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귀신이 보인다
- "임영아 왜 그래?"
- 홍하와 방정도 나때문에 긴장한 모양이다.
- "아니…아니야…”
- 재빨리 고개를 다시 돌려 보니 땅에서 기어 일어서는 임영이는 사라졌다.
- 설마 아깐 내 환각이었나?
- 자세히 생각해 보지도 못 했는데 갑자기 강의동 뒤편 계단 입구에서 흰색의 그림자가 보였다.
- 임영이다!
- 내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것 같았다. 이번에 교훈을 얻어 더이상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 이때 계단 입구의 임영이 고개를 돌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는게 보였다.
- 그녀의 동작은 매우 빨랐고 순식간에 계단에서 사라졌다.
- 나는 아직 그녀가 다음 동작으로 무얼 할지 생각도 못 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흰색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 "아!"
-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 다행히 내가 인차 입을 막은지라 홍하와 방정은 주의하지 못했다.
- 텅 빈 땅바닥엔 다시 임영의 시체가 누워 있었다!
-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방금 임영이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서 다시 한번 강의동을뛰어내린거였다!
- 지면엔 경찰이 분필로 그린 시체의 윤곽이 있었는데 이때 하락한 임영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 지지도 않고 마침 그 윤곽 속에 떨러졌다.
- 아직 심작도 평온되지 않았는데 문득 땅 위의 임영이 다시 이상한 형태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 나는 온몸이 떨렸다. 임영이는 기어 일어 나더니 다시 계단으로 뛰어갔다.
- 잠시 후, 그 흰 그림자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 이렇게 한번 또 한번 계속 반복되였다.
- 임영의 움직임은 아주 빨랐고 눈 깜박할 사이에 벌써 네 번이나 강의당을 뛰어 내렸다.
- 나는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아 제자리에 서있었다.
- 임영이 자신의 죽음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걸까?
- 설마 아직도 자기가 죽었다는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걸까?
- 방정과 홍하는 이 장면이 보이지 않아 얼른 가자고 나를 재촉였다.
- “얼른 가자, 소소야. 수업 시작하겠다.”
- “안돼!”
-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그들을 신속하게 붙잡았다.
- 그들이 지금 나아가고 있는 곳은 임영이가 끊임없이 뛰어 오르고 있는 계단이다. 그 놀라운 속도라면 계단에서 그녀를 마주치게 될게 뻔했다.
- 방정과 홍하는 영문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 보았다.
-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초조하게 쉬염없이 뛰어내리는 임영이를 다시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임영이는 벌써 열번째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 이번엔 드디여 내가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을 의식한 듯 했다.
- 그녀의 목이 찌걱찌걱 돌아 오면서 눈동자가 하나 빠진 두 눈은 천천히 내 쪽을 바라보려했다. 빨리 시선을 피해야 했는데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임영이랑 내가 곧 눈을 마주치려 할때 가늘고 하얀 손이 갑자기 나의 눈을 가렸다.
- "보지 마."
- 귓가에서 듣기 좋고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보니 어떤 잘생긴 남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 내 옆의 홍하가 조금 과장되게 그를 불렀다.
- "설풍 선배?"
-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 눈앞에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설풍, 우리 S대학에서는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다.
-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S대의 남신으로 뽑혔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건 그는 국내 최대 재벌가 설씨 집단의 도련님이다.
- 하지만 지금 나는남자 보고 침 흘릴 기분이 아니였다.
- "선배님, 선배님도 보..보이나요?”
- "그래."
- 설풍은 담담하게 말을 했다.
- "난 영안을 열고 있거든."
-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 영안을 가진 자는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 그런데 나는?
- 지난 21년동안 나는 이상한 걸 본적이 없었는데 왜 어제부터 이런 무서운 게 보이는 거지?
- “도대체 뭐야..."
-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여 물었다.
- “임영의 귀신.”
- 당황한 나에 비해 설풍은 아주 담담했다.
- “넌 그 나리와 명혼을 치러 그의 음기에 물들었으니 영안을 연거랑 마찬가지니 귀신이 보일거야."
- 그 남자 귀신 때문이었구나.
- 고맙다 전할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 "제가 명혼을 치렀다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 "
- 나는 설풍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설풍 얼굴에서 약간 어색해하는 표정을 보았다.
- 그가 막 대답하려고 할 때 그의 뒤에서 갑자기 아양떠는 여자 목소리가 났다.
- “설풍, 얘기 끝났어? 얼른 가자.”
- 설풍 어깨 너머로 멀지 않은 곳에 호리호리한 미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 설풍은 S대 심지어 S시에서 소문난 바람둥이이고 그가 여자 친구를 바꾸는 속도는 원고지책 펼치는 것보다 빠르다고 한다.
- 눈앞의 미녀는 요즘 핫한 모델 중 한 명으로 설풍이 새로 바꾼 여자친구인것 같다.
- 이때 그 여자 모델은 마침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 나는 이제서야 주위의 시선들이 느껴졌는데 그 여자뿐만 아니라 사면팔방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나랑 설풍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소곤소곤거렸다.
- 나는 문득 설풍과 내가 이토록 가까이서 속삭이는 모습이 애매한다는걸 알아차렸다. 아마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 "미안. 자세한 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 설풍은 어색하게 웃으며 떠나려 했지만 나에게 한 마디를 더 남겼다.
- “기억해, 그 여자 귀신의 눈을 보지 마. 그녀가 만약 네가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면 너한테 달라 붙을 거야."
- "잠깐만요!"
- 설풍은 거의 도망가듯 가버려서 뒤쫓아가서 따지고 싶어도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지 못했는데 그 사이 설풍과 그의 여자 친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정과 홍하를 끌고 다른 계단으로 향했다.
- 설풍이 한 말이 머리에 박혀서 가는 길엔 임영을 다시 볼 염두가 나지 않았다.
- "소소야, 너 설풍선배랑 무슨 상황이야?"
- 계단을 오르자마자 방정과 홍하가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 "별일 아니야. 그냥 뭐 좀 물어 볼게 있어서."
- 나는 질문을 피해 가볍게 대답했다.
- 겨우 교실에 와서 앉고 나서야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 하지만 이렇게 편하게 앉아 있을 시간도 길진 않았다.
- 이번 과의 선생님은 이 학교로 방금 오신 니조교인데 상당히 젊고 아름다우며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 예전엔 이 과목을 좋아했는데 오늘 니조교를 봤을 땐 단지 머리가 하얘지고 무서웠다.
- 그녀의 등 뒤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 그 아이는 방금 태어난 태아처럼 작았고 비틀거리며 니조교의 뒤를 따라다니며 연약한 목소리로 연신 고함을 치고 있었다.
- "엄마...엄마 왜 저를 버렸어요…"
- 나는 너무 놀라 얼이 빠져 생각도 없이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니조교는 나를 보더니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 "안소야, 왜 그러니?"
- "저… 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 오겠습니다."
- 나는 어설픈 거짓말을 하고는 뒷문으로 얼른 교실을 빠져 나와 거의 뛰듯이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서야 겨우 진정 되었다.
- 지금의 나는 정말 영안이 열려 별의별 귀신이 다 보이는 가 보다.
- 그렇게 생각하자니 저도 모르게 설찬이란 남자 귀신이 더욱 미워졌다.
- 다 그 귀신 때문이야!
- 나의 결백을 망가트린 것만으로도 못해 이런 끔찍한 것들까지 보이게 하다니.
- 땡땡이를 쳐선 안 되서 어물어물 교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 방금 화장실을 나섰는데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복도의 창가에 일그러진 하얀 그림자가 서 있는걸 보았다.
-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망했다.
- 임영이가 이 층에서 뛰어내리는 걸 잊어버리 다니.