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설찬의 신분
- 설풍이다.
- 설풍은 초조해 보였는데 나를 보더니 두말없이 끌고 나가 주위에서 놀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풍은 날 아무도 없는 복도로 끌어오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 "뭐하는 겁니까? 설풍 선배."
-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설풍은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 "그 어른신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 설풍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비로소 그가 말한게 설찬이란걸 알아차렸다.
- 나는 설풍을 방비하며 바라보았다.
- 이놈은 왜 나와 설찬 사이의 일을 다 알고 있는거지?
- "그래요. 더 이상 당하고 있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 설풍 표정 급해나서 울것만 같았다.
- "아이구야, 명혼도 치렀는데 무슨 당하고 말고야?"
- "이게 다 그 귀신이 날 강요해서 그런거죠. 더욱이 명혼이란 게 뭐 실제 혼인신고를 한 것도 아니잖아요.”
-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혼인신고를 한게 아니라고?"
- 설풍은 헛웃음을 지었다.
- "안소야, 명혼은 저승에서 서류등기가 돼 있어. 넌 평생 다른 사람과 결혼 못할거라고!"
-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나는 줄곧 명혼이 단지 소꿉놀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렇게 본격적일 줄이야?
- "그러니까 너 그 사람이랑 장난치지 마, 너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어."
- "설풍 선배, 솔직히 내가 설찬이랑 싸우는게 왜 그렇게 겁이 나는 겁니까?"
- 설풍은 낯빛이 흐려졌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물었다.
- "선배님이랑 설찬, 어떤 사이죠?"
- 설풍은 기침 한 번 하고 이번엔 대답해주었다.
- "설찬은 우리 설가의 조상님이시다."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역시 설찬도 성이 설인게 우연이 아니였어.
- "그런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조상님의 결혼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하지 마세요. 안 믿을 거니까."
- 설풍은 더욱 어색해 했다.
- "안소, 설씨 집안일은 내가 많이는 얘기 못해 주지만 설찬 나리께서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말고 도사 같은 사람 찾아서 귀신 쫓겠다고도 하지마. 설찬 나리 가지고 있는 힘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니까. 그 분을 잘 못 건드려서 너한테 잘 될건 하나도 없어."
- 설풍은 아주 그럴싸하게 얘기를 했다. 임영이가 설찬을 무서워하는 게 생각이 나서 그가 거짓말을 하는건 아닌걸 알수 있었다.
-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그래서 저 남자 귀신한테서 벗어날 방법이 하나도 없는 건가?
- 설풍은 내 어깨를 두어번 다독이고 떠나갔고 나는 혼자 남겨진 채 복도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 눈길이 무심코 손목에 끼워진 옥팔찌에 닿았다. 말로 표현할수 없을 만큼 혐오스럽다.
- 뭐가 약혼 선물이야! 하나도 갖고 싶지 않다고!
- 나는 한사코 옥팔찌를 빼려고 했는데 그 옥팔찌가 내 손에 달린 것처럼 도저히 빼낼수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 좌절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더니 홍하와 방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 "소소, 설풍 선배님이 왜 찾았더?"
- 그녀들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 "응, 선배님이 내 책을 주워서 돌려주러 온거야."
- 나는 거짓말을 했다.
- 그 두 계집애는 실망한 기색이였다.
- 나는 침대에 앉아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 "방정아, 설씨 집 알아?"
- “왜? 소소야, 너 설풍선배한테 진짜 관심있어? 그 선배가 돈도 많고 잘 생겼긴 했지만 소문난 바람둥이인데 잘 생각해.”
- “아냐, 관심 없어. 그냥 한번 물어본거야.”
- “설씨 집안이라면 다들 알다싶이 우리 S시 갑부잖아. 그런데 그렇게 물으니까 생각난건데 요즘 설씨네 집안이 확실히 태평하지 않다던데."
- "태평하지 않아?"
- 나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 "음, 설씨네 직원 여러명이 현장에서 일하다가 죽었다고 뉴스까지 나왔는데.”
- 나는 핸드폰을 꺼내 '설씨 집안'을 검색했다. 역시 ‘가택’이며 ‘공사장’이며 자살에 관한 많은 뉴스가 떴다.
- 이 뉴스들은 모두 올해의 것들이니 불과 1년 사이에 설씨네 직원들 수십 명이 죽은 것이다.
- 이건 아무리 보아도 우연인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설찬이 나랑 명혼을 치른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 내가 생각에 잠기고 있는 참에 홍하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 "응, 올라와. 관리자 아주머니한테 허락 받았어? 응, 셋 다 같이 있어."
- 홍하가 전화를 끊자 내가 물었다.
- "누구야?"
- "유도야, 임영남친구, 오늘 갑자기 우리 기숙사에 온다고 하더라."
- 지난번에 보았던 그 해맑은 남자가 생각나 나는 그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잠시 후, 유도가 바로 올라왔다.
- 그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의 종이처럼 창백한 얼굴을 보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
- "유도야, 너 괜찮니?"
- 유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 “요 몇일 나한테 일어난 일이 너무 이상해서 말해도 못 믿을 거야.”
- 나와 방정과 홍하 세 사람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이상해도 우리가 겪은것보다 이상하겠어?
- 그러나 곧 우리는 웃지 못했다.
- "며칠 밤이나...영이를 봤어…"
- 유도가 떨며 말을 했다.
- 우리 세 사람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 "너한테도 찾아갔어?"
- 방정은 성격이 시원시원한지라 인차 말을 내뱉었다.
- 이번에는 유도가 어안이 벙벙했다.
- "너희들한테도 찾아왔어?"
- 우리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녀가 이미 환생하러 간 일을 포함하여, 임영의 모든 일을 유도에게 말하였다.
- 임영이가 드디어 환생하러 간다는 소리를 듣고 유도는 한숨을 돌리며 우리한테 얘기했다.
- "고마워, 너희가 아니였으면 영이는 아직도 원한을 풀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돌아 다닐지도 몰라. 보답으로 내가 너희들한테 밥 한끼 사주고싶어.”
- 우리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유도가 너무 고집해서 거절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부근의 샤브샤브집을 골랐다.
- 밥을 먹을 때 우리 세 여자는 게걸스럽게 마구 집어 먹었는데 반면 유도를 보니 거의 먹지 않고 있었다.
- 배불러서 핸드폰을 꺼내 다시 설가네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유도가 갑자기 나에게 부딪혔다.
- "아!"
- 그가 너무 세게 부딪친 바람에 핸드폰이 바로 매운 냄비로 떨어졌다.
- “어머!”
- 홍하와 방정은 얼른 숟가락으로 내 핸드폰을 건져냈지만 분명 이미 폐기되었다.
- 유도는 얼굴이 빨게 지며 미안해 했다.
- “정말 미안해. 내가 새걸로 바꿔줄게.”
- 그가 말하는 대로 자기의 신형 iPhone을 내밀었다.
- "아니야."
- 내가 어떻게 저 새걸 받겠어.
- "내 핸드폰은 그렇게 좋지 않은거라서 괜찮아."
- "괜찮아, 내가 망가뜨린거니까."
- 유도는 계속 고집했다.
- 나는 그를 이길 수 없어 말을 그치고 차액을 계산해 그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 유도가 건넨 핸드폰을 받고 메모리 카드를 장착하고 나니 갑자기 휴대폰이 뜨거워졌다.
- "쓰읍..."
- 이 핸드폰 왜 이래? 누전인가?
-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샤브샤브를 먹고 방정과 홍하는 옆 지하철역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갈 예정이였고 나는 걸어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였다.
- “안소야, 시간도 늦었는데 내가 데려다 줄게.”
- 유도가 계산을 하고 나한테 얘기했다.
- "아니야. 괜찮아..."
- 나는 거절했다.
- "영이를 죽인 범인도 아직 못 잡았는데 여자 혼자서 밤거리를 걸으면 너무 위험할것 같은데.”
- 유도는 데려다주려고 견지했다.
- "맞아, 소소야, 유도랑 같이 가."
- 방정과 홍하가 맞짱구를 쳤다.
- 나는 마지 못해 그러기로 했다. 유도와 앞뒤로 걸으며 학교 후문을 향해 갔다. 학교 후문의 오솔길엔 평소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이상하게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 오늘은 날씨 꽤 더워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땀이 났는데 유도는 외투까지 입고 있었다.
- “안 더워?”
- 유도가 잠깐 흠칫했다.
- "덥긴 덥네."
- 말하건대 그는 외투를 벗어 안의 반팔을 드러냈다. 가로등을 빌려 나는 그의 반팔아래의 나비 모양의 붉은 모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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