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은 창가에 엎드려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내 발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고개를 획 돌렸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는 나는 그만 그녀와 눈이 맞게 되였다.
눈길이 마주치자 나는 온몸의 피가 굳어지는것만 같았다.
설풍이 해준 말이 귓가에서 메아리 쳤다.
그 여자 귀신의 눈을 보지 말라고, 만약 그녀가 네가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너에게 달라붙을 것이라고.
망했다.
나는 아직 내 눈길을 떼지도 못 했는데 임영이가 갑자기 창문에서 뛰어올라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녀의 동작이 너무 빨라서 내가 막 도망치려고 했을 때 그녀는 벌써 나를 벽에 밀어 붙였다. 눈알이 빠진 눈시울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렸고 그녀는 몹시 흥분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소야, 너는 나 보이지? 나 죽은거 아니지?"
그녀는 흥분해서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넌 이미 죽었어!"
나는 너무 놀라서 많은 걸 생각 하지도 않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임영의 얼굴은 흥분에서 분노로 뒤바뀌었다.
"거짓말! 이 거짓말쟁이! 내가 죽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포효하며 입을 벌리고는 나의 목을 물려 달려 들었다.
나는 무서워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려 그녀를 밀어 볼려 했지만 그녀는 마치 천근 무게인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하얀 이가 내 목에 다닿기 직전 갑자기 찬바람이 휙 불어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듯 임영은 갑자기 내게서 벗어나더니 마치 끈 끊긴 인형처럼 무겁게 땅에 떨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훤칠한 몸집의 누군가가 복도 끝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걸 보았다.
검은 가운이 바람에 살랑살랑 날리며 그의 뛰어난 몸매를 그려냈고 그의 발걸음은 침착하고 왕과 같은 기운을 띠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을 느끼게 했다.
설찬이다.
설찬은 내 곁으로 와 서서 눈길을 아래로 향해 내 팔뚝의 멍을 보더니 눈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겁도 없는게 로군”.
설찬이 차갑게 몇 글자를 뱉고서 긴 소매를 뿌리치더니 임영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안색이 바뀌어 얼른 설찬의 옷 소매를 붙잡았다.
"뭐하려는 겁니까?"
"그녀가 감히 당신을 다치게 했으니 당연히 혼비백산시켜야 겠소."
설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섬뜩해 났다.
다 같은 귀신들인데 다른 사람을 혼비백산시키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다니?
"하지마세요!"
나는 임영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얼른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기가 죽은 줄 몰라서 이런 짓을 한거지 나를 다치게 할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생전엔 내 룸메이트였는데…"
설찬이 잠시 나를 쳐다봤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 임영이는 몸부림을 그치고 잠시도 더 머물지 않고 후다닥 달아나 버렸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 쉬었다.
이제 임영이는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안심하고 환생하러 가겠지.
나는 마라송이라도 뛴듯 기진맥진해져서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직 숨을 고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팔이 차가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설찬의 창백하고 긴 손가락이 내 팔의 멍을 스치고 있었다. 그가 스치고 난 자리의 멍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고마워요."
나는 원래 공과 사는 분명하기에 아무리 그가 밉다 한들 그가 나를 구해 준건 사실이니 고개 숙여 입을 열었다.
나를 대답해 준 건 턱에서 느껴지는 시린 촉감이였다.
설찬은 내 턱을 잡고 내 얼굴을 들어 올려 그와 눈을 맞추게 했다.
"고마운 걸 말로만 하는건 싫소.”
그의 말투가 애매했고 말을 그치자 나를 벽에 누르고 입술을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하지마세요!”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피했다. 순간 설찬의 눈동자엔 또 다시 분노가 번졌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반항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반항해 봤자 이 남자 귀신을 화나게 할 뿐이란 걸 알아 핑계를 댈수 밖에 없었다.
"수업 들어야 합니다!"
설찬의 눈동자는 블랙홀처럼 깊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체 알수가 없었다.
문득 팔목에서 차가운 느낌이 전해왔다.
고개 숙여보니 설찬이 나의 왼손에 청록색의 옥팔찌를 끼워 주었다.
"약혼 선물일세, 저번엔 잊고 못 줬소."
설찬이 내 귓가에서 속삭였다.
"저기…전 아직 수업 중인데요…"
그의 말을 자세히 듣지도 않고 핑계를 대며 피했다.
"먼저 가겠습디다…"
말이 끝내자마자 나는 그를 떨쳐내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교실로 뛰어갔다.
이번엔 설찬도 나를 붙잡아 놓지 않았다.
그 길로 줄곧 교실로 달려가 나머지 반 수업 시간 동안 나는 니조교 곁의 귀신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가까스로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참고 서둘러 홍하와 방정을 끌고 교실을 나왔다.
우리가 방금 기숙사 건물 아래로 돌아왔는데 그 아래는 어떤 남학생이 서성이고 있었다.
"어머, 임영 남자친구잖아.”
홍하는 의아해했다. 나도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셋 중에서 임영 남친을 본적 있는건 홍하 밖에 없다. 방정이랑 나는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훤칠하고 잘생겼는데 피부도 하얘서 해맑아 보였다. 그때 그 남자도 우리를 알아보고는 홍하를 향해 손을 저었다.
10분 후에 우리는 기숙사 관리자의 수긍을 얻고 임영의 남친을 데리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임영의 남자친구는 유도라고 한다.
임영의 고향은 S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부모님이 오시려면 며칠이 걸릴 것 같으니 유도에게 먼저 임영이의 유품을 정리해 놓으라고 했다.
유도는 아주 감성적이어서 임영이의 유품을 보자마자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믿을 수가 없어서… 영이가 어떻게 자살할 수가..."
그러면서 유도는 울먹였다.
우리 기숙사 4명의 여자애중에 나와 홍하, 방정은 친하지만 임영이는 성격이 괴팍해서 우리 셋과 사이가 그렇게 가까웠던건 아니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3년 동안 함께 지낸 우리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분명 자살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임영이가 정말 자살한거라면 어떻게 자기가 죽었다는걸 모르겠어? 임영이는 살해당한 걸까?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서 갑자기 떠올라 깜짝 놀랐다.
평소의 임영이는 조용한 여자애였다, 누가 그녀를 죽이려 할까?
"아!"
나가 한창 생각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임영이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던 여도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왜 그래?"
우리는 서둘러 그의 곁으로 가 보았다.
"벽에… 벽에 글자가 있는데…"
유도가 바르르 떨며 얘기 했다.
우리는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심장이 일시 정지 했다.
임영의 책상에는 원래 이것저것으로 가득 쌓여 있었다. 유도가 물건을 걷어내고서야 뒷담벼락에 쓰인 핏빛의 글자 한줄이 드러났다.
“다음은 너야.”
……
그 피로 적힌 글자 한줄을 보고 우리는 모두 혼이 나게 놀랐다.
방정은 계속 이건 누군가가 지루한 장난을 친거 일거라고 강조했지만 나는 왠지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나서 나와 방정, 홍하는 잠도 못 자겠고 같이 한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깨어 있는 나쁜 점은 바로 자꾸 화장실이 가고싶어 지는 것이다.
늦은 밤중에 홍하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하여 나와 방정은 할 수 없이 그녀와 같이 화장실로 갔다. 손전등을 들고 어두컴컴한 복도로 나서니 우리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쿵쿵 뛰어 오르는거 같았다. 화장실로 가는 길은 겨우 백 미터도 안 됐는데 우리는 오히려 몇 천 미터를 걸어간 것 같았다.
겨우 화장실에 들어왔을 땐 나와 방정도 없던 오줌이 다 마려워져서 이렇게 나온참에 낭비하지 말고 우리도 볼일을 보기로 했다.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내 심장이 북치듯 쿵쿵 뛰고 있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볼일을 다 보고 일어나자마자 얼굴에 촉촉한 느낌이 있어 본능적으로 만져보고 손전등으로 비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