리 황이를 건드린 거지?”
  • 노인은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급히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 ……
  • 몇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단 1분 만에 날아온 임봉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고자 집에서 약 3-4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땅에 내려온 뒤, 크고 작은 짐들을 들고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그는 집 쪽에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굴착기 소리인가?”
  • 임봉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 전에 여동생과 이로하의 대화를 통해 그는 강제 철거 문제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낼 수 있었다.
  • 그리고 그건 누군가 강제로 집을 철거하러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 게다가 현재 여동생과 이로하가 아직 집 안에 있었다. 어린 소녀 둘만이 말이다.
  • 그 순간, 임봉의 표정이 무서우리만치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가 이 지역의 하늘을 어둡게 만들 정도였다.
  • ‘좋아! 내가 네놈들을 찾아가기도 전에, 감히 알아서 내 집에 기어들어 오다니! 정말이지 죽으려고 환장했나 보군!’
  • 용의 역린을 건드린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 그리고 임봉에게는 여동생인 임유연이 바로 그의 역린이었다.
  • ……
  • 같은 시각, 다 쓰러져가는 작은 단층집 앞에는 노란 굴착기 두 대가 서 있었다.
  • 열댓 명의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그 굴착기 옆에 서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 가녀린 소녀를 희롱하듯 바라보며 각종 추잡한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 “어리고 예쁜 데다 허리는 가늘고 가슴은 크고, 얼굴엔 콜라겐이 넘쳐흐르네. 괜찮은걸!”
  • “하하… 이런 애들은 70만 원 정도는 줘야 데리고 놀 수 있지!”
  • “70만 원? 꿈도 야무지네! 신참이면 최소 200만 원부터 시작이야!”
  • “게다가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쯧쯧… 대학 생활 좋지!”
  • 깡패들의 더러운 언행에 임유연과 이로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 심지어 두 사람은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상대를 완전히 화나게 할까 두려워서였다.
  • “꼬마 아가씨들, 얼른 비켜! 안 그러면 이따가 집이 무너져서 너희들의 그 여린 몸이 깔리기라도 하면 이 오빠가 마음이 아프잖아!”
  • 앞장선 중년 남자가 비꼬듯이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임유연과 이로하의 몸을 연신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두 눈에 담긴 욕망을 전혀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굶주린 늑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